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봄이 처연했었던지...
개나리꽃을 보면 그때가 생각이 난다.
지금은 정년퇴직을 한 지 12여 년이 되었지만 90년도 말 쯤 영등포 쪽에 근무를 할 때였다.
이맘 때 쯤 출근을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차를 가지고 갈 때는 방배동 쪽에서 올림픽 대로를
타고 가기 위해서 이수 나들목을 지나게 되는데 토끼굴 옆에 개나리가 늘어져 있는 곳이 있었다. 지금도
있겠지만....
그때 그 개나리꽃을 보면서 앞으로 이런 개나리꽃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지나다녔는데
봄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때가 50대가 막 들어갈 때였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모르는데 화사하게 피어 있는 개나리
를 보면 그때가 생각이 난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직장이나 가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그 개나리를 바라보는 마음이
처연(悽然)했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금은 종교를 떠났지만 나름대로 종교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그
럴 요소가 없었는데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두려움이나 미련도 없었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다거나 하
지는 않았었는데 죽음이 언제라도 나에게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젊어서부터 나름대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천착(穿鑿)을 하면서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를(물론 나름
대로의) 하다가 보니, 세상의 대부분의 것에 대해서 미련도 부러움도 아쉬움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다고 염세주의자도 아니고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자연의 일부
로 살아지는대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되니 세상이 그렇게 편해
질 수 없었다.
지금 봄이 한창이지만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우리 곁에 와있는 이런 이런 화사한 봄을 즐길 수가 없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로 되어지는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개나리만 보면 ‘내가 내년에도 개나리를 볼 수 있을까’ 하던 그때가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