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四國)섬의 다까마쓰(高松)를 가다.

시코쿠(四國)섬의 다까마쓰(高松)를 가다(16)..구라시키미관지구(倉敷美観地区)를 구경하다.

뿅망치 2024. 3. 2. 13:22

제일 먼저 세토대교를 건너 구라시키 미관지구(倉敷美観地区)로 간다. 오까야마의 구라시키미관지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두

시이다.

세토대교를 건너 혼슈의 오까야마로 간다.

가는 길의  마을...

세토대교를 건너간다.

대교 양 옆에는 섬들이 무수히 많고 어제 우리가 다녀왔던 쇼도섬도 이런 섬들 중의 하나이다.

 

주차장에 도착을 하고..

주차장에서 내려서 오히라 미술관쪽으로 들어가서 운하주변과 아이비스퀘어광장을 구경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나온다.

 

구라시키는 바다에 직접 접해있진 않지만 작은 강을 끼고 있어 해안교통의 요지로 번성했다. 구라시키천을 따라 오사카로 쌀과 목

화, 기름 등을 보내 물류중심지 역할도 했다. 사람과 돈이 몰리면서 상업이 발달했고, 거상들의 저택과 큰 창고들이 즐비하게 들어

섰다. 구라시키라는 지명도 '창고'(倉)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구라시키 시에는 옛날부터 생필품을 운송하던 운하가 있었다고 한다. 이 운하의 물길을 따라 클래식한 건물과 버드나무가 늘어서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 바로 구라시키 미관지구이다. 구라시키를 상징하는 풍경이라 할 수 있는, 맑은 운하와 회

벽, 그리고 검은색 기와지붕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에도시대부터 이 운하를 따라 물자를 운송하였다고 전해온

다. 운하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서있고, 수로에는 비단잉어와 백로도 있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하는 이곳의 경치 덕분

에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수로의 산책로에는 각종 액세서리와 기념품을 파는 노점이 즐비하다. 구리시키 방적공장을 개

조하여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아이비스퀘어, 오하라미술관, 고고관, 민예관, 완구관 등 전시관이 늘어서 있으며 각종 상점과

식당들도 많이 있다.(인터넷)

미관지구의 중심인 운하로 걸어간다.

죄측은Shinkeien(新渓園)이라는 공원이고  ... 우측은 오하라미술관의 전시실이다.

 

운하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하라 미술관(大原美術館)을 지나서 가게 되는데 이 미술관은 1930년에 설립한 일본 최초의 서양 미

술관이자 사립 미술관으로 구라시키(倉敷) 지역의 방적(紡績) 사업의 대부호였던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 1880~1943)의

수집품을 전시 한 곳이라고 한다. 마네, 모네, 고갱, 피카소, 앤디워홀, 로댕, 샤갈, 르누아르 등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

어 있다고 한다. 오하라 미술관은 서양미술관답게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이오니아 양식의 건축물로 지어졌다고 한다.

자유여행을 한다면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나 패키지 여행을 온 사람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가 없다.

오하라 미술관

우리 말고도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한국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운하에 도착하고...겨울이라서 썰렁하다.

몸을 말리는 가마우지

가마꾼도 보인다....

배도 보이지 않고...

여름에는 이런 모습이라고...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다.

건너편에  소풍온 아이들이 보인다....일본 아이들은 외출시 반드시 모자를 쓰는 것 같다.

운하 주변

운하에서 이이비스퀘어쪽으로 가면서 보는  골목

 옛날건물에 구멍가게같은 상점에서 관광객들에게 음식이나 기념품들을 판다.

구라시키 미관지구..

구라시키 아이비스퀘어로 드러가는 길 

 

구라시키 아이비스퀘어(Ivy square)는 1889년도의 메이지 유신시대에 설립하였던 방직공장을 호텔·문화 시설로 재활용한 관광시

설이다. 이 건물이 아이비 스퀘어가 된 것은 담쟁이 덩쿨(蔦, 아이비)로 덮혀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방적 산업의 근대화에 공헌

한 시설로서 일본의 "근대화 산업 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아주 오래된 측백나무가 잘 손질되어 있다...아마 방적공장이 만들어질 때 심어졌을 것으로 1백년이 넘은 나무일 것이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아이비(담쟁이)로 뒤덮인 건물이 방적공장의 건물이고 안에 들어가면 큰 마당이 있는데 그래서 아이비스퀘어라고 부르는 듯..

아이비스퀘어 내부...건물 안에는  전시물이나 식당 등 여러가지 시설이 들어 있다고 한다.

공장을 헐지 않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광장의 가두들도 엔티크하다.

담쟁이로 뒤덮힌 건물들..

담쟁이 잎이 푸르를 때

단풍이 들면 더 장관이었을 듯

아이비스퀘어광장을 돌아 나오면... 愛美工房과 기모도 대여점이 있다....간판만 보고 지나간다.

도장을 파는 집...우리나라는 이제 사인으로 대체되면서 도장 파는 사람이 

운하뒷골목을 구경중이다.

운하쪽으로 나와서 운하주변을 둘러본다.

운치가 있어보이는 운하....그러나 겨울이어서 사람은 별로 없다.

동백나무가 한나무가 있어서...

마치 꽃이 핀 것처럼 보이는 나무도

이곳에서 원면을 하역하였다는 내용의 글이다.

배도 보이고 인력거도 보이고...젊은 사람이 왜 인력거꾼을 하는지???

사람들이 백조를 보고 있다...

오히라 미술관 앞에 있는 신계공원

인터넷의 사진이나 구글의 사진을 보면 버드나무가 늘어진 사진들이 있지만 우리는 겨울이어서 그런 경치는 보지 못하고 운하 주

변의 풍경과 골목 그 뒤의 아이비스퀘어(Ivy square) 등을 50여 분 정도 구경을 하고 관광을 마친다.

구라시키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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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지도를 보면 아이비스퀘어 앞 골목에 모모타로(桃太郎)박물관이 있는데 대부분 모르고 지나간다.

모모타로(桃太郎)는 일본 전설의 대중적인 영웅으로 모모타로는 복숭아를 뜻하는 모모와 일본의 남자 아이 이름인 타로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으로, 복숭아 소년, 또는 복숭아 동자로 번역하여 부른다. 모모타로는 여러 책과 영화, 작품 등에서 주인공으로 등장

한다.

모모따로 박물관

모모따로의 모험길에 동참한 동물들

 

전설에 따르면 모모타로는 거대한 복숭아 안에 들어있는 채로 땅에서 나왔다. 이 거대한 복숭아는 강을 따라 떠내려가다 빨래를

하던 자식 없는 노파에게 발견되었고, 그녀와 남편이 그것을 먹으려고 열어보자 안에서 어린 아이를 발견하였다. 아이는 노인 부

부의 자식이 되기 위하여 하늘이 자신을 보냈다고 설명하였고, 부부는 아이의 이름을 복숭아를 뜻하는 모모와 장남을 뜻하는 타로

를 따서 모모타로라고 지었다고 한다.

모모타로는 양부모의 보호아래 잘 자라서 소년이 되었고 멋진 청년이 되었다. 어느새 장성한 젊은이로 자란 모모타로는 양부모를

봉양하면서 열심히 나무꾼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을 바다 건너에는 오니가시마라 불리는 섬이 있었다. 섬의 모양이 마치 오니(おに 鬼는 일본 도깨비이다)와 같아서 오

니가시마라 불리는 이 섬은 이름처럼 포악하고 사악한 오니들이 지내면서 시도때도없이 마을을 습격해 사람들을 학살하고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납치하며 많은 보물을 강탈하고 다니기 일쑤였다.

양부모에게서 오니가시마 섬 오니들의 횡포를 듣게 된 젊은이 모모타로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답게 못된 오니들의 버릇을 고

쳐주기 위해 길을 떠나기로 했다. 처음에 양부모는 걱정했지만 모모타로의 결심이 확고해 양아들을 위해 수수경단을 만들어주었

고 가는 길을 배웅해주었다.

 

모모타로는 양부모와 작별하고 한참 길을 걸어갔다. 그때 제일 처음으로 만난 인물이 개였다. 모모타로는 개에게 수수경단을 주었

고 동료로 삼았다. 이어서 원숭이와 꿩도 만나 수수경단을 주며 동료로 삼고 오니가시마로 계속 갔다.

 

오니가시마에 도착하자 모모타로는 꿩에게 상황을 살펴봐달라고 했고 꿩은 상황을 살펴보았다. 오니들은 거하게 술판을 벌이며

잔뜩 취해 있어서 보초병도 없었고 잡입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모모타로 일행은 꿩의 보고를 듣고 기습하여 오니들을 해치웠

다. 오니들은 저항했지만 술 때문에 다들 달려들어도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오니의 두령 우라가 나서자 모모타로는 우라에게 달려들어 그의 심장에 칼을 꽂아 죽였다. 우라가 죽자 살아남은 나머지

부하 오니들은 기겁하며 모모타로에게 용서를 빌었고 모모타로는 오니들을 용서한 뒤 그들이 약탈한 보물과 납치당한 마을 여인

들을 돌려받았다.

 

다시 마을로 금의환향한 모모타로 일행, 여인들은 가족들과 기쁨어린 재회를 하며 가족의 곁으로 돌아갔고 사람들은 빼앗긴 재물

을 돌려받았다. 그래도 재물이 많이 남았다.

모모타로는 일행과 함께 남은 재물을 갖고 양부모의 곁으로 돌아왔다. 양부모는 기뻐하면서 살아돌아온 아들을 반겼고 이후 모모

타로가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면서 그들은 더욱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