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튀르키에 패키지관광여행기

2025 그리스 튀르키에 패키지관광여행기(65)..9박 11의 여행이 끝나다...그리고 터키라는 나라

뿅망치 2025. 12. 31. 22:45

톱카프 궁전 관람을 끝으로 이번 여행의 공식적인 관광은 끝이 났다.

궁전을 나온 시간이 11시 정도로 우리가 계속 이스탄불에서 머물면서 식사를 하였던 블루모스크 뒤에 있는 쇼핑센타로 간다.

점심 식사 전에 여자들이 좋아하는 장미오일 같은 화장품이나 선물을 하기 좋은 로쿰이나 딜라이트 같은 과자를 파는 곳이다.

우리가 늘 가던 식당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소피아 성당과 톱카프 궁전을 들어가려는 사람드의 줄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톱카프 궁전의 성문...입장료가 상당히 비싼데   톱카프 궁전이 10만원 정도이고 소피아 성당이 4만원 정도인데 이 많은 관광객들에게 받는

입장료가 얼마인가....

아흐메트 공원... 이 공원을 몇 번이나 지난다.

 

쇼핑센타 주된 제품이 장미와 관련된 제품으로 딜라이트나 로쿰도 장미꽃으로 만든 것이 있다.

카이막이 천상의 맛이라고 메스콤에서 하도 떠들었는데..천상의 맛까지는 아니다. 

로쿰

마지막이어서 열심히 고른다.

접시에 맛배기로 주는 과자가 딜라이트이다.

장미로 장신된 실내 터키나 중동에는 장미 오일을 많이 팔고 많이 사기도 한다....장미 관련 제품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어서 여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일찌 산 사람과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일찍 나오고...

 

우리는 아이들 내외와 약속하기를 외국으로 여행 가서 선물 같은 것을 사 오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에 이스티클랄 거리에서 손녀들 손거울 산

걸로 마감을 한다.

2016년도에는 로쿰과 딜라이트를 사 왔었는데 너무 달다가 보니 냉장고에서 1년 동안이나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사지 않기로 했다.

 

식당은 다르지만 우리가 이스탄불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었던 그 거리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이름이 고려정이어서 한식이나 한국사람이 운

영하는 줄 알았는데 탄두리 같은 닭다리와 밥이다.

 

유럽 쪽에 와서 좀 오래 있다가 보면 고기 위주로 식사를 하게 되는데 고기를 며칠씩 먹게 되면 질리게 된다.

어지간하면 먹는 문제로 고생한 적이 없었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동유럽에 갔을 때였을 때로 야채도 없이 감자 고기 이상한 스프만 주구장

창 먹었더니 식사 시간이 기다려지지 않게 되는 경우를 겪었었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의 식사는 유럽보다는 많이 훌륭했었다는 생각이다.

 

9박 11일이 금방 지나가 버렸는데 그 짧은 시간에 그리스까지 다녀왔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드는 듯하다.

 

이스탄불은 2천 5백년이 넘는 역사적인 도시이고 이곳에서 동로마 제국고 오스만 제국이라는 두 제국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니 역사적인

유적들도 많고 그만큼 사연들도 많은 도시이다.

2일 동안 이스탄불을 보고 가면서 이스탄불을 보고 간다고는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오기도 어려울 것이니 인터넷을 더 찾아보거나 TV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서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가는 것을 나중

에라도 알아 보기로 한다.

인천으로 출발하는 항공기가 4시 45분으로 공항에 도착하니 1시 40분이다.

공항에서 3시간 반을 기다렸다가 비행기가 지연이 되면서 5시가 넘어서 출발을 한다.

이스탄불은 6시간이 늦으므로 한국시간으로는 11시인 셈이다.

이스탄불에서 인천으로 갈 때는 편서풍의 영향으로 인천에서 이스탄불로 올 때보다 1시간 반에서 2 시간 정도 덜 걸린다.(약 9시간 45분 ~

10시간 15분)

 

인천공항에 도착을 하니 8시로 10시간이 걸렸다.

무사하게 도착한 것을 감사하며 여행 동안 얼굴이 익은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지면서 9박 11의 여행을 마친다.

이번 여행에서 집사람이 고생을 좀 했는지 이제 당분간 먼 곳의 여행은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말을 명심하고 더 늙기 전에 열심히 다니시기를...

고려정이라는 식당  힌 식당이 아니다.

고추장이 걸쳐진 밥....고기가 질릴 때가 되어서 

식당이 있는 카페 골목...버스를 타러 간다.

우리가 어제 유람선을 탔던 근처이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소나기가 오고.... 

1시 40분에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하고

세 시간의 시간이 남아 있어서 면세점 등을 구경한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터키항공

비행기에서 보는 아래...광산인 듯...차도 다니고 사람들도 다니는 것을 보아 지금도 운영 중인 듯

 

자다가 일어나서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5시 

비행기에서의 기내식은 어떤 경우에도 먹어야....

해가 뜨기 시작한다..7시로 서해 위이다. 

비행기가 착륙을 해야 여행이 안전하게 끝이 난다....8시가 조금 넘어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https://youtu.be/LCU1g3iJ-U8?si=j-Q0EHgbFUKkQFav...10분에 보는 터키 역사 유튜브

 

*******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서 간단히

 

면적 : 783,356 km2 (36 위) 한반도의 4배 정도 크기이고 남한의 8배이다.

 

인구 : 83,614,362명 (19위)

 

국민소득 : 15,666달러(2024년)

 

종교 : 이슬람교 중에서 수니파가 다수

 

민족 : 투르크계가 대부분이고 쿠르드족이 15% 정도이며 그리스 인등 기타

 

터키 공화국(터키어: Türkiye Cumhuriyeti 튀르키예 줌후리예티[*]), 약칭 터키(터키어: Türkiye 튀르키예[*])는 서아시아의 아나톨리아와

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의 동트라키아에 걸친 국가이다. 수도는 앙카라이며 가장 큰 도시는 이스탄불이다. 북서쪽으로는 그리스와 불가리아

와 접경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조지아가 위치해 있고, 동부로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란이 위치하며, 남동쪽으로는 이라크, 남

쪽에는 시리아와 지중해가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에게 해가 있다. 대략 70%에서 80%에 달하는 인구가 터키인이며, 나머지 인구는

소수민족인데, 그들 중 쿠르드인이 15%에서 20% 정도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터키가 세워진 자리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장소인데, 아나톨리아인, 아시리아 제국, 그리스인, 트라키아인, 우라르투인, 아르메니아인 등이

모두 이곳을 거쳐갔다. 헬레니즘은 알렉산더 대제의 시기에 시작되어 비잔티움 제국 시기까지 지속되었으며, 셀주크튀르크인들이 11세기부

터 이주해오기 시작하여 1071년에 드디어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을 꺾으며 튀르크계 터키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룸 술탄국이

1243년에 몽골 제국이 쳐들어오기 전까지 터키 지방을 지배하였으며, 몽골에게 멸망 당한 이후에는 조그만 베이들로 나누어져 자치적으로

살았다. 13세기 후반, 오스만인들이 점차 베이들을 통합하기 시작하였고, 힘을 키워 발칸 반도를 침입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아나톨리아 반

도가 급격히 튀르크화되었으며 1453년에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며 그 역사의 정점을 찍었다. 오스만 제국의 팽창은 셀림 1

세의 재위기에도 계속되었고, 슐레이만 대제의 시대에는 오스만 제국이 남동부 유럽 대부분,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방까지 장악하며 세

계적인 대제국으로 떠올랐다. 다만 18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도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쇠퇴를 막기 위하여 마흐무트 2세가 19세기 초에

근대화 개혁을 실시하며 군대, 봉건제, 사회 등 모든 전반적인 부분을 대개혁하였다.

 

1913년에 젊은 군 장교들을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들의 지휘 아래 오스만 제국은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이때 오스만 제국은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그리고 그리스인들에게 잔혹한 학살을 저질렀다. 오스만 제국과 그 동맹국들이

대전에서 패배하여 힘을 잃자 독립의 요구가 강해졌고 결국 오스만 제국은 여러 신생 국가들로 나누어 쪼개졌다. 터키 지방에서는 터키의 국

부 케말 아타튀르크가 외국 군대에 대항하여 터키 독립전쟁을 전개하였고, 1922년 11월 1일에 마침내 술탄제를 폐지하며 1923년 10월 29

일에 터키 공화국을 세웠다. 아타튀르크는 수없이 많은 개혁안들을 내놓았으며, 서구 사상을 들여왔고 새로운 신생 터키 정부에 민주주의와

자유와 같은 가치들을 주입하였다.

 

터키는 UN의 창립 회원국이고, NATO의 일원이자 IMF, 세계은행의 멤버이자 OECD, OSCE, BSEC, OIC, G20의 가입국이다. 또한 터키

는 1950년에 유럽 평의회에 참여하였고, 1963년에는 EEC에도 일부나마 참여하였으며 1995년에는 EU 관세동맹에도 참가하였다. 2005

년부터는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2019년 3월 13일, 유럽 의회는 다만 터키의 가입 협상을 중지하기로 의결하였으나,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터키의 경제적, 외교적 힘은 지역 강국의 위상을 가져다 주었고, 여러 국제기구는 터키를 신흥개

발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터키는 세속적, 단일 의회 공화국이며 2017년의 국민투표로 대통령제를 도입하였다. 현재의 행정부는 정의개발당

의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끌고 있으며, 그는 현재 케말주의와 언론의 자유와 같은 세속적 가치들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이슬람교의

영향력을 국내외로 넓히려 하고 있다. 공용어는 터키어, 국교를명시하지는 않고 있으나, 터키 국민들의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신봉한다.

(위키백과)

 

아래는 더 자세한 터키의 역사에 대해서(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 ㅎㅎ)

 

선사 시대, 고대와 중세[편집]

 

신석기시대인 기원전 6,500년에 차탈회윅(터키어: Çatalhöyük)이라는 최초의 부락이 만들어졌다.

기원전 1900년경 아나톨리아 지역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히타이트인들에 의해 점령되었다. 히타이트인들은 아나톨리

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이윽고 메소포타미아 반도까지 점령한다. 그러나 히타이트는 기원전 1200년경에 무너졌다. 그 후 아나톨리

아의 서남부 지역 일부는 프리지아인과 리디아인이 점령하였고 동부지역 일부는 토착왕조인 우라르투 왕국 통치 아래 남게 되었으며 나머지

지역들은 스키타이와 같은 원시 부족들이 살게 된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가 기원전 6세기 중반에 이 지역의 남부를 차지했으며, 그것을 이어받은 헬레니즘 제국이 아나톨리아 반도 남부

의 일부분만을 세력권 안에 편입했다. 기원전 1세기경에는 로마가 아나톨리아를 대부분 차지하였다. 대아르메니아 왕국은 서쪽의 로마 제국

과 비잔티움 제국, 동쪽의 파르티아 제국과 사산 제국 사이의 완충국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기원후 3세기 초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

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건설하면서 아나톨리아의 모든 지역들이 비잔틴 제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

 

6세기 중반 돌궐족은 중앙아시아에서 동북아시아까지 이르는 제국을 세웠다. 중국을 속국으로 만들었고 아나톨리아 동부부터 자리를 잡게

된다. 11세기 중반에는 투르크 유목민의 한 집단인 오구즈 족이 동쪽으로부터 침입해 들어왔다. 이 무렵 최초의 무슬림 왕조인 셀주크 제국

(터키어: Selçuklular 셀주크룰라르, 페르시아어: سلجوقيان 살주키얀; 아랍어 سلجوق 살주크, 또는 السلاجقة 알-살라지카)이 등장하게 된다. 셀주

크 제국은 11세기 중반부터 12세기 후반까지 중앙 아시아와 중동 일대를 다스린 수니파 무슬림 왕조이며, 중앙아시아의 부족연합체에서 발

흥하여 중동에서 투르크 세력의 시조를 이루었다.

 

12세기 말에 수많은 토후국으로 분할된다.

 

오스만 제국[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오스만 제국입니다.

 

오스만 제국(오스만 터키어 : دولت عالیه عثمانیه Devlet-i Âliye-yi Osmâniyye, 현대 터키어 : Osmanlı İmparatorluğu)은 오스만가문을 왕가로

하여, 현재 터키의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을 수도로 정하여 서쪽의 모로코부터 동쪽의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러 북쪽의 우크라이나에서 남쪽의

예멘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다민족 제국이다.

 

13세기 말에는 오구즈족의 일파인 카이족이 아나톨리아의 동부와 중부를 차지하고, 카이족의 오스만 1세가 오스만 왕조를 세웠다. 그들이

영토를 확장하는 초기 단계에 오스만 일족이 투르크족의 가지스(ghazis:비잔틴 제국에 대항해 싸우는 이슬람교 전사들)를 지도했다.

 

14세기 후반 오스만족은 마침내 서부 아나톨리아와 남동부 유럽의 비잔틴 영토를 차지하고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발칸 국가들을 속국으로

편입시켰으며, 동부 아나톨리아의 투르크멘 공국을 점령했다. 15세기 초반 오스만제국은 발칸 속국들을 직접 통치하고, 특히 1453년 비잔

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여 유프라테스 강(동쪽)과 헝가리(서쪽)까지 영토를 넓혔다. 16세기 후반에는 그 세력이 절정에

달해 발칸 반도와 중앙 유럽의 헝가리, 중동, 북아프리카 거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아나톨리아(소아시아)의 한구석에서 건국한 소 군후국으로부터 발전한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왕조는 14세기 후반 동유럽의 불가리아 제국

을 점령한 것을 시작으로 15세기 중반에는 동로마 제국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제국의 상징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였고, 16세기 초반

에는 맘루크 왕조를 정복하여 서아시아·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 제국까지 정복하여 지중해 세계의 과반을 차지한 세계 제국인 오스만제국으

로 발전하였다. 이로써 오스만제국은 과거 히타이트 제국의 영광을 모두 회복한다.

 

그러나 술탄 쉴레이만 1세(1494년 ~ 1566년)의 통치 이후로는 정치적·행정적·재정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1] 1718년경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에서 투르크족을 축출했으며, 러시아는 1783년에 크리미아를 합병했다.

그리스(1830년, 왕국)도 영국의 지원을 받고 독립하였다. 1881년에는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독립하였으며 (루마니아는 1861

년부터 공국) 1908년에는 불가리아(1879년부터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 1912년에는 알바니아가 독립하였다.

 

19세기 말에는 세계 정세의 변화로 4세기 동안 소수민족과 소수 종교분파에게 지방자치를 용인했던 밀레트(비이슬람 종교자치제) 체제가

완전히 붕괴하면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결국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라는 비극이 일어

나고 만다.

 

1908년에 청년 투르크당 일파가 제국을 되살리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발칸 제국에서의 군대와 영토 상실로 인한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터키는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편에 가담했다. 전후 아라비아의 여러 속주와 일부 지역을 잃었지만 격렬한 시민

전쟁과 그리스와의 전쟁 결과 1923년 로잔 조약으로 지금의 국경선이 생겼고, 케말 아타튀르크를 대통령으로 한 터키 공화국이 탄생했다.

술탄제와 칼리프제는 폐지되고 아타튀르크의 지도 아래 근대화가 시작되었다.

 

터키 공화국의 성립과 현대의 터키[편집]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1923년 10월 29일, "터키 공화국"을 건국하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정치·경제·사회체제 전반에 대한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이슬람의 지배적 역할을 축소하고, 터키어를 아랍 문자

대신 라틴 문자로 쓰도록 함으로써 터키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을 축소시켰다. 또한 이후 오랫동안 영향력이 지속된 국가통제 방식의 경제발

전 정책을 마련했다. 1938년 아타튀르크 사망 후 불안정한 기간과 짧은 군부 통치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회정치 및 다당제가 정착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아직도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역사에서 국가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중립을 유지하다 1945년 2월 23일 독일, 일본에 선전 포고했다. 전후 서유럽과 제휴하고 미국의 군사·경제 원조를

받았다. 1952년에는 NATO에 가입했으며, 1953년에는 발칸 협정의 조인국이 되었다. 또한 바그다드 조약(1955, 후에 CENTO로 이름이

바뀜)과 유럽 경제협력기구(OEEC) 및 유럽 의회에 가입했다. 1959년에는 그리스와의 3년에 걸친 키프로스 분쟁을 잠정적으로 해소했다.

1961년 터키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새 헌법이 채택되었으며, 1963년에 유럽 공동시장의 준회원국이 되었다.

 

1963년말 키프로스에 거주하는 그리스인과 터키인들 사이의 분쟁으로 키프로스에서 내란이 일어나자 그리스와 터키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어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으나 유엔의 압력으로 전쟁이 억제되었다. 1987년과 1996년에는 영토분쟁으로 재차 갈등이 빚어졌다.

1974년 키프로스에서 그리스 군사정부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에 맞서 터키군은 북키프로스를 점령했다. 그 후 국내정세 불안과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1980년 군부가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2년 후 새 헌법이 대다수 유권자들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1983년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계엄령은 점차 해제되었다. 1983년 과격한 쿠르드족 분리주의 운동의 출현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지속적

인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터키는 조국당의 투르구트 외잘 총리 재임기간(1983년 ~ 1989년)중에 비교적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발전을 이루

었고 1990년대 들어서는 친이슬람계 복지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증가하는 가운데 중도파 정당들이 집권했다.

 

2010년 2월 22일 터키의 군부가 이슬람 지향주의로 넘어가는 정부를, 세속적으로 바꾸기 위하여 전복을 기도하나, 발각. 터키의 군부 인물

49명이 긴급 체포되었다.[2] 2012년 10월 29일에는 공화국의 날을 맞아 총리 부인이 히잡을 쓸 수 있게 허가한 것과 함께 이슬람주의 대 세

속주의의 논란으로 터키에서 수천 여 명이 종교중립 정치요구시위가 일어났고, 시위해산과정에서 터키경찰은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쐈다.[3]

[4] 2013년 6월 1일에 이스탄불에서 탁심 광장을 지키려는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반정부시위가 터키전역으로 퍼졌고 이스탄불과 앙카

라를 포함한 지역에서 2천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 되었다.[5][6]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