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을 위한 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피로 씻는 보복을 참담한 마음으로 보면서

뿅망치 2023. 10. 11. 22:41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가 영유아까지 참수 하는 뉴스를 들으면서 인간과 종교에 대한 회의를 넘어서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옛날도 아닌 현대사회에서 어른들이 아이를 참수하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니 차마 뉴스를 보기가 두렵다.

 

종교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종교가 개인의 일상(日常)과 인생을 좌우할 뿐 아니라 국가 또는 인류의 생존과도 문제

가 되기 때문이다.

잘못된 종교의 교리나 잘못된 신앙관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테러나 전쟁 등을 통해서 눈으로 보아 왔으며 지금 또 보

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행위가 직접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간접적인 상관이 있지만 당장 실감을 하지 못할 뿐이다. 이번 하마

스의 공격으로 유가가 당장 오르고 있는 중이며 유가의 상승은 우리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커다란 악재가 될 것이

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이런 참혹한 일을 벌이고 참혹한 일을 당하며 서로 보복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그들에게는 3,500

년이나 되는 원한들이 서로 얽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 무자비하게 되는데 그들이 그렇게 된 것에는 역사적인 원한도 있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종교의 교리도 한

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한번 극단적인 종교가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지성의 시대라는 현대에서 이런 상황을 목도 하면서 통감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왜 원수가 되었으며 그들의 종교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시원(始原)은 이렇다.

 

이스라엘의 민족사(民族史)를 보게 되면 4천 년 전에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에 아브라함이 있었고 아브라함이 자녀를 낳지 못하자

하갈이라는 여종(女從)에게서 이스마엘이라는 자녀를 낳게 된다. 그러다가 본처인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게 되면서 하갈과 이스마

엘을 광야로 추방을 하게 된다.

이삭의 후손은 오늘의 이스라엘이고 이스마엘의 후손은 오늘날의 아랍인들이다.

그러다가 이삭의 아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이집트로 팔려갔던 요셉이 이집트에서 총리가 되면서 자신의 가족들을 이집트로 초청

해서 살게 하고 400 년이 지나 민족이 형성된 야곱의 후손들 곧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위 출애급이 벌어지게

된다.

 

자신들의 고향인 아브라함이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서 정착을 하는 과정에 그곳에 살던 사람들과 같이 살았던 것이 아니라 그들 곧

팔레스타인들을 추방하여 그 땅을 차지하여 세운 나라가 이스라엘왕국이었다. 팔레스타인인의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나라를 빼앗

긴 것이 된 셈이다.

 

그렇게 1,600년 정도를 지내오다가 이스라엘에 예수라는 사람이 메시아를 자처하고 나서게 되면서 중동과 서양의 역사가 피로서

얼룩지게 된다.

 

모든 종교가 배타적이지만 특히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인류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종교는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 기독

교 이슬람교이다.

이 세 종교는 유일신으로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서로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피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는 것은 예수 때문으로 예수를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 때문에 세 종교가  발생하

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종교가 서로 반목을 하게 된 배경의 원인은 예수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선지자 중의 하나로 볼 뿐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예수를 거짓말쟁

이로 몰아 십자가에 죽여 버렸다.

 

이슬람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선지자일 뿐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컫는 자는 신을 모독하는 자로 죽임을 당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메시아로서 인간이며 동시에 하나님이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것이 삼위일체로 이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자는 그 또한 죽어 마땅한 자이다.

 

곧 예수를 누구로 보느냐의 문제 때문에 세 종교는 서로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적대시하게 되고 결국은 돌아올 수 없는 원수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피로 씻은 역사에 대해서

 

기독교는 유대교

예수 곧 메시아를 십자가에 달아 죽인 유대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독교(로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수많은 박해를 가했고, 2차 대전 때 독일이 이스라엘 인 600만 명을 살해하는데 가톨릭

에서 상당한 협조를 했으며 그 일로 인해 전 로마 교황 바오로 2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사죄를 했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교리상의 문제도 있지만 이슬람교는 100년도 되지 않아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과 아프리

카 등 로마제국의 영토를 수백 년간 지배하면서 십자군 전쟁등 기독교와 피로 피를 씻는 전쟁을 해왔었고 그 전쟁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 되고 있는 중이다.

 

유대교(이스라엘이 곧 유대교나 마찬가지)와 이슬람교

 

그들은 교리문제와 더불어 서자(庶子)와 적자(嫡子)라는 혈통적 갈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영토에 건국됨으로 인

해서 영토문제까지 얽혀져 있는 상태로 그 갈등은 어느 한쪽이 없어지기 전에는 해결할 수가 없다.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는 2차 대전 후 영국을 중심한 미국이 팔레스타인의 땅에 1948년에 이스라에 나라를 건설하게 된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는 2천년을 살던 땅을 빼앗긴 셈이고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2천 년 만에 잃어버렸던 땅을 되찾은 셈이다.

더구나 6차에 걸친 중동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영토을 확장시켜 왔고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는 땅을 더 빼앗긴 셈이다.

 

이런 갈등은 어느 한쪽이 완전히 정체성을 버리고 융합되지 않는 한 끝이 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있고(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있으니...) 팔레스탄인은 이슬람이

라는 아랍전체를 형제라는 이름으로 등에 업고 있다.

그래서 이슬람근본주의 국가인 이란의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이스라엘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겠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도 이란이 배후에서 후원을 해서 벌인 일이라고 추측을 하는 중인 듯하다.

 

이런 전쟁은 민족의 갈등을 넘어서 종교의 어느 한 쪽이 양보를 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전쟁이니 인류의 미래가 참으로 암담하

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십자가에서 예수를 죽게 한 결과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등장이며 인류에게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 된 셈이다.

만약 예수가 십자가에 죽지 않고 로마를 등에 업고 그가 주장했던 지상천국을 건설하고자 했더라면 적어도 종교로 인한 갈등은 없

었을 것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만약 2천 년 전에 메시아의 자격으로 왔었던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더라면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대부분은 이 세 종교에 의해서 발생 되고 있으며 만약 인류가 멸망한다면 이들 종교 때문일 수

도 있는 것이다.

 

종교와 종교의 교리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

 

대부분의 종교가 그렇듯이 교리라는 것은 후세의 인간들이 규정한 것으로 어떤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지고 규정되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그 교리는 모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 번 규정된 교리는 그것이 설령 틀린 것이라고 하더라도 정정되지 않는다.

 

과학은 어떤 이론이 등장하게 되면 전에 이론은 수정이 되거나 폐기가 되고 또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면 지금의 이론은 폐기가 되

거나 수정이 된다.

곧 인간들의 지성의 발전과 문명의 발달에 시대에 맞게 이론도 진화를 하지만 종교의 교리는 인간의 지성의 발전이나 문명의 발전

과는 상관이 없이 2천 년 또는 3천 년 전의 교리를 고수하다가 보니 현대인들에게 외면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와는 맞지 않는 그런 교리에 충성하는 사람이나 집단 그리고 국가들은 현대의 문제아나 문제 국가로 등장하게 되는 것

이다.

이성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교리를 신봉하는 그들은 당연히 이성적 인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

을 서슴없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합리적이지 못한 종교에 심취한 자들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과 다를바가 없는 위험한 자들이 되는 것이다.

 

인간들이 무지했을 때는 종교가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지성이 종교의 교리를 능가하고 있는 현대에는 사실 종교가 필요가

없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종교를 강요당하는 국가가 아닌 곳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것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교리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

는 목격하고 있지만 그들을 제재하거나 생각을 바꾸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도그마에 빠져 자신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행동에 대해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행하게 되는 것이다.

 

종교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떤 집단에 한 사람만 섞여 있어서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 집단

은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런 국가가 존재하게 되면 세계 평화도 보장되지 않는다.

 

지금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살육전을 보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하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