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튀르키에 패키지관광여행기

2025 그리스 튀르키에 패키지관광여행기(53)...감탄과 비감(悲感)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아야 소피아 성당

뿅망치 2025. 12. 15. 21:13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아야 소피아로 간다.

소피아 성당 주변으로 이스탄불의 중요한 건물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이스탄불의 관광은 이 주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소피아 성당에 도착하니 두 시 정도 되었는데 건물이 보수 중이다. 그래도 관광객들은 관람이 가능한데 벌써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줄

을 서 있다.

나는 지난번에 왔을 때 들어가 봤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기로 한다.

이스탄불의 중요 관광지의 지도

소피아 성당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앞으로도 이 길을 몇 번이나 더 다니게 된다.

네 번인가 다섯번인가를 이길을 지나게 된다.

죄측은 술탄 아흐메트 공원이다.

소피아 광장이 보이고...

타워크레인도 보이고 ....공사가림막도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앞에 보이는 성문은 토카프궁전이다.

외부보수를 하는 중이다.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줄을 서 있다.

오른쪽이 들어가는 입구...출구는 따로 있다.

소피아 성당 뒷골목..

뒷쪽에서 본 성당

뒷 길...

앞에 보이는 곳은 아흐메트 공원쪽..

좌측에 줄을 서 있는 곳은 예레바탄 사라이로 지하에 어마어마한 물탱크가 있다.

이곳이 관광의 중심이기도 하고 구도심의 중심이기도 하여 트렘이 수시로 지나간다.

술탄마흐메트 광장 맞은 편에도 사람들이...

먹자골목도...

낮임에도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굽는 연기가... .

주변에는 관광객들이 넘쳐 난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티켓을 파는? 승용차

옥수수가 맛이 없다고 사먹지 말라고 한다....소피아 성당에 입장한 사람들이 나오기를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서 기다린다.

 

아흐메트 광장과 소피아 성당

 

소피아성당의 이름은 터키어로 아야소피아(Ayasofya)로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성당은 360년 콘스탄티누스1세의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서 건립되었다가 404년 교회 안의 문제로 난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불에 타서 415년에 데오도시우스 2세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성당도 532년 1월의 2일간의 니카 반란으로 방화를 하여 인해서 콘스탄티노플의 왕궁의 일부와 과 원로원 건물들 그

리고 다른 성당들이 불에 탈 때 소실되고 말았다고 한다.

아야소피아 성당...구글에서...소피아 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미나렛(첨탑)은 소피아성당을 모스크로 만들면서 세운 것이다.

 

그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5년 11개월 만인 537년에 완공되었는데 헌당식에서 자신이 솔로몬의 성전을 능가하는 교

회를 세웠다는 생각을 하여 “내가 그대에게 승리했도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이 성당은 동로마제국의 황제들의 대관식을 이곳에서 하였으며 황제의 사당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하며 성유물(聖遺

物) 등으로 노아의 방주의 문이나 성 십자가, 아브라함의 테이블 등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453.5.29일 콘스탄티노플을 점거한 오스만제국의 술탄마흐메드 2세는 그날 도시로 입성하자 말자 소피아 성당으로

와서 “그리소도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없고, 알라만 존재한다”고 외치면서 대성당의 흙을 자신의 머리에 뿌리고 소피아 성당을

모스크로 사용할 것을 선언하였다고 한다.

대성당 내부의 십자가도 떼어지고 성화(이콘)은 석회칠로 덮어버리고 기독교의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고 모스크로 개조하였으

며 네 개의 미나렛(첨탑)이 증축되어 아야 소피아 자미(Camii)로 불리게 되었다.

톱카프 궁전과 아야소피아 성당은  아주 가깝기 때문에 오스만제국의 술탄이 매주 금요일 예배마다 참석하였다고 하며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격식이 높은 모스크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1923년 오스만제정(帝政)이 무너지고 터키 공화구깅 수립되었을 때 유럽 각국이 소피아 성당의 반환과 종교적 복원을 강력하게

요구하게 되자 터키정부는 아야 소피아를 인류공동 유산인 박물관으로 지정하고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개조해서 그 안에서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종교적 행위를 일제 금지시켰다고 한다.

 

그 이후 회칠을 벗겨내고 성화복원작업을 시작하였으나 성화를 복원하게 되면 회칠 위에 그려진 이슬람 문양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이슬람의 반발 때문에 복원이 중지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20년 7월 10일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박물관에서 모스크 및 정교회 성당의 혼합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The Hagia Sophia Grand Mosque)'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위의 내용은 아야 소피아의 성당의 역사에 대한 것이다.

 

아래는 2016년도에 소피아 성당을 보았던 사진들이다.

가이드가 무선 이어폰을 배급해주면서 설명해 주고 있다.....광장에는 개인여행을 온 사람들에게 이어폰을 돈 받고 빌려주는 사람이 있다.

소피아 성당으로 줄을 지어서 들어가고.......성당이 붉은 색을 띠는 것은 예수의 보혈을 상징하기 위해서 붉은 벽돌로 지었기 때문이라고...

이곳도 역시 보안검색을 한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회랑이 있고 내부로 들어가면 복원되다가 만 성화들과, 지진 때문에 보수가 필요하여 성당의 왼쪽

에 세워 놓은 철구조물들, 그리고 기독교의 성화와 문양들과 이슬람의 문양과 구조물들이 같이 공존하여 혼란스럽다.

성당 입구에 있는 파괴된 석관들...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회랑...천정과 벽에는 아무런 장식도 벽화도 없다.

회랑을 돌아 들어가면 이런 천정이 있는 통로가 있고...

가운데 있는 인물(예수?)을 보아 이 천정의 문양들과 그림들은 기독교의 것들이다. 

 

중앙 홀에서 보는 천정의 돔을 비롯한 건축물은 탄성을 자아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아야 소피아 성당은 지금부터 1,600년 전이고 블루모스크보다 천년 전에 만들어진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블루모스크보다 건

축학적으로 더 뛰어난 건축물이라고 한다.

중앙 돔...높이가 50미터라고 한다....왼쪽에는 수리를 하기 위한 비계가 설치되어 있다.

중앙돔 천정의 그림들은 이슬람의 글자로 바꾸어 놓았다.

둥그런 원판 같은 것이 이슬람 선지자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7개가 걸려 있다고 한다.

천사의 얼굴모습..우상숭배금지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 있다가 복원되었다고 한다.

 

복원된 성화도 있고...

기독교의 유산과 이슬람의 유산이 뒤섞여 있어서 많이 혼란스럽고 어수선하다.

이층의 대리석 바닥...1,500년의 세월의 흔적이다.

가운데 있는 문이 메카를 가르키는 문으로 소피아 성당이 모스크로 바뀌면서 만들어진 문이다.

그리고 천정에 있는 성모상은 크기가 5미터가 넘는다고...

중앙돔의 직경이 32미터이고 높이가 56미터라고 한다

대리석 항아리는 헬리니즘 시대 (BC30-330)에 만들어진 것으로 예배 중 사람들에게 음료를 나눠주던 용도로 쓰였다고...맞은편

에 한 개가 더 있는데 땅 속에 묻혀 있던 것을 농부가 바친 것이라고 한다. 

 

복원된 성화는 2층에 올라가면 자세하게 볼 수가 있는데 시간에 쫓기면서 보기 때문에 설명을 듣기는 하지만 제대로 들을 수가

없다.

사진을 찍어 놓고 나중에 귀국하여 인터넷을 보면서 대조를 하여 설명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최후의 심판 때 성모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이 심판자 예수에게 간청하는 모습의 그림 아래는 복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 그림

 

요안니스 2세 콤니노스 황제가 성모로부터 축복을 받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1122년에 제작되었고 황제가 들고 있는 자루에

는 돈이 들어 있고 황후가 들고 있는 것은 봉납명세를 적은 문서로 교회에 대한 황실의 기부를 의미한다고. 

조에 여제의 모자이크. 11세기에 제작된 이 모자이크는 파란색 옷을 입고 왼손에 성경을 든 그리스도가 조에여제와 그 남편 콘

스탄티노스 9세 모노마호스를 축복하는 모습이라고....
다른 성화와는 달리 조에여제의 모자이크라고 하는 이유는 세 차례나 결혼을 했던 조이 여제는 남편이 바뀔 때마다 모자이크에

그려진 남편의 얼굴과 문구도 바꾸었다고 해서라고 한다.

엔리고 단돌로위 석관

 

2층에는 엔리코 단돌로의 석관이 묻혀 있는데 이 사람은 1107년도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4차 십자군전쟁 때

십자군을 선동하고 조정하여 십자군으로 하여금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게 하여 십자군들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약탈과 살인을

하게 하고 전쟁배상금을 물게 하였던 사람이라고 한다.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여기에 묻혔다고 하였는데 나중에 이 곳 사람들이 시체를 길거리에 버렸다고 하며 개들도 그 시체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2층에서 내려다본 중앙 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통로...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닥에 홈을 파 놓았다.

성당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바닥

들어갔던 곳으로 되돌아 나온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천천히 둘러보고 싶지만 그놈의 시간 관계상 때문에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눈도장만

찍고 나와야 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

그리고 글로서 설명을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글로 잘 묘사를 하고 사진을 잘 찍는다고 하더라도 그것

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와서 보시오 하는 소개밖에 되지 않는다. 

 

기회가 된다면 가서 꼭 보시도록.....

 

소피아 성당 관람을 갔던 사람들이 나오고....

블루모스크와 아야 소피아의 코폴라를 비교해 보면 아야 소피아의 큐폴라(원형 돔)가 더 큰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블루모스크가 몇 백년 나중에 지어진 것이지만 소피아 성당보다 더 큰 큐폴라를 만들려고 했지만 못만들고 말았다....건축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예레바탄 사라이의 지하 상수도 저수조를 보러 간다.

 

https://youtu.be/iTYfzGJwHwQ(소피아 성당 유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