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을 위한 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쓰여진 장화홍련전 이야기

뿅망치 2022. 11. 19. 21:55

지인들과 어쩌다 장화홍련전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생각이 나서...

 

아마도 사람들은 장화홍련전의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장화홍련전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밀양 아랑각의 아랑 설화를 차용해 와서 쓴 소설이다.

 

장화홍련전에서도 아랑의 설화와 마찬가지로 장화홍련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원혼으로 나타나서 서너명의 사

또를 죽게 만드는데 실제로는 장화홍련 두 자매의 자살에 대한 보고를 받고 타살을 의심하여 진실을 밝혀 처벌을

하고 누명을 쓰고 죽은 자매의 사건의 누명을 벗겨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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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의 모티브가 되는 장화홍련 사건은 효종 7(1656) 전동흘이라는 사람이 평안도 철산의 부사로 있

던 시절에 일어난 사건이다.

사건의 실제 내용은 이렇다.

철산에는 배좌수라는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첫번째 부인으로 부터 장화와 홍련이라는 두 딸을 얻었다. 하지만 불

행히도 배좌수의 부인은 오래 살지 못하고 사망하여서 배좌수는 허씨 부인과 재혼하여 둘 사이에 아들 둘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화와 홍련 두 자매가 차례로 자살하는 이상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전동흘이 받은 보고에 의하면 장화가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했다가 낙태를 하는 등

부정하고 행동거지가 좋지 않아 계모 허씨가 이를 꾸짖자 이를 치욕스럽게 여기고 연못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한 것

이며, 언니가 자살한 충격에 동생인 홍련도 그 뒤를 따랐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전동흘은 이 보고를 석연치 않게 생각하고 조선시대 법의학 지침서인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에 따라 철

저히 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부사의 지시대로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먼저 장화와 홍련의 사인이 익사인지 아니면 살해

후 그 시신을 물에 빠뜨린 것인지에 대한 부검이 진행되었다.

신주무원록에 따르면 익사하는 사람은 설령 그것이 스스로 물에 뛰어든 자살이라 할지라도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허우적대기 때문에 몸에서 흰 거품이 나온다고 되어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자매의 몸에서는 실제로 흰 거품이

발현되어 익사한 것은 사실이라고 판단되었다.

그 후에는 그 익사가 자의에 의한 자살인지, 아니면 타의에 의한 타살인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홍련이 자살

한 장소의 현장조사와 연못에 몸을 던질 때 가지고 있던 물품에 대한 분석이 진행되었다.

 

신주무원록에 따르면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고 몸을 투신하기 전 연못 앞에 신발도 벗어놓는다

고 되어있는데, 장화의 시신은 신을 신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보따리를 들고 있었는데 그 보따리에는 계모 허씨

부인과 크게 싸운 후 외갓집이라도 찾아갈 요량이었는지 개인 소지품들이 꼼꼼하게 싸여 있었다.

자살하러 간 사람이 신발도 벗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개인 소지품들을 꼼꼼하게 싼 보따리까지 가지고 있었다

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전동흘은 시체의 검시를 명했다. 하지만 두 자매의 아버지인 배좌수와 계모인 허씨부인

이 부사를 찾아와 양반 여식의 몸을 어찌 함부로 검시를 하나며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전동흘이 이에 꺾이지 않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검시가 진행될 수 있었다.

옷을 벗겨본 결과 장화의 주머니에 은화가 상당량 있었고 보따리와 더불어 이 역시 자살한 사람이 챙겼다고 보기

에는 무리가 있었으며 부검으로 장화의 임신여부를 확인해보았으나 장화는 한번도 임신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판

별되었다. 이에 따라 허씨 부인이 장화가 낙태를 한 증거라고 가져왔던 태아의 형체에 대해서도 검사를 진행한 결

과 쥐의 껍질을 벗겨 만든 조작된 증거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러한 명백한 증거들을 기반으로 허씨 부인을 심문한 결과 밝혀진 사건의 진상은 아래와 같았다.

 

재산 문제 때문에 장화 홍련 자매와 계모 허씨는 다툼이 잦았으며 그로 인해 본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리고 거기에 장화와 홍련의 외삼촌까지 가세하여 두 자매를 지지하였기에 그 분쟁은 더 심화 되었다고 한다. 

시대의 규정상 계모인 허씨 부인과 그녀의 두 아들보다 본부인의 자식인 장화와 홍련 자매가 집안의 재산 상속권

이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배좌수가 스무살이 된 장화를 종은 집안에 시집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허씨에게 그에 걸맞는 혼수를 마련하게 하자, 이대로 가다가는 대부분의 재산이 장화와 홍련 자매에게 돌아가겠

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쥐를 잡아 껍질을 벗겨 만든 시신을 장화가 자고 있을 때 몰래 그녀의 이불 속에 넣은 뒤 장화가 간부(

)를 두고 몰래 임신을 했을 뿐만이 아니라 낙태까지 했다고 모함을 하였다.

 

이에 속아 넘어간 배좌수는 장화가 집안을 더럽히고 모욕을 했다며 분노하였고, 이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장화를 남이 모르게 죽여 흔적을 없이 하고자 하였다. 이에 허씨부인이 그렇게 하면 자신이 전실(前室) 자식을 모

해하여 죽였다고 오해할 것이니 그러지 말고 장화를 불러 거짓말로 속여 이번 일의 자숙을 위해 외갓집에 다녀오

게 한 뒤, 아들들을 시켜 같이 가다가 뒤 연못에 밀쳐 넣어 죽인 뒤 자살로 공표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사

실을 알게 된 동생 홍련은 억울함과 언니를 잃은 슬픔으로 그녀의 뒤를 따라 자살하게 된 것이다.

 

이에 전동흘은 전실 부인의 딸을 모함하고, 죽이기까지 한 허씨 부인은 능지처참하여 후일을 징계하며, 누나를 살

해한 그녀의 아들들은 교살할 것이며, 허씨에게 속아 넘어가 자신의 딸을 죽이고 자살로 위장하는 것에 동모(

)한 배좌수는 유배를 보냈다고 한다.

 

이후 사건을 잘 처리한 전동흘은 철산 백성들의 칭송을 샀으며, 이 사건은 입소문을 타고 퍼지게 되었고, 후일 전

동흘의 후손들이 박인수라는 사람에게 이 사건을 소설로 지어줄 것을 의뢰했는데,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장화

홍련전이라고 한다.

 

장화홍련전의 줄거리는

 

평안도 철산 땅에 사는 좌수(座首) 배무룡(裴武龍)은 늘그막에 두 딸 장화(薔花)와 홍련(紅蓮)을 낳았다. 그 뒤 부

인 장씨(張氏)가 세상을 떠나 후처로 허씨(許氏)를 맞아들여 3명의 아들을 두었다.

허씨는 용모가 흉악했고 마음씨마저 간악하여, 전처 소생인 장화와 홍련을 학대했다. 마침내 계모는 구박과 모해

(謀害)를 가하다 못해 장화에게 누명을 씌운 끝에 끝내 연못에 빠뜨려 죽였고, 홍련 역시 세상을 떠난 언니를 그리

다 못해 같은 연못에서 언니의 뒤를 따랐다. 그 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두 자매의 영혼은 원한을 풀고자 새로 부

임한 부사를 찾아가나, 부임하는 부사들마다 겁에 질려 쇼크사했다.

 

그러던 중 담이 큰 정동우(鄭東祐)라는 사람이 자원하여 철산부사로 부임했고, 그는 망령 자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계모와 그의 아들 장쇠를 처형한 뒤, 연못에서 두 자매의 시체를 건져내어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 뒤, 정동

우는 벼슬길이 터서 나중에 통제사까지 올랐다.

 

배 좌수는 윤씨에게 다시 장가를 들어 두 딸의 현신인 쌍둥이 자매를 낳는다. 이들은 장화·홍련이라 이름 붙이고

 장화와 홍련이 자라서 평양의 거부 이연호(李連浩)의 쌍둥이 아들 윤필, 윤석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라는 내용이다.

 

장화홍련 소설에는 밀양의 아랑각의 설화의 중요 내용을 차용해 왔는데 아랑각 설화(說話)는 밀양부사의 딸이 자

신에게 음심(淫心)을 품은 관노(官奴)에게 죽임을 당하여 대나무 숲에 버려지게 된다. 아버지는 실종된 딸을 찾으

려고 하였으나 임기가 끝나고 밀양부사를 떠나게 되자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해원(解冤)하기 위해서 후임 부사에

게 혼령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심약한 부사들이 부임 첫날 죽어나가자 아무도 밀양부사로 가려는 사람이 없

게 되었다. 그러자 붓장수를 하던 담력이 센 이상사라는 사람이 밀양부사를 지원하여 혼령으로 나타난 아랑의 이

야기를 듣고 범인을 색출하여 원수를 갚아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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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의 소설에서 장화홍련의 원혼이 철산부사에게 나타나서 철산부사들이 죽어나가게 만들었는데 철산부사

에게 나타날 수 있다면 자신을 죽게 만든 아버지나 자신을 죽게 만든 계모에게도 나타나서 직접 복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심약(心弱)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는 억울한 부사들은 없었을 것 아닌가.....

 

그리고 아버지는 후처가 자신의 자녀를 모함하여 죽이는데 같이 모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장가를 가게 하

여 자녀를 가지게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가...

설령 몰랐다고 하더라도 일단 장화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체면을 중시하여 자신의 딸을 죽게 만들었는데, 아버지

의 무책임함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딸들이 다시 그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고 싶겠는가.

 

물론 소설이니 극적인 재미를 위해서 사또들을 죽게 만들었을 것이다.

 

장화홍련전을 쓴 사람은 그 당시의 가치관이나 도덕관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현대인들이라면

억울하게 죽은 사또들 생각도 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도 효를 강조하게 위해서 자신의 자신의 목숨을 팔아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심청이나, 자신의 어머니에게 효

도하기 위해서 아이를 생매장하려고 한 손순의 효를 칭찬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설화나 소설은 그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도덕관, 그리고 생명관이나 세계관들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

금에 와서는 그것이 맞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가치관들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후대에 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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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 사건을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 당시에는 여자들에게도 상속권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궁

금한 것은 언제부터 여자들에게는 상속권이 없어지게 되었는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