인도 그리고 네팔배낭여행기

인도네팔 배낭여행기(22)...다시 인도의 델리로(3)..인도는 관광보다는 이해를 하러 가는 곳

뿅망치 2020. 2. 25. 11:23

사람들은 인도하면 떠올리는 것이 갠지스강에서 화장하는 것을 떠올리고 힌두교를 믿는 나라이며 아름다운 타지마할이 있고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며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지저분한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가 인류의 4대문명의 발상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3300~1700년 사이에 인더스 강 상류 지금의 펀잡 지방(지금은  파키스탄)에 있었던 문명으로 1921년 하라파에서 발굴이 되고 1922년 모헨조다로가 발굴이 되면서 인더스 문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 문명은 아리아인들이 이주해 오기 전에 살았던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에 의해서 이룩된 문명으로 그리고 상하수도 시설이 있었으며 주택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쓰레기 투기구멍이 있었고 광장에는 신전 대신 공중목욕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기원전 1000년경에 아리안인들이 침입하면서 멸망되었다고 한다.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의 문명 발생지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이다. 인더스 강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 및 나일강 유역과 함께, 인류가 최초로 문명의 단계에 도달하였던 지방이다. 인더스 강은 인도 북부에서 발원하여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양으로 흘러가는 강의 이름이며 이 강을 따라 문명이 발생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파키스탄 하라파(Harappa)에서 최초로 유적지가 발견되어 하라파 문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전에는 비옥한 땅이었으나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해서 사막화가 된 곳이다.

‘죽음의 언덕’이라는 의미의 모헨조다로 유적은 하라파(Harappa) 유적과 함께 인더스 문명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적으로, 인더스 강 유역의 카라치(Karachi)에서 380km 북쪽에 있다. B.C. 2500년 무렵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며, 1922년 영국인 고고학자 존 마샬(John Marshall)과 인도인 고고학자 라칼다스 바너지(Rakhaldas Banerjee) 등의 지휘로 발굴이 시작되었다.


침입한 아리인인들에 의해서 오늘날 힌두교의 교리라고 할 수 있는 베다들이 정리되었고 그 때부터 신분제도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복자들은 신들을 섬기는 집전자인 승려계급인 바라문(브라만)과 무인 계급이 크샤트리아 그리고 서민계급인 바이사로 나누어지게 되었으며 피정복자들을 지배하는 계급으로 등장하게 되고 피정복자는 가장 낮은 계급인 수드라가 되었다.

이 네 계급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불가촉천민(달리트)이 있는데 사람으로 취급을 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 계급제도는 지금까지 유지되며 계급이 다르면 결혼도 할 수 없으며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불가촉천민의 계급으로 떨어지게 된다고 하며 식당도 주인과 종업원의 계급이 같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만약 주인이 바라문인데 요리사가 바이사이면 바라문계급과 크샤트리아 계급이 오지 않는데 이는 자기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받으면 자신의 신분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라문(브라만)이 불가촉천민을 교통사고로 죽였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불가촉천민이 인도 인구의 20%라고 하며 이런 계급제도를 타파하기 위해서 아무리 정부에서 노력하여도 수천 년을 이어온 관습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한다.

 

참으로 궁금한 것은 기원후 1000년경 이후에 이슬람이 인도를 500여년 이상 지배하였으면 이슬람 종교의 특성상 이런 계급제도가 타파가 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계급제도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한 때 융성하기도 했었고 이슬람이 인도를 지배하기도 했으니 계급제도가 타파되거나 타파는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완화는 되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오후에는 인도의 국립박물관을 갔으나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서 사진은 찍지 못했고 인더스문명의 유물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해야 했으며 유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다.




박물관 마당 안에 있는 팔각형으로 만들어진 사원수레는 비슈누신에게 바쳐진 것으로 Pasupati Achari 부자에 의해 조각되었다. 인도 남부 축제 때 대부분의 사원에서 사용되는데 신자들이 수레사원을 거리로 끌고 간다고 한다. 사원의 개창을 기념하거나 왕의 안녕을 빌거나 족장의 생일, 왕자의 탄생이나 결혼, 또는 점성술과 관련된 행성의 합을 축하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핸드폰으로 찍었던 유일한 사진..표정과 동작이 살아 있어서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상 중의 하나로 춤추는 시바신이다.

시바신은 파괴의 신으로 시바신이 춤을 출 때는 이 세상이 멸망할 때가 되었을 때라고 한다.

재창조를 위한 춤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해서 주마간산으로 보았지만 델리에 가는 일이 있다면 그리고 관심이 있다면 천천히 둘러보고 오라고 하고 싶다.


델리에는 여러 가지 봐야 할 곳도 많지만 시간이 없어서 몇 가지 보지 못하였고 인도라는 나라가 북부와 남부는 인종도 다르고 문화도 다를 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며칠 지나가는 길에 본 인도에 대해서 어떤 나라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계급제도로 인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은 분명하다.

 

무굴제국의 2대왕인 후마윤의 영묘...타지마할을 지을 때 모델이 되었던 건물이다.(시간이 없어서 가보지는 못했음)

델리의 붉은 성...아그라에서 수도를 올드델리로 옮기면서 무굴제국의 5대황제인 샤 자한에 의해서 1648 만들어진 성이다.

델리에서 약 400km 떨어진 곳에 있다. 현재 20개 이상의 힌두교자이나교의 사원이 있는 순례지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10∼11세기 찬델라 왕조시대에는 이 지방의 주도였으며, 파라슈바나트 사원(자이나교), 차툴부자 사원(힌두교) 등을 비롯하여 약 30개의 사원이 건립되었다. 처마끝을 여러 층으로 높이 쌓아올린 지붕이 특징이며, 붉은 사암()으로 된 벽면에는 중세 인도의 부조를 대표하는 많은 상(), 병사·여인상, 관능의 극치를 표현한 조상() 등이 새겨 있는 곳이다.

힌두교의 교리를 모르면 그냥 음란외설물인 부조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도는 아무리 가난한 자라도 느긋하고 불평이 없는 나라이며 삶과 죽음에 애착하지 않는 나라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가서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계급제도의 모순의 속박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보지 않고 와서는 고통 받는 그들을 보고 힐링을 하고 왔다고 한다.

 

그들을 비난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그들은 굶주리는 백성들이 빵을 달라고 데모를 하자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왜 데모를 하느냐고 묻던 마리 앙뚜아넷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양의 문명과 문화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의해서 육성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로마의 신화(神話)를 바탕으로 한 문명 및 문화이고 헤브라이즘은 성서(聖書) 곧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문화와 문명이다.

헬레니즘 이후에 헤브라이즘의 문화가 접목되었기 때문에 두 문화가 혼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헬레니즘 문화에서 신화(神話)의 부분은 사라졌다.

제우스와 헤라와 올림포스의 열 두신과 그들에 의해서 태어난 수 많은 신과 반신반인(半神半人)들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지금 없다. 다만 영화나 소설에서 소재로 등장 할 뿐...

 

그러나 인도는 아직도 신화를 믿고 있는 나라이다.

브라흐마와 비슈누, 시바 등 삼신(三神)들 말고도 수많은 신을 믿는 나라이다.

이런 신을 믿는 대중들은 의식이 깨어날 수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그 운명의 굴레가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실 속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의식(意識)이 깨어 있는 자가 인도에 가면 곧바로 느끼게 되는 것이 불평등에 대한 분노이다.

평화니 느긋함이니 하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상황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을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해석하여 아름답게 보는 것이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후에 인도에 간다면 불가촉천민이나 수드라 계급을 보고 그들의 삶의 자세를 찬양하지 말기를 바란다.

 

불가촉천민(달리트)들을 차에 묶어 놓고 몽둥이로 패는 인도인들...이들에게 달리트는 짐승만도 못하다.

지난 31일 인도 구자라트주 최대 도시인 아흐메다바드에서 달리트 2만5000명이 상위 카스트들이 소를 보호하겠다는 이유를 들어 달리트를 폭행하는 것에 대해 항위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달리트가 해오던 가축의 가죽 벗기는 일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아흐메다바드/AFP 연합뉴스 

부당한 차별에 대한 달리트들의 데모...달리트들은 부당한 차별을 벗어나고자 신분의 차별이 없는 불교와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도를 가면 내가 거쳤던 곳들을 가게 된다.

이곳은 인도의 북부로 인도의 중남부 또한 광활하며 북부와는 또 다른 풍광과 문화와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도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힌두교를 중심한 문화는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며 계급사회의 삶을 사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