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밴드와 UAE.모로코, 스페인

대한민국 최고(?)의 주부밴드인 맘마미아밴드와 함께한 두바이, 모로코, 스페인 여행(35) 스페인(14)... 세고비아(1)..로마 수도교

뿅망치 2018. 8. 15. 08:14

마드리드에서 서북쪽으로 90km 있는 세고비아는 과다라마산맥 기슭 해발 1,000m 위치에 있으며 BC 700년 무렵부터 이베리아인이 거주하여 왔으나 BC 1세기 말에 로마의 식민시가 되었다고 한다. 서로마가 멸망하면서 서고트족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였으나 711년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이곳도 11세기에 이슬람교도가 침입하여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레콩키스트 운동으로 이곳을 되찾은 카스티야왕국의 알폰소 10세는 이곳을 수도로 정하였다고 한다.


중세에는 양모공업이 번창하였으며, 현재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여 도자기와 직물제조가 주된 사업이며 도시 곳곳에 로마인이 세운 수도교(水道橋)와 백설공주의 성으로 알려진 성채 알카사르, 세고비아 대성당 등 고대와 중세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어서 스페인을 찾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는 코스 중의 하나인 도시이다.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던 세고비아

  


오늘은 세고비아와 톨레도 두 도시를 보는 일정으로 8시 반 정도에 숙소에서 출발하여 세고비아로 가는데 가는 도중에 과다라마 산맥을 지나게 된다.

과다라마 산맥은 마드리드 북쪽에 있는 산맥으로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군과 반란군 사이에 치열한 전쟁을 벌인 곳이기도 한 곳이다.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가는 길에 과다라마 산맥이 있고...

 

어느 나라나 역사적으로 크고 작은 내전의 경험들이 있겠지만 스페인의 경우는 좌파정권인 공화군과 좌파정권을 인하지 않으려는 군부와 파시스트 등 우파(右派)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이 전쟁으로 인해서 스페인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상의 추락 등의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이 전쟁은 스페인 내전이지만 국제전의 양상을 띠게 되어 좌파 정권을 지지하는 소련 같은 공산주의 국가와 무정부주주이자들 그리고 파시즘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이 공화파를 지지하여 전쟁에 참여하였고, 스페인의 좌파정권을 원하지 않거나 파시즘을 추구하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반란군을 지원하여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여 하게 되어서 국제적인 이념의 대리전 같은 양상을 띠게 되었다.

 

대부분의 내전의 경우에는 주변국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또는 이념의 동질성에 따라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스페인의 내전 같은 경우에도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사상의 대리전의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6.25 전쟁이 생각나게 하는 스페인 내전이다. 

 

스페인은 1936.7.17~1939.4.1의 3년간의 전쟁으로 50만이 죽었고 전 국토가 황폐화 되었으며 반란군의 사령관이었던 프랑코 35년 독재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독재 기간 동안 5만 명이 처형이 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유럽에서 가장 낙후한 나라가 되었다.

이 전쟁에는 35천명의 세계의 지식인들이 참여 했는데 조지 오웰, 생땍쥐페리, 어니스트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등이 정부군의 편에서 참전을 했던 사람들이고 헤밍웨이나 조지 오웰은 참전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다. 

  


산맥이라고 해 봐야 그리 높은 산맥은 아니어서 터널과 산기슭을 따라 난 고속도로를 티고 가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이 산맥을 지나면서 가이드가 헤밍웨이가 이 전쟁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누구를 위해서 조종(弔鐘)은 울리는가’ 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 산에 도토리가 무척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도토리와 헤밍웨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를 잠깐 하면 이렇다.

헤밍웨이가 마드리드에 머물면서 소설을 쓰곤 했는데 스페인에서 즐거움 중에 하나가 오후에 간식을 먹는 것인데 도토리묵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유를 모를 복통이 있어서 약을 먹어도 낮지 않아서 병원엘 갔더니 특별한 원인이 없는데 이상하다고 하면서 혹시 특별한 음식 같은 것을 먹는 것이 없느냐고 물어서 도토리묵을 간식으로 먹는다고 했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배가 아픈 것이 도토리 묵 때문이니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실망한 간식을 먹는 즐거움을 상실하게 된 헤밍웨이는 실망을 하게 되고 한 참 동안 두문불출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소설을 하나 썼다고 한다.

 

그 소설 이름이 ‘묵(무기)이여 잘 있거라’ 였다고....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까지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세고비아가 가까워 오면서 눈 덮힌 과다라마 산맥이 보이고 좌측 아래에는 평원과 구릉이 보인다.

세고비아에 도착한 시간이 열 시 정도로 한 시간이 좀 넘게 걸렸다.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로 가는 길에 사자들의 계곡이라고 불리우는 계곡에 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무덤...스페인 내전으로 죽은 전몰자의  무덤이라고 한다.  프랑코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고...


인터넷에서....전몰자의 계곡

세고비아를 가닌 길에 보이는 풍경들...과다라마 산맥의 기슭이다.

길 아래 쪽에는 낮은 구를들이 보이고....


곧바로 세고비아 구 시가지와 수로(Old Town of Segovia and its Aqueduct)를 관광하기 위해서 수도교가 있는 곳의 광장에 차를 주차하고 수도교와 구시가지와 대성당과 알 카사바를 둘러보기 시작하였는데 이 모든 것들이 구 시가지에 있어서 걸어다니면서 보기에도 아주 쉽다.

수도교 앞 주차장에 내려서 세고비아 관광을 시작한다.

인증 샷을 날리고...

  2천 년이 넘게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수도교...가장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다고

 

수도교는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년) 때 건설되었으며 1906년까지도 고지대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시내에서 17 km 정도 떨어진 프리오강(Rio Frio)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하여 축조되었는데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166개의 2층 아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길이 813 m, 최고 높이 약 30 m로서 다듬은 과다라마 산맥에서 가져온 화강암만을 사용해 축조했고, 시멘트 류나 칠을 입히는 등의 접합방식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길이가 거의 720 m나 되며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지만 최신식 수도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어 인위적으로 물을 흘려보낼 수도 있다고 한다.

아치 윗 단 가운데에 있는 벽감(壁龕)에는 성세바스티아누스상이 안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수도교 아래는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동상이 있는데....왜??

수도교는 옆으로 올라가서 볼 수 있다.

웨에서 보는 수도교..

올리가는 길은 수도교의 좌측에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뒤돌아서서 보게 되면 좌측으로 수도교의 동쪽이다.

로마 제국이었던 곳에는 이런 수도교가 여러 군데 낰아 있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남아 있는 것은 없다고...


다리 위에서 본 세고비아..뒤에 과다라마 산맥이 보이고 해발이 1,000미터라고 한다.

과다라마 산맥에서 가지고 온 화강암이라고...

다리 가운데 벽감이 있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성 세바티우스라고..


부활절 행사의 퍼레이드라고...인터넷에서


대성당의 마요르 광장으로 올라가는 골목...

이 사진들은 아마도 투우사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곳 출신의 유명인들인지???....

이곳은 다 로만가톨릭인데 성당 들이 왜 곳 곳에 있는지...

양 옆에는 가게들이 있고...

이글레시아 데 산 마틴 성당...이글레시아란 작은 이란 뜻이라고...이곳 성당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의의를 가이드가 설명을 해 주었지만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나가는 길목에 보인다.

 성당 앞에 있는 청동상치 마틴??

계속 이런 골목을 걸어 올라가면


세고비아 대성당이 보이고

이글레시아 드 산 미구엘 성당도 보이며....호텔로 개조되었나??

마요르 광장이 나온다.

 

수도교에서 구 시가지를 따라 올라가면 가게들이 있는 골목들이 나오고 이 골목을 지나게 되면 마요르(Major)광장이 나오고 마요르 광장 맞은편에 세고비아 대성당이 있다.

유럽의 도시의 중심광장(마요르)은 그 도시의 종교건물인 성당과 같이 있게 되는데 이 대성당은 ‘모든 성당 중의 여왕’, 또는 ‘대성당의 귀부인’이라 불리우는 성당이라고 한다.

원래 있던 대성당이 코무네로스의 반란으로 파괴된 후, 카를로스 1세의 명령으로 1525년에 재건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1768년에야 완성되었다. 후기 고딕 양식으로 완성된 성당은 드레스를 활짝 펼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유럽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대성당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세고비아 대성당..인터넷

인터넷...대성당의 귀부인이라고 불리운다고


대성당은 고딕양식으로 건설되었으며 가로 50 m, 세로 105 m, 신랑 높이 33 m의 웅장한 규모이다. 3개의 볼트식 신랑과 익랑, 돔, 중앙후진, 7개의 예배실 등이 있으며, 1985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부속 박물관에 회화, 보물과 함께 유아의 묘가 있는데, 이 묘는 유모의 실수로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엔리케 2세 아들 페드로의 묘로 왕자를 실수로 죽게 한 유모도 즉시 그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인증 샷

지붕의 정교한 조각들

  지나가면서 사진을 찍는다....동물 조각상은 뭐지?? 


세고비아의 로마수도교


수도교에서 본 세고비아

마요르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