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잘 살아가는 이야기

명복(冥福)을 빌다........저 세상이 있다고 생각하고 비는가?

뿅망치 2020. 7. 15. 08:39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상을 잘 알지 못한다.

설령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객관적으로 증명을 할 방법이 없다.

우리의 일상을 보면 죽음 이후의 세상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부분이 있고 죽음 이후의 세상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부분이 있다.

 

어느 누구에게 죽음 이후의 세상이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또 다른 사람

들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경우도 있고 죽음이후의 세계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여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어떤 쪽에 비중을 두는가에 따라서 한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의 삶에서 도덕이나 규범 등은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가정(假定)을 하고 만

들어진 것들이 많다. 특히 사람이 죽었을 때 매장을 하거나 화장을 하는 과정의 의식들은 그 사람이 죽

어서 그 영혼이 가는 세상이 있는 것으로 가정을 하여 의식(儀式)이 만들어진다.

 

사람이 죽으면 조문(弔問)을 할 때 조문객은 망자(亡子)에게 인사를 하면서 명복을 비는 절차의 의식을

행하게 된다.

명복(冥福)이란 저세상에서 누리는 복록(福祿)을 말하는 것으로 죽은 다음에도 우리가 사는 것과 같은

세상이 있어서 그곳에서 누리며 사는 복이다. 그러므로 이런 때만은 저 세상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병고에 시달리다가 또는 다른 인간관계에서 고통을 당하거나 물질적인 결핍으로 인한 고통

을 당하다가 죽은 사람들에게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그곳(冥府인 저세상) 에서는 고통이 없는 평안한

삶을 살기를 기원한다.

 

습관적으로 그렇게 인사를 하는 것 같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저 세상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곳에서

고통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원한다.

그렇다면 그런 명복을 비는 사람들이 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일상적인 삶은 이 세상이 끝이며 죽은 다음의 세상은 없는 것처럼 사는 사

람들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할 뿐이다. 만약 그 사람들이 정말 사람이 죽어서 가

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죽어서 가는 세상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이 세상에 그리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

.

또 다른 세상이 있다면 그 세상은 적어도 이 세상보다는 더 좋은 세상임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육신이 없어지니 일단 의식주(衣食住)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통을 감수하지 않아

도 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고통을 받는 가장 큰 이유가 의식주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아닌가?

그 다음으로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없다. 육신이 없는데 질병의 고통이 있을 수 없지 않겠는가....

 

그 세상이 있다면 그 세상은 고통(苦痛)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더 나은 세상일 것

이다. 그러므로 죽음 다음의 또 다른 세상이 있다면 환영하고 또 환영할 만한 것이 아닌가...

육신을 가진 인간은 생존경쟁에서 시달리고 육신이 늙어가면서 결국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이 필연적

인 운명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이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더 크고 그 시간도 행복의 시간보

다 더 길다.

그러므로 오래 사는 것은 고통의 시간이 그만큼 더 길어진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죽어서 가는 세상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이고 남겨진 자식이 어떻게 행복하

게 살아가든 불행하게 살아가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가 없어지든 인류가 없어지든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죽으면서 나와의 관계가 완전히 없어져버릴 것이니 현재를 본능대로 즐겁게 살면 그만이다. 그러

므로 착하게 살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고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죽으면 모든 것이 그만인데 그

런 것에 신경을 쓰면서 인생을 허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자신도 확실히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살지 못한다.

 

우리는 가족이나 친지 또는 유명인들의 죽음을 맞이하여 조문(弔問)을 하게 되는데 자신이 유신론자인

가 무신론자 곧 죽으면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스스로 반문해 보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생각들을 해 보지 않는다.

 

자신이 유신론자라고 생각된다면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또 다른 세상을 맞이 할 준비를 하지 않고

무신론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생각된다면 자신의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생활가운데서 유신론자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들은 해 보면 삶이 정리가 되고 진지해지게 되며 쓸데 없는 것들에 대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

게 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30년 이내 그리고 대부분은 50년 이내에 이 세상이 없을 것이

. 그 말은 50년 이내에 명복(冥福)을 빌어 받는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 전혀 죽음과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나는 기독교의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교리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불교적인

마인드로 여러분야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아왔었다.

종교 안에 있었지만 종교의 틀을 벗어나서 생각하다가 보니 다른 종교나 종교가 아닌 소위 미신에 대한

부분까지 이해를 하게 되어서 그들의 종교들에 대해서도 이해를 많이 하는 편이다.

 

나는 인간이 영혼과 육신의 결합이라는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를 하기 때문에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인

간의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과정이며 죽음의 순간이라는 것은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순간으로 이해

를 한다.

따라서 인간의 육신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가고 영혼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왔으니 내가 알지 못

하는 그곳으로 간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죽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살아가면서 사

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게 된다.

세상에 죽는 것이 제일 무섭다는데 그것이 무섭지 않는데 이 세상에 무엇이 무섭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