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 럽 3개국 체코 오스트리아 헝거리

동유럽 3국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을 다녀오다(6)..체코 자유투쟁의 상징 바츨라프광장

뿅망치 2023. 7. 13. 00:34

바츨라프 광장 야경

 

하벨재래시장을 지나서 조금 걸어 가면 바츨라프 광장(영어로Wenceslas Square)이 나오는데 바츨라프 광장은 구시가지 광장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광장 중 하나라고 한다.

바츨라프광장 ...앞에 보이는 건물은 국립박물관이다....길 옆에는 상점들과 카페들이 있다.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 국립 박물관에서부터 무스테크 광장까지 이어지는 길이 750m, 너비 약 60m에 달하는 긴 대로인데 광장의

역사는 Charles IV(보헤미아의 왕으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말 시장으로 설계한 13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600년이 지난 지

금은 소련공산주의로부터 해방과 민주화를 위한 시위가 열린 곳으로 국가의 상징과 같은 곳이라고 한다.

 

광장 끝에는 국립 박물관이 있고 국립박물관 앞에는 체코인들이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성 바츨라프 1세의 기마상이 서 있으며 이

때문에 바츨라프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앞에 바츨라프 기마상이 보이고...

바츨라프 동상쪽에서 바라본 광장...가이드가 광장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듯...

바츨라프 1세 기마상....  바츨라프는 907경에 태어나서  929. 9. 28에 사망한 보해미아의 왕으로 기독교 전파에 힘을 썼으나 929년

독일의 하인리히 1세의 침공을 받아 항복하게 되자 항복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동생인 볼레슬라프에게 형을 살해할 것을 부추겨

서  교회 문앞에서  동생에게 살해하게 당하였다. 그후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죽인 동생은 형의 유해

를 932년에 성 비투스 교회로 옮겼다고 하며 그후 성 비투스교회는 중세인들의 순례지가 되었다고 하며  체코인들은 그가 죽은 직

후 그를 수호성인으로 여겼다고한다....그러고 보니 23세에 죽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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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상 앞쪽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이 좌절되고 1969년 소련군의 침공에 국민들이 침묵을 하자 대학생이었던 얀 팔라크가 분신

자살을 했던 장소가 있는데 분신한 장소를 기념해 놓기도 했다.

얀 플라흐와 얀 자지크의 기념판.....얀 플라크는 20세의 대학생으로 프라하의 봄이 소련의 탱크아래 침묵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69.16일 분신을 하였고 얀 자지크는 18세의 나이로 69.1.25일 분신을 하였다.  그러나 체코가 공산주의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되기까지 분신 이후 20년이 걸렸다....꽃과 촛불이 놓여 있다. 

20세의 Jan Palach

18세인 Jan Zajic

 젊은이들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청동 십자가

 

참고로 프라하의 봄은 1968년 1월 체코인들이 자유 · 인권 · 민주를 향한 외침으로 ‘프라하의 봄’이 이 광장에서 시작되었으나 체코

슬로바키아 사태가 동유럽으로 파급될 것을 우려한 소련군은 1968년 8월 20일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5개국 군대 약 20만 명으로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해 두프체크를 비롯한 개혁파 지도자들을 소련으로 연행하면서 프라하의 봄은 끝나고 말았다.

벨벳 혁명을 이끌며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초대 체코 대통령이 된 바츨라프 하벨

 

이후 구소련이 해체되었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아직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체코인들의 자유에 대한 이런 열망들

이 바탕이 되어 1989년 11월 극작가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하벨(Václav Havel)은 반체제 연합인 ‘시민 포럼’을 조직해 공산 독재 체

제를 무너뜨리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시민 혁명을 이룩하였다. 시민 혁명이 성공한 뒤, 체코의 대통

령이 된 하벨은 한 연설에서 “우리는 평화적으로 혁명을 이루어냈다. 이는 벨벳 혁명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 ‘벨벳 혁명’이

란 말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바츨라프 기마상 뒤에서 본 국립박물관...

국립박물관에서 본 바츨라프 광장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국민들이 공산주의로부터 해방을 위해서 피를 흘린 곳이니 관광보다는 역사의 의의를 생각하면서 지나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가는 관광객들이야 남의 나라의 역사이니 그리 마음에 와 닿지는 않을 것이다.

광장에 들린 흔적을 남기는 사진을 찍고...

 

바츨라프 광장

 

바츨라프광장을 둘러보고는 쇼핑센타를 들렀다가 프라하 성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