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이 추석이니 추석이 이미 코앞에 다가와 있고 이번 추석은 단군 이래로 이런 적이 없었다는 징검다리 휴무가 겹쳐서 배짱이 좋
은 사람은 9일간의 연휴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간 큰 사람에게는 이미 추석 연휴가 시작된 셈이니 이미 추석은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무실에도 이미 연휴를 시작
한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도 단군 이래의 황금연휴를 외국에 나가서 즐기려는 30만 대열 속에 합류하기 위해서이리라.
30만이 나가서 쓰는 돈이 얼마나 될까 하고 걱정해보지만 부러움을 시샘하는 것 이상의 것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걱
정은 접어야 할 것 같다.
추석 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조상 고향 등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의 명절이 설날과 추석으로 대표되고 둘 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만 추석에 조상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조상
의 육신이 묻혀 있는 산소에 성묘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조상을 생각하고 조상이 묻혀 있는 산소를 찾게 되는 것은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성묘 등은 나를 있게 한 존재 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후손들이 행하는 방법중의 하나인 셈이다.
이번 추석에도 시골에 가면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성묘를 하게 될 것인데 우리 어머니는 자신의 시어머니(나에게는 할
머니) 산소에 대한 정성이 각별하다.
왜 그런가 하면 시어머니께서 둘째 며느리로 들어온 어머니를 시집살이 같은 것을 시키지도 아니하고 그렇게 인자하게 대해 주셨
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 산소를 둘째 며느리인 어머니가 관리를 하시기로 하였고 앞으로도 그 관리는 우리의 몫이 되었다.
추석에 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갈 때 반드시 우리 형제들과 며느리들 손자들을 다 데리고 가서 할머니가 얼마나 인자하고 인정이
많으신 분이신가를 누누이 이야기 하시고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자손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하시면서 절을 하신다.
이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으니 벌써 60여 년이 지났고 이장(移葬)도 한 번 하였으니 이제는 뼈도 다 삭아
서 무덤 속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대하시는 것을 보면서 웃으면서 산소에다가 대고 그런 말을 하면 누
가 듣는다고 그런 말을 하시는가 하면 뭐 그런 것을 다 묻느냐는 표정이다.
땅속에 할머니가 묻혀 있으니 당연히 할머니가 거기 들어있으며 듣고 못 듣고는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어머니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인데...
그런 생각이 얼마나 허황되고 황당하고 모순된 생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보지 않는다.
그 무덤 속에 있는 것은 흙이 변화되어 살과 뼈가 되었다가 다시 흙이 되어버린 시신이 있을 뿐이며 그 속에는 우리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지로 그 말을 들어준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속에 진짜로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대하
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흙이 되어버린 살과 뼈를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착각을 하면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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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육신 속에 의식(영혼이라도 하여도 좋고)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그 의식이 육신에 속해 있다면 그 의식이 깃든 육신이 죽으므
로 말미암아 그 의식도 육신의 죽음과 같이 죽어버렸을 것다. 그러므로 이미 죽어버린 의식에다가 사람들의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
도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곧 죽어서 땅에 묻힌 시신을 살아있는 사람과 동일시 할 필요도 없고 동일 시 해서도 안 된
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약 사람이 의식이 죽은 육신과 같이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캄캄한 땅속에 육신을 파먹는 벌
레들을 느끼면서 있어야 할 테니...
그 산소는 우리에게 살아있을 때의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것 말고는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혹자는 후손의 길흉화복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그런 효험도 화장이 보편화 되는 이 시대에 있어서는 별 설득력이 없지 않겠는가.
이제 수목장도 필요 없고 화장을 해서 산천에 흩뿌리고 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니 죽은 조상과 살아있는 후손과의 관계를
산소를 가지고 연관 짓는 일은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제사를 통해서 또는 산소를 통해서 후손이 조상을 기억하여왔으나 앞으로는 산소가 없어지면서 제사를 통해서만 조상
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 그 제사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니 조상과 후손의 관계는 점점 희박해지게 될 것이다.
곧 현재의 생활방식이 가치관과 인생관을 변화시키게 되고 조상에 대한 관념도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돌아가신 조상은 죽음으로 인해서 나와의 관계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지는 것일까?
돌아가신 조상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가 사실 궁금해지기도 할 것이다.
돌아가신 조상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육신을 있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존재이고 나와는 현대생물학적으로 본다면 DNA 등이
상당히 같았을 것이니, 성격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겠지만 이제 죽어버렸으니 나와 육체적으로는 직접적
인 관계를 가질 수가 없다.
그것은 살아있는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타인과 육신적으로 연결 되어 있는 기간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탯줄로 어머니와 연결이 되어 있는 10개월이 전부이다.
그 10개월 동안 부모로부터(대부분이 어머니) 육신을 분양받았기 때문에 다만 유전적으로 비슷한 형질을 가져서 부모의 외모와
기질을 가지게 될 뿐 육체적으로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육체적인 존재로만 보게 된다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는 순간 별개의 존재가 되기 때문
에 육체전인 관계는 더 이상 연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병원에서 어린아이가 뒤바뀌어 혈통(육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아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는 생각(시실은
잘못알고 있는 것이지만)만으로도 얼마든지 자기의 자식과 같이 양육하면서 자신이 낳은 자식과 다를 바 없이 사랑을 주게 된다.
이런 사실은 어린아이를 양육하면서 사랑하는 것의 질에 대한 것은 혈통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으며 단지 정신적인 작용이라고
보아도 그리 잘못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 특히 가족관계는 육신의 연결성보다는 정신적으로 연결되는 어떤 부분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흔히 우리는 자식이 속을 썩일 때 부모는 자식의 껍데기만 낳는 것이지 알맹이(영혼이나 정신)를 낳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말을 듣
게 되는데 그 말은 그 부모가 낳은 육신 속에 들어있는 알맹이는 부모와는 상관이 없는 다른 존재(그 존재를 하나님이라고도 하지
만)에 의해서 있게 되었기 때문에 알맹이들끼리는 서로 별개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도인(道人)들이나 고승(高僧)들은 부모와 자식의 본질적인 관계를 이해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보면 매정할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매정할 정도로 맺고 끊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특별한 관계이다.
부모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그리고 인간관계를 깊이 생각해보았던 보지 않았던 간에, 부모가 있음으로 인해서 내가 태어난 것이
며 이런저런 관계 여부를 떠나서 부모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나를 양육한 것에 대해서 그 은혜는 물질적으로 측량할 수 없는
것으로 그 은혜의 가치는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귀한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가를 밝혀본다고 하여 그 관계가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우리는 부모나 조상에 대해서
막연하게 옛날부터 그래왔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조상과 나와 부모와 나 그리고 자식의 본질적인 관계를 생각하면
서 조상과 부모를 생각해 본다면 그 관계가 더 새삼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다가 보면 인간이 육신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관계가 육신의 관계보다 먼저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이다.
성묘를 하면서 그 산소 속에 들어있는 시신을 자신의 부모라든가 자신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을 육신의 존재로만 알고
있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 속에는 부모나 조상의 알맹이가 빠져나간 껍데기로서 그 껍데기는 마치 우리가 입다가 낡아서 벗어놓은 옷과 같은 존재일 뿐이
지 그 자체가 우리의 부모나 조상이 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산소나 성묘를 하지 않아도 된다든가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장소는 부모와 조상을 기억하고 그 본질적인 관계를 생각하게 해 볼 수 있는 장소임으로 소중한 장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은 내가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것을 정말로 기억하고 기뻐할까????
만약 그렇다면 무덤 속에서??
아니면 다른 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 성묘를 하는 것은 나를 있게 한 조상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방법으로서 그 방법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생각
은 없다.
제사나 성묘를 하면서 나와 조상의 관계를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넉두리를 해보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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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추석에 성묘를 다녀와서 썼던 글로 컴을 뒤지다가 보니 글이 보여서 추석도 되고 해서 옛날 생각에 올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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