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 럽 3개국 체코 오스트리아 헝거리

동유럽 3국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을 다녀오다(20)...잘츠부르크(1)....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유명해진 미라벨정원

뿅망치 2023. 8. 6. 22:06

하루를 지탱하게 하는 힘을 주는 호텔 조식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흔적을 남기고...

숙소에서 가깝다.

 

오늘 잘츠부르크를 관광하고 빈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출발을 한다.

숙소에서 우리가 처음가는 미라벨 정원까지는 20km로 20분 정도가 걸린다.

도시로 가는 중에는 초원들이 보이고 곧바로 잘츠부르크에 도착을 한다.

가는 길에 보이는 경치

잠깐이라도 이런 경치를 보는 것이 안구 정화를 하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가는 잘츠부르크(Salzburg)는 잘츠부르크주의 주도(州都)로 잘츠부르크 는 로마 시대 때부터 만들어진 유서 깊은 도시이

다, 옛날부터 암염 광산이 있었어서 도시 이름이 잘츠부르크인데 Salz가 소금이라는 뜻이고 burg가 성이라는 뜻이므로 소금의 성

이 도시의 이름인 셈이다.

2023년 기준 15만 명 정도의 인구에 2,93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유럽에서 유명한 관광도시로 이렇게 관광객이 많이 오게 된 데

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의 대표주자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세기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 여기서 태어났기 때문이고, 또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실제 배경(촬영지)이기 때문이다.

호엔성에서 본 잘츠부르크

 

사실 잘츠부르크 도시 자체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모차르트와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가 없었다면 이름 없는 도시로 관광

객이 들르는 도시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건너편에 미라벨 정원이 보인다.

가로수들이 마로니에로 꽃이 한창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들거가고....들어가는 문

분수를 지나서 들어가면 미라벨 정원이 나온다.

 

잘츠부르크에서 제일 먼저 들른 미라벨(Mirabell)궁은 1606년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가 애인인 잘츠부르크 성주의 딸 살로메 알트

에게 선물한 바로크 양식의 저택으로, 잘로메 알트의 이름을 따 알테나우(Altenau)라고 불리다 18세기 초 ‘아름다운 성’이라는 뜻

의 미라벨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1818년 대화재로 인해 궁전의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복원되어 현재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모차르트가 6세 때 연주를 하기도 했던 대리석 홀은 대화재 때도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현재 연주회장 또는 결혼식장으로 사

용되고 있다.

 

궁전보다 더 유명한 미라벨 정원은 1690년 처음 조성되었고, 대화재 이후에 지금의 프랑스식 정원으로 복원되었으며, 분수와 연

못, 대리석 조각과 꽃들로 잘 장식된 아름다운 정원으로 손꼽히고 있다. 북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청동 페가수스 상과 북문 계단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도레미송’을 부르던 촬영지이기 때문에, 정원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붐비

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미라벨 정원과 그 뒤로 펼쳐진 호엔잘츠부르크 성의 풍경은 그림같이 아름답다. 정원 안

에 자리하고 있는 오랑게리는 잘츠부르크 바로크 박물관으로 바로크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다음백과)

미라벨 궁전...

좌측이 미라벨궁으로 코헨성을 보고 찍은 사진

이 위치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 송을 한 장소이다.

미라벨 궁전쪽에서 본 정원..멀리 코헨성이 보인다...고랑에 장미를 심게 된다.

꽃이 만발한 정원...인터넷

 

우리가 들렀던 미라벨 정원은 아직 꽃들이 피어 있지 않아서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보았던 광경이 기억이 나

면서 친근해지는 느낌이다.

오전 중에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쇼핑거리와 호엔잘츠부르크 성을 둘러보아야 하기 때문에 잠깐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는 모차

르트 생가가 있는 거리로 간다.

미라벨 정원의 나무그늘 터널...정원자체는 아직 꽃도 없고 햇볕도 따가와서 그늘에서 쉰다.

중앙분수대는 아직 작동을 하지 않는다.    미라벨 정원의 입구쪽...궁전의 맞은편이이다.

 

중앙 분수 주위로는 1690년 모스트(Most)가 만든 그리스 신화의 영웅 조각상들이 있지만 날씨가 더워서 그늘에서 쉰다.  

분수가 나오고 있는 분수대...인터넷에서

분수 주변의 그리스 신화 조각상

천마 페가수스 동상...인터넷

지나가는 길에 벽에 붙어 있는 게오르그 트라클의 생애가 적힌 판.....게오르크 트라클은 개인적으로 겪은 고통과 전쟁의 경험을 작

품에 표현해, 퇴락과 죽음을 노래한 오스트리아 최고의 애가(哀歌) 작가라고 한다.

Susanna brunnen이라는 우물..누구인지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는다....

미라벨 정원의 입구...우리는 동쪽문으로 들어와서 정문으로 나왔다.

하늘에서 본 미라벨 궁과 정원

미라벨 궁에서 본 미라벨 정원...구글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 연극을 하는 곳인 듯

 

이곳은 연극을 하는 극장들이 많다고...

이곳도 극장이다.

잘차흐 강옆에 있는 세계적인 지휘자 폰 카라얀의 생가옆을 지난다.

마르코파인골트 다리를 건너서 모차르트의 생가와 상가 그리고 코헨 성이 있는 쪽으로 간다.

잘츠부르크 가는 길 그리고 미라벨 정원

 

미라벨궁의 주인공인 대주교와 살로메 알트 이야기

 

잘츠부르크에 부임한 31세의 디트리히 대주교는 1590년 어느 날 식당 결혼식 피로연에서 운명의 여성을 만나게 되는데 시의원의

딸이었던 살로메 알트는 22살이었고, 잘츠부르크에서도 알아주는 미인이었다고 한다.

 

이후 수시로 만나던 두 사람은, 디트리히 대주교가 살로메 알트의 아버지에게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갔으나, 주교는 결혼을 할 수 없

는 신분이라는 이유로 살로메의 아버지에게 거절을 당하게 되고 그렇지만 살로메 알트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사랑을 택하게 된

다.

 

디트리히 대주교는 교황에게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일곱 번이나 편지를 보냈지만 모두 거절을 당하게 되고 그는 두 가지 중 하나

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주교 자리를 내놓고 민간인이 되어 살로메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살아가던가, 아니면 세속의 비난을 무릅쓰더라도 주교의 신분

을 유지하면서 비밀결혼을 하여 사랑을 이어가 가는 가였다.

 

디트리히 대주교는 비밀결혼을 택했고 살로메와 주교 관사에서 같이 살게 되었지만, 이런 생활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했었

고 살로메를 위해 미라벨궁전과 정원을 만들어 주게 되었으며 15명의 자녀를 두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디트리히 대주교는 주교 자리를 박탈당하고 호엔잘츠부르크 성의 감옥에 갇히게 되고 1617

년 죽을 때까지 살로메와 아이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디트리히 주교가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살로메는 아이들과 궁에서 쫒겨나게 되어었고 대주교를 그리워하다가 1631년 죽었다.

 

대주교 디트리히가 갇혀 있던 호엔잘츠부르크 감옥에는 ‘사랑은 결국 고통이구나’ 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https://youtu.be/ebMtOHp1SOA....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 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