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잘 살아가는 이야기

다행히 목적과 수단에 대한 이해를 젊었을 때 했었다....부자는 되지 못했지만 지금은 행복하다

뿅망치 2018. 12. 4. 14:46

다행히 삶의 목적과 수단에 대해서 비교적 늦지 않은 나이에 이해하게 되었다.

누구라도 다 알 수 있을 것이니 거창하게 이야기 할 것은 아니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 분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돈, 명예, 직위, 권력, 학력, 인간관계, 종교, 건강. 등...

이런 것들은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라고 하면 정의를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안겠지만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라고 하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라고 하면 쉽지 않겠지만 행복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나는 평생을 공무원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했었는데.... 자영업을 하거나 직장생활을 하거나간에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자영업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조직생활도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진급하기 위해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공무원은 무능력자로 낙인이 찍히거나 잘못하는 일이 없고 자신이 맡은 분야만 열심히 하면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진급에 욕심을 부리지만 않으면 치열하게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진급을 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조금 더 도움이 되고 성취감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치뤄야 하는 대가가 상당하다.

능력을 떠나서 체질상으로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그 과정을 견뎌내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 건강을 상하는 사람부터 시작하여 심지어는 스트레스로 죽는 사람들까지도 본 적이 있다.

 

사업이나 직장생활을 통해서 성취감을 통해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업이나 직장은 생계수단으로서의 역할이 본래의 목적이고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사업(영리)이나 지장생활의 궁극적 목적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을 버는 목적은 경제적으로 행복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이며, 자신이 이룬 부를 사회에 기여를 한다거나 명예와 지위를 얻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달라서 살아가는 방법도 다르겠지만 나는 직장은 내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생계의 수단으로 일찍이 정의를 내렸기 때문에 승진이나 경쟁 등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마음고생은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고위 공직자로서의 진급은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였고....

 

그 때 그 사람들이 지금은 다 퇴직하여 결혼식 같은 때 가끔 보기도 하는데 경제적으로는 그들이 나보다 더 나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나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소위 안빈낙도(安貧樂道)안분지족(安分知足) 하는 법을 아직 몸에 익히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60이 넘으면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같아지고 70이 넘으면 돈이 있는 놈이나 없는 놈이나 같아지며 80이 넘으면 산에 있는 놈이나 집에 있는 놈이나 같아진다는 우스개처럼 60이 넘어서 사회에 나오면 고위공직자이든 대기업의 임원이든 다 평범해 지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조직에서 배운 대부분의 지식들은 사회에 나오면 써먹을 곳이 없고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조직에서 천년만년 있을 것처럼 생각하여 퇴직 후의 삶을 생각해 보지 않은 퇴직을 하게 되면 우울증에 결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평균수명이 90이라고 하더라도 퇴직 후에 살아야 할 삶이 30년이고, 100세라고 한다면 퇴직 후에 살아야 할 삶이 40년이나 되는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른다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많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삶의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게 되는데 인간에 대해서 성찰(省察)을 해 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이 성찰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어떤 존재인지 또는 존재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인간에 대해서 성찰해보는 사람과 그렇게 해 보지 않는 사람과는 분명히 삶의 질에 있어서 차이가 나게 되어 있다.

 

인간의 존재목적은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살아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살아가다는 방법이 다르게 되는 것이다.

맨 처음에 언급했던 것들 돈, 명예, 건강, 학력, 경력, 조직, 종교 이런 것들은 자신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만 해도 삶이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되기까지는 상당한 수양이 필요하다.

 

직장 동료들이나 동창들 중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이나 학교의 경비(警備)를 직업으로 가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는데 그들의 이야기가 -놀면 뭐하나?- 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 생활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면서 살 수도 있겠지만 일단 자유롭지 못하다.

 

세상은 넓고, 나라도 많으며 인종들도 다양하고, 만나봐야 할 사람들도 많고, 가봐야 할 곳도 많은데 얽매인 몸이라면 불가능하게 된다.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 중에서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직장에 있었을 때는 그 사람들과의 우정이 죽을 때까지 유지될 줄 알았었는데 체 5년이 가기 힘들고 모임들도 거의 다 해체 되었다.

입사 동기들의 정기 모임 말고는 만나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전화를 주고받는 사람들도 없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 어쩌다 만나는 사람들도 다섯 손가락이 남는다.

 

동기간이나 동창들은 숙명적인 관계이니 죽을 때까지 만나는 존재들이지만 그 때 수십 년을 같이 같은 직장 안에 이었다고 하더라도 직장의 인연은 직장이 끝나면서 사실 끝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아쉽지만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런 아쉬움들은 퇴직 후에 만나는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니....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래서 철저히 그런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 살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있을 수가 없겠지만 가장 잘 사는 삶은 행복한 삶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행복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도 있을 수가 없겠지만 삶의 수단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삶은 진정한 행복의 삶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삶의 대부분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것들이 사실은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자체를 목적으로 알고 살아간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유명한 이야기로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본다’ 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지금은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40여년이 넘게 기독교 종교 생활을 하면서 말이 되지 않겠지만 기독교 종교생활방식과는 다르게 불교식 명상을 많이 하였다.

그 때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정의(定義)를 내려두었던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고 생각이 된다.

 

60이 되면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같아지고...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사회에서는 평범해질 것이니..

70이 되면 돈이 있는 사람이나 돈이 없는 사람이나 같아지고... 돈으로 할 수 있는 즐거움이 줄어든다는 것이며

80이 넘으면 집에 있으나 산에 있으나 같아진다는 것은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이 우스개소리가 나온지 20년도 넘었으니 그 사이에 수명이 많이 늘어나서 70은 80으로, 80은 90으로 바뀌어야 하겠지만 경제적이 활동을 하는 현역에서 물러나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월은 금방 가 버린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며 내가 주인이고 무엇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여 남은 생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