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코람하이웨이 그리고 실크로도 30일 배낭여행

카라코람하이웨이 그리고 실크로드30일 여행기(73)...오시를 떠나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로 가다.

뿅망치 2025. 2. 3. 00:33

오늘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로 가는 날이지만 국경도 가깝고 국경에서 페르가나로 가는 거리도 멀지 않아서 그리 일찍 서둘지

않아도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술레이만 산

우리가 묵었던 루루 호텔...수영장이 있어서 밤에 수영을 하기도 했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밥을 해 먹어야 하는 입장에서 조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선물과 같은 것이다.

식당 벽에 있는 벽화...유르트와 독수리 들이 있는 것을 보아 키르기스스탄의 신화나 전설의 내용인 듯하다. 

 

숙소에서 식사를 하고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로 떠나가기 위해서 우즈벡으로 가는 국경으로 택시를 불러서 가는데 거리가 숙소

에서 10㎞가 체 안 되기 때문에 금방 간다.

차에서 내려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키르기스스탄에서 쓰다가 남은 돈을 우즈베키스탄 화폐로 교환하는 일로 환전소가 국경 바로

앞에 있어서 키르기스스탄에서 50달러를 바꾸어서 쓰고 남은 돈을 환전하는데 돈이 한 주먹으로 깜짝 놀랐다.

그러자 가이드가 지금 이것으로도 놀라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돈을 쓸 때는 더 놀란다고 한다.

밥 한 끼를 사 먹어도 돈이 한 뭉텅이씩 빠져 나간다는 것이다.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환전소...우즈베키스탄 돈으로 환전을 한다.

환전소가 여러군데 있어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흩어져서 환전을 한다.

키르기스스탄에서 50달러를 바꾸어서 쓰고 남은 돈 30달러 정도의 키르기스스탄 솜을 환전하였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준다.

키르기스스탄은 100달러에 69,600솜  우즈베키스탄은 10달러에 949,200솜...주로 5천솜과 만솜짜리로 바꾸어 준다.

 

키르기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은 우리가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이기도하고 육로로 통과를 하기 때문에 출국수속이나 입국수

속이 비교적 쉽다.  

출국수속과 입국수속을 마치고 국경에서 페르가나로 가는데 버스가 아니고 택시를 타고 간다고 하는데 대형버스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 국경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다른 도시로 가는 관광객들이나 현지인들은  택시를 타고 가게 되는데 나름대로 도시에 따라 공식

적인 가격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시작할 때 이 곳의 거리에 대한 그 요금을 미리 지불하였기 때문에 택시기사와 흥정할 일이 없는데도 불구

하고 일행 중 한 사람이 장난으로 요금흥정을 하자, 한 택시 기사가 나름대로의 공정가격을 무시하고 낮은 가격을 제시하자 곧바

로 다른 택시기사들이 화를 내며 그 사람을 끌고 다른 데로 간다.

아마도 응징을 하려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은 생계가 걸린 일인데 그런 일에 장난을 하다니...얼굴이 화끈거린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인데 우즈베키스탄에서 택시를 탈 일이 있을 때마다 야비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인간성을 의심

하게 된다. 

우즈베키스탄쪽

국경으로 짐을 검사하거나 하지 않는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오는 길이 패여 있어서 잘못하면 트렁크 바퀴가 빠질 수도 있을 정도

이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간판

국경을 통과한 사람들을 태우기 위한 택시 운전사들...

우리는 가이드가 택시를 정해 주는대로 타면 되는데 ...한 사람이 장난으로 흥정을 하는 바람에 택시 운전사간에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현지인들도 흥정을 한다.

페르가나까지 거리가 130㎞가 넘고 두 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로 가는 길에 안디잔이라는 도시를 지나게 되는데 안디잔이라는

도시도 페르가나 분지에서 우리가 기억할 만한 도시이다. 

 앞에 가는 차와 같은 차를 타게 되는데...케리어나 가방을  뒤에 싣기 때문에 부피가 크면 트렁크를 열고 가게 된다.

길에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안디잔이란 도시 이름이 보인다.. 

길가에 보이는 풍경들...이곳이 목화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는 한데...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페르가나 분지로 토양이 기름져 보인다.

앞에 가는 일행들의 차...가방들이 크게 되면 이렇게 트렁크를 열고 간다....목적지에 도착을 하면 먼지가 두깨로 쌓이게 된다.

작은 도시들과 

들판들을 번갈아 지나간다.....다 목화밭이다.

안디잔 근처이다.

일제히 차량이 연료 주입을 하는데...희한하게 본넷트를 열고 연료를 주입한다 휘발유는 아닌 듯...

우리가 가야 할 도시들과 가야할 거리가 적힌 이정표...페르가나가 70이라고 되어 있는데 70km를 가서 좌회전 하라는 표시이다.

 

안디잔은 인도의 무굴제국을 건설한 바부르(Babur)의 고향으로 바부르는 부계는 티무르이고 모계는 징기스탄의 직계인  페르가

나 공국의 왕자로, 티무르의 옛 수도 사마르칸트를 회복하려다 실패를 하자 인도 쪽으로 관심을 돌려 1522년  칸다하르를 점령하

였고 결국 인도에서 무굴제국을 건설하였다.

바부르의 초상..바부르는 뛰어난 군인임과 동시에 예술가이며 시인이었다고 한다. 

  

무굴 제국을 굳건히 한 사람은 바부르의 손자 악바르였지만 바부르가 인도 무굴 제국의 창건자임에는 틀림없다.

나아가 그는 마력적인 지도력을 심어놓아 다음 2세대 동안 지속되게 했다.

바부르는 천재적인 군사모험가였고 제국의 창건자였으며 또한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정치적인 경력과는 별개로 그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투르크의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정원을 조성하고 연회를 열어 아름다운 그곳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던 자연 애호가였다.

그의 산문 회고록 〈바부르나메 Bābur-nāmeh〉는 마침내 자서전의 세계적 고전이 되었다.

 

이 책은 악바르 재위 때 투르크어에서 페르시아어로 번역되었고(1589), 1921~22년에는 영어로 번역되었다.

 나이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고 교양·재치·정다움·우정과 진취적인 기상을 지녔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높은 감수성으로 가득 찬 한 통치자의 모습이 이 회고록에 잘 담겨져 있다.

(백과 사전에서의 인물평)

 

그리고 , 2005. 5. 13일 이슬람급진주의 성향을 지닌 이슬람운동슬람운동(IMU)이 그 당시의 대통령 이었던 카리모프의 장기 집권

과 철권통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 우즈베키스탄 군인들에 의해서 수백 명 또는 2천5백 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기

도 하다. 

 

참고로 우즈베키스탄은 대부분의 이슬람국가와 같은 이 수니파 국가인데 카리모프 대통령이  터키처럼 엄격한 율법의 지배를 받

는 국가가 아닌 서구와 같은  국가를 만들려고 하여 종교적인 색채를 가능한 배제하는 정치를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안디잔에서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봉기를 일으켰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은 IS 대원이 가장 많았던 나라로 IS의 근거지가 사라지면서 우즈베키스탄으로 스며들었으며, 그 대원들이

한국으로 입국하려고 시도를 한 적이 있는데 이는 한국에 우즈베키스탄 근로자들이 많기 때문이었으며 이들 근로자 중에는 IS에

자금을 지원할 정도로 급진주의자들이 있기도 했었다. 

키리모프 대통령...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처럼  공과(功過)가 양존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안디잔은 대우자동차 공장이 있던 곳으로 IMF 때 대우가 부도가 나면서 그 공장은 미국의 GM으로 넘어갔지만 지금도 GM

우즈베키스탄의 이름으로 자동차가 생산되고 있다. 

1996.7.13 대우자동차 공장 준공식...  대우그룹은 1999.11.1 공중분해가 되었고 이 공장도 미국의 GM으로 넘어 갔으며... 

결국 이 공장은 대한민국 국민이 지어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가운데가 카리모프 대통령 

 

택시를 타고 페르가나로 가는 길은 전형적인 농촌 풍경으로 두 시간 넘게 이런 풍경을 보면서 간다.

페르가나는 페르가나 분지의 남서쪽에 있으며, 대륙성기후로 여름은 덥지만 겨울은 그리 춥지 않다.

 남부는 알라이산맥에서 발원하는 하천들과 볼쇼이페르가나,유주니페르가나 운하들이 도시를 관통하며 주변은 이 운하들에 의해

서 관개가 되며 목화 재배와 양잠이 부대 산업인 면실유·섬유산업과 함께 이 지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리스인이 세웠던 박트리아왕국(BC 256년 ~BC130)과 쿠샨왕조(AD 45 ~320) 시절에 불교가 융성하였으나 8세기 초엽에 우마

이야 왕조의 칼리파 왈리드 1세에서부터 이슬람이 전파되었고, 중세에는 카라한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다가 근세에는 코칸드 칸국

의 중심지가 되었다.

 

1876년 코칸드 칸국을 정복한 러시아인들이 현재의 시가지를 건설했으며, 페르가나를 정복한 스코벨레프(Скобелев)의 이름을

따서 스코벨레프라고 이름을 지었으나 1924년 볼셰비키가 페르가나 지방을 평정하면서 원래 이름으로 복구되었다고 한다.

 소련 시절 페르가나는 1908년에 지어진 정유공단 덕에 페르가나 지역 석유 생산기지로 발전했으며 비료 공단(工團)도 만들어 졌다고.... 

페르가나로 가는 길에 보이는 조형물들..이곳의 말들이 중국에서 탐을 내던 천마(天馬), 신마(神馬)로 불리던 한혈마(汗血馬)의 고

향이 페르가나이어서인지 말 조각상들이 많다.

 안디잔을 지나면 페르가나로 가는 길에 이런 들판이 나타난다.

국경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지나서 페르가나에 도착을 하고....

페르가나 입구에 있는 동물조각 공원이 아니고 길가의 공터이다...이곳에도 말이

양들도...공원이 아니고 로터리이다.

10시 반 경에 페르가나의 호텔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 1박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