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그리고 네팔배낭여행기

인도네팔 배낭여행기(15)...네팔의 수도 카트만두(1) 스와얌보디나트 사원

뿅망치 2020. 2. 25. 11:12

포카라에서 카드만두로 가거나 카두만두에서 포카라로 갈 때 네팔 국내선 비행기를 타면 금방 가는데 반드시 참고 해야 할 사항이 있다.

비행기를 타려면 반드시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것이다.

 

해가 떠서 기온이 올라가면 곧바로 구름이 끼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볼 수 있는 히말라야의 연봉을 볼 수가 없거나 잘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드만두에서 갈 때는 오른쪽에 좌석을 잡아야 하고 포카라에서 올 때는 왼쪽 좌석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히말라야의 설산을 비행기에서 볼 수가 있다.

국내선 비행기는 낡고 좁기 때문에 자리를 이동해서 보는 것이 어렵고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 네팔에 가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면 반드시 참고를 해야 하는 부분이다.

여행을 다닐 때는 반드시 최상의 경치를 볼 수 있는 조건과 시간을 확인하고 다니는 것이 필수이다.

안나푸르나를 중심한 산군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갈 때 찍은 사진으로 열시가 넘어서 이미 구름이 산을 가리고 있다.

  포카라 근처의 모습

 

카트만두는 네팔의 수도이며 인구는 90만 명(2012)이고 해발 1300미터에 위치해 있지만 분지로 둘러싸여 있다.

카트만두의 1596년에 한 그루의 나무로 사원을 지었다고 카트만두가 되었다고 하는데 나무를 뜻하는 카트 와 사원을 뜻하는 만디르 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카트만두의 사진.....두디피아에서 


2008년 7월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바뀐 네팔(Nepal)은 히말라야산맥 중앙부의 남쪽에 위치하며 면적은 14만7,181㎢, 인구는 2,951만(2008년 현재) 이고 종족은 인도와 같은 아리안족이 80%, 티베트 몽고족이 17%이며, 언어는 네팔어가 공용어이며 국화는 릴리구라스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만병초라고 불리운다.(4월에 피며 우리나라 진달래처럼 온 산이 붉게 물드는데 꽃이 너무 곱다)

그리고 종교는 힌두교가 80.6%, 불교가 10.7%, 기타 4.2%(이슬람) 등이다.

     네팔의 국화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우리나라에서는 만병초라고 부른다.

4월에 꽃이 피는데 온 산이 이런 꽃으로 덮인다고..


인구의 95%가 농촌에 살고, 노동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하며 다른 산업이 없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관광업에 종사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은 1,400달라 정도이며 이 나라도 해외에 있는 노동자들이 보내주는 송금이 국가 운영자금의 30%를 충당한다고 한다.

 

네팔은 9세기∼14세기까지 인도의 지배를 받았으며, 1769년 구르카(Gurka) 왕조가 카트만두 계곡을 정복하고 통일왕국을 건설하였으며 1814년 영국에 지배당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해 왔다고 한다.

1951년 2월 18일 왕정이 복고되면서 입헌군주제가 되어서 국왕이 직접통치하는 나라가 되었으나 국민들이 군주제에 불만을 품고 저항을 하였고 그러는 과정에 2001년 6월에는 네팔의 왕세자가 국왕 등 왕족 8명을 총으로 사살하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며 2008년 7월 21일 왕국에서 대통령이 통치하는 공화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네팔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구르카병사들인데 네팔의 구르카족으로 이루어진 영국의 외인부대로서 이루어진 세계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군인으로 인정하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1951년 한국전쟁에도 참전하여 지평리 전투에서 구르카 1개 대대가 중공군 1개 사단을 전멸시켰다고 한다.

네팔의 구르카 용병 이렇게 생긴 칼로 단칼에 목을 친다고


지금도 영국에서 네팔의 젊은이들을 모집하는데 경쟁률이 700대 1이 될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하며 합격을 위한 학원도 있다고 카드만두에도 30여개가 있다고 한다.

네팔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용병에 구름처럼 몰려드는 것은 네팔에서는 일자리가 없지만 영국 부대에서 받는 급여가 네팔의 국민소득의 수십 배가 되어 무사히 전역을 하면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용병의 역사는 1815년 영국이 인도를 정복하고 네팔의 구르카 왕국까지 정복하기 위해서 쳐들어갔다가 그들의 용맹함을 보고 마음을 바꾸어 용병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용병으로 고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파견하고 있다고 한다.

 

용병이라는 것이 나라가 가난하기 때문에 자식들을 용병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용감하지 못하면 다음 세대에는 용병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용감해야만 하는 것이 용병이다.

 

네팔의 구르카 용병과 비슷하게 스위스에도 용병이 전통이 있으며 지금도 로마교황청의 경비를 스위스 용병들이 맡고 있다.

스위스도 네팔처럼 산악지대로 먹고 살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용병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1792년 프랑스 혁명 때 왕실을 지키던 다른 나라의 용병들은 다 도망을 갔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끝까지 남아서 죽음을 당했는데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자식들이 용병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죽어간 786명을 기억하기 위해서 루체른에 ‘빈사의 사자상’을 새겼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의 하나에 속하지만 네팔은 여전히 용병을 파견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이다.     


***********

 

카드만두에 도착하여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고 택시를 타고 스와얌부나트 사원으로 갔는데 카트만두 북서쪽 산자락에 있는 불교사원으로 기원적 3세기 경 아쇼카왕이 카드만두 일대를 순시할 때 세워진 사원이라고 한다.




숙소에서 사와얌부나트 사원으로 가는 택시를 타기 위해서  골목을 걸어나가는데 이곳도 복잡하기가 인도의 델리와 다름이 없다.   


우리나라의 전통사찰과는 다르게 생겨서 힌두사원과 사실 잘 구분하기가 힘들지만 탑을 보고(눈 두 개와 물음표 같이 생긴 코 그리고 13층 석탑) 구분하게 된다.

눈은 부처의 눈을 상징하며 물음표 같이 생긴 코는 네팔 숫자 1을 표시하며 모든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눈 사이에 있는 점은 진리를 꿰뚫는 제3의 눈이라고 하며 위에 있는 13층탑은 해탈에 이르기 위한 13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탑신에는 마니차들이 달려 있어 사람들이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마니차를 돌린다.

이 사원은 산 중턱에 있기 때문에 경관이 좋아서 카트만두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설산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입구

가파르게 한참을 올라간다.

올라가면 탑이 정면으로 보인다.

이곳의 불교는 티베트의 불교이고 힌두교의 요소들이 같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사찰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데

사원에서 보이는 카트만두 시내...주위가 높은 산으로 들러싸여 있는 분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히말라야 산맥도 보이고...

산에 걸려 있는 타르초...불경을 인쇄해 놓았는데 바람에 실려가서 사람들의 마음에 불심이 들어가기를 바라서이라고...

다른 계절에 찍은 사진...타르초와 비슷난 개념으로 장대에 달아놓은 룽다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바람에 날아간 불심이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서이다.


공양을 하면 그것을 불에 태워주는 듯....


눈은 부처의 눈을 상징하며 물음표 같이 생긴 코는 네팔 숫자 1을 표시하며 모든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눈 사이에 있는 점은 진리를 꿰뚫는 제3의 눈이라고 하며 위에 있는 13층탑은 해탈에 이르기 위한 13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래는 두산백과에서 설명한 스와얌부나트사원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약 2000년 전에 건립되었다. 카트만두 서쪽 3km 지점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네팔불교인 라마교성지로, 카트만두의 유래와 관련이 깊다. 본래 카트만두는 호수였는데, 문수보살이 호수의 물을 모두 말려 없애자 가장 먼저 이 사원이 떠올랐다고 한다. 사원에는 385개의 계단이 있고 그 양쪽에는 불상과 사자·코끼리 등을 새긴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또 경내에는 각양 각색의 탑이 세워져 있어 네팔 불교미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흰 돔의 사원 꼭대기에는 금빛 탑이 있으며, 이 탑에는 카트만두를 수호하는 듯한 거대한 눈이 그려져 있다. 경내에 원숭이가 많이 살아 원숭이사원이라고도 하며, 늘 성지순례하는 불교도들로 만원을 이룬다.

 

희게 보이는 것이 마나슬루봉이라고

원숭이의 사원 답게 원숭이들이 많다.

내려오는 길에도 원숭이들이 길에서 떼를 지어 있다.



내려와서는 가이드의 안내로 카트만두 시내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에베레스트라는 스테이크집에 들러서 저녁을 먹었는데 고기의 양이 정말 푸짐하다.

골목에는 한국 음식점도 보이고 한국 여행객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카트만두라고 해서 전기사정은 마찬가지라서 오후에 일정시간 동안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나라가 가난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아직 공공질서나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가질 여가가 없어서인지 도심을 흐르는 냇가 같은 곳에는 쓰레기가 가득 차 있고 이면 도로 같은 곳도 쓰레기가 많은 것은 인도와 마찬가지이다.



에베레스트라는 스테이크 전문 레스코랑....자유 여행을 가면 한 번 가 보시도록...저렴하고 맛도 좋고 양도 많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카트만두도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서 제한 송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