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까지 낙동강 변에서 10 여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서 여름에 비만 오면 강물이 범람하는 것
을 보면서 자랐다.
그 때는 댐도 없고 산에 나무도 없어서 비만 오면 연례행사로 홍수가 났었다.
또 그때는 강에 다리도 거의 없어서 나룻배로 강을 건너던 시절이어서 낙동강을 나룻배로 건너서 중
학교를 다녔었기 때문에, 매년 홍수 때문에 여름이면 두세 번은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물가에서 자라서 물이 무섭지는 않지만 홍수가 날 때 그물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면서 자랐다. 큰
물이 나지 않을 때는 강폭이 백여 미터도 되지 않지만, 물이 나면 그 폭은 3백여 미터가 넘는다.
나이가 많은 사공이 삿대를 짚어서 강을 건널 때 뱃전에 넘실거리는 흙탕물과 굽이치며 흘러가는 물
소리를 들으면 정말 무섭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면서 큰물에 대해서 겪을 일은 없었는데 1972년 8월 말경 군대에서 야영을 가서
물난리를 한 번 겪었다.
강기슭에 텐트를 쳤는데 그날 밤에 큰비가 와서 강물이 넘쳐 텐트에 물이 들이쳐서 군장이 떠내려갈
까 봐 군장을 둘러메고 장대 빗속에 40인용 텐트를 산비탈에 옮겨서 치느라고 고생하였었다.
군장을 둘러메고 물에 젖은 40인용 텐트를 빗속에서 옮겨 치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는 군대에 가본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그때 야영을 취소하고 부대로 귀대하면서 서울을 지나오는데 서울이 완전히 물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또 물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으로는 1990.9.12 서울에서 큰 물난리가 났을 때 우리 집이 물에
3일 동안 잠겼던 적이 있었다.
그 날을 기억하는 것은 사람이 자신에게 특별한 날은 기억이 되는 것처럼 그날을 잊을 수가 없기 때
문이다.
우리집은 사당동 근처로 카페골목은 복개가 되어 있었으나 아직 그 위로는 복개를 하는 중이었었고
우리집은 복개천 밑이었었다.
89년도 봄에 이사를 왔었는데 이사를 와서 보니 그 동네가 상습침수 동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동네 사람들은 집집마다 펌프며 모래주머니 등을 보관하고 있었고 84년 87년에도 물이 들어왔었다
고 하였다.
그때가 수원에서 3주간 교육을 받을 때였었는데 비가 며칠간 계속 와서 한강이 넘칠지도 모른다는
방송을 하고있었지만, 설마 또 동네에 물이 들겠나 하는 마음에 교육받으러 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
는 집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집을 나서기는 했으나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당동에서 수원 가는 버스를 타려고 갔다가 아무래도 집이 걱정이 되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집으
로 왔더니, 빗물이 하수구로 빠지지 못하고 골목에 고인 물이 고여 발목을 적시고 있었으며 대문을
통하여 마당으로 흙탕물이 막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집안은 이미 비상이 걸려 있었다.
집사람과 장모는 그 와중에 옷가지와 책들을 다락에 올리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 사이에 벌써 물이
마당에 차오르고 현관으로 금방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집사람과 장모님은 지옥에서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워 한다.
만약 그때 교육을 받으러 갔더라면 어린아이들은 둘이나 있는데 물은 차오르고 있으니 집사람과 장
모님이 얼마나 난감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지금도 진땀이 난다.
그래서 우선 아이들 둘을 먼저 옆구리에 끼고 장모님 보고 나를 꼭 잡으라고 하고 대문 밖으로 나오
는데 골목에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다행히 주택가라 물살은 빠르지 않아 무사히 빠져 나와서 아이 둘과 장모는 택시를 잡아서 잠실에
있는 처가로 보내고 다시 집으로 왔더니, 이미 안방에 물이 들어와서 장판이 뜨기 시작하고 있고 집
사람은 짐을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으로 올리려고 필사적이다.
저지대라서 집을 높이 지었지만 방안에서도 금방 물이 무릎에 차오르고 하는데 할 수 있는 것이 무
엇이 있겠는가? 장롱 위에 이불을 얹어서 천정과 맞닿도록 하여 장롱이 뒤집어지지 않도록 하고 다
른 옷가지 옮기는 것은 포기하게 하였다.
안방에서 물이 허리까지 차이니 마당에는 이미 한길이 넘어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구조하러 오
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다.
걱정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그냥 맘이나 편하게 있자고 하면서 기다리다가 군인들이 보트들 가지
고 와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태워주어서 집을 빠져나와 처갓집으로 갔었다.
결국 그 집은 사흘 동안 물에 잠겨 있었으며 먼발치에서 보면 담장에 꽂아 놓은 쇠창살 꼭대기만 보
였었는데 3일이 지나고 일산에 둑이 무너지면서 물이 빠졌다.
3일 만에 집에 들어가 보았더니 장독대에 있던 장독들은 다 떠내려갔고 냉장고는 거실 한 가운데에
벌렁 자빠져 있으며 거실과 방안에는 흙이 2센티 정도 싸여 있으며 옷이나 책 피아노는 물에 잠겼다
나와서 퉁퉁 불어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집사람보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주의를 주었는데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보더니 말을 하지 못한다.
결국 그 뒷수습을 하고 그 집에 들어가 사는데 두 달이나 걸렸다. 집이 침수를 당해 본 사람은 그 과
정이 어떤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집이 침수가 되었더라도 자신이 자녀의 입장이었을 때와 부모의 입장이었을 때는 천양지차
가 있을 것이며 가장으로서 침수를 당해 본 사람만이 그 황당함과 난감함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난리가 난 이틀이 지난 뒤에 교육원에 가서 집안 상황을 이야기하고 계속 교육을 받을 수가 없다
고 하였더니 이번에 받는 교육이 높은 사람의 관심사항이기 때문에 자퇴는 절대불가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수료를 하기는 하였는데 성적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요즈음 같으면 그런 상사라면 당연히 징계감이지만 그 때는 그랬던 시절이다.
애들은 처갓집에 보내고 물이 먹어 퉁퉁 불은 집에서 집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도 집에 오면
저녁 두 시 세시까지 그 뒷정리를 하는데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두어 달을 꼬박
그렇게 했었는데 지금이니 옛날이야기처럼 하지만 정말 두 번 다시 겪고 싶은 생각이 없다.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3일 동안이나 흙탕물에 잠겨 있던 집안의 현관문과 방문을 열고 들어가
는 것을 상상해본다면 그 광경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남자들은 군대에 가서 배우는 것 중에 좋은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문제가 해결이 되어 있다’는 진리를 배우게 되는데 그 때 기
막혀 하는 집사람에게 매일 해준 말이 이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악몽이 다 해결될 것이다.
참고로 그때 우리 동네는 서울시에서 제일 먼저 침수를 당했던 방배동 서문여고 근처로서 그때가 공
교롭게도 사당천 복개공사 중이었고, 복개공사 하던 곳의 둑이 터지면서 물이 들었고 강물이 불어나
면서 동네가 완전히 물에 잠겼었다.
금년은 중국이 두 달간의 집중호우로 장강 유역과 양즈강 유역이 범람하여 주변의 도시들이 물에 잠
기고 무너진 댐만 해도 몇 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큰 샨샤댐도 이번 홍수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며 샨샤댐이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도시가 물에 잠기면서 재산피해도 상상을 초월하지만, 중국의 곡창지대가 물에 다 잠
겨버렸기 때문에 식량난을 겪게 될 것이고 덩달아 세계의 곡물가격이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본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집중호우로 인한 재산피해가 막심하며 아직도 비가 그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잘 비켜가는 줄 알았더니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부산에서 많은 피해를 주었던 비가 이
번에는 중부지방을 강타하고 있다고 방송에서 계속 호우주의보와 홍수주의보를 발행하고 있으며 피
해상황을 보여준다.
지금은 전에 살던 곳이 복개가 완벽하게 끝나서 아무리 비가 와도 물에 잠기지 않지만, 홍수가 나고
난 그 다음 몇 년간은 여름이 되어 비만 많이 오면 걱정이 되어 배수펌프장에 계속 상황점검을 하기
도 하였다.
중국은 농경지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도시를 살리기 위해서 둑을 무너뜨리는 정책을 취하고 있는
데, 1990년도 대홍수 때 서울을 살리기 위해서 일산의 둑을 무너뜨렸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아마도
진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둑이 터지면서 한강 수위가 낮아져서 물에 잠겼던 동네의 물들이 빠지기 시작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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