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잘 살아가는 이야기

곡기를 끊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다....박수를 받을 일인가 비난을 받을 일인가?

뿅망치 2017. 4. 13. 21:21


 

아래 글은 2004.11.1일자 신문기사를 보고 썼던 글이다.

한 기사는 자식을 위해서 스스로 그만 살기를 작정을 하고 단식을 하다가 생을 마감했었고 같은 날의 또 다른 기사는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도 포기를 했던 자식의 기사이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부모와 자식 그리고 효도 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부모의 입장에서 또는 자식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다.

 

부모의 입장이라면 그 기사와 같은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인지?

자녀의 입장이라면 그 자녀처럼 결혼까지 포기하면서 효도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런 효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때 어떤 곳에 게재했던 글을 보시면서 자신의 생각들을 한 번 정리해보는 것도 인생을 정리하거나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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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김상옥 시조시인의 별세에 대해서 그 시인의 딸과 인터뷰한 ytn 기자의 2004.11.1일자 인터뷰 내용이다.

 

"아내따라 하늘로 간" 김상옥시인

 

백자부, 봉선화, 다보탑과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시조시인 김상옥씨가 어제 저녁 84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김상옥 시인은 60여 년을 해로한 부인을 잃자 식음을 전폐하고 지내다 엿새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리포트]

 

백자나 다보탑 등 문화재를 소재로 우리 민족 고유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 김상옥!

 

팔순을 넘기며 함께한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슬퍼하다 부인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인터뷰: 김훈정, 김상옥 시인 딸]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께서 곡기를 끊겠다고 말씀하셨다."

 

시조 외에도 서예와 전각에도 능했던 고인은 15년 전 화랑에 그림을 보러 갔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친 뒤,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 왔습니다.

 

부부가 워낙 금실이 좋았던 데다 거동이 불편해 진 뒤로는 고인이 부인에게 의존했기 때문에 아내를 잃은 상심이 더욱 컸습니다.

 

가족들은 김상옥 시인이 병석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며 '우리의 이생은 여기서 끝났나 보네'라며 죽음을 예감한 말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인터뷰:허유정, 시인(김상옥 시인제자)] "그림자처럼 옆에 계셔서 수선화라고 불렀다. 내조를 참 잘하셨다."

 

봉선화, 백자부, 청자부와 같은 작품을 통해 현대 시조를 개척한 김상옥시인의 몇몇 작품은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평생을 사랑한 부인을 따라 갔어도 그가 남긴 시는 영원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또 하나의 아래 기사도 마찬가지로 2004.11.1일 세계일보의 기사다

 

 

"결혼도 잊고 반신불수 홀어머니 수발 11년"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게 그저 좋을 뿐인데 효행상까지 받아 쑥스러워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뇌졸중으로 쓰러진 홀어머니를 11년간이나 극진히 간호하고 있는 40대 여성이 주위에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아산사회복지재단(이사장 정몽준)이 주는 제16회 아산상(효행부문) 수상자로 1일 선정된 김연분(47․충북 충주시)씨. 김씨는 오는 25일 서울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효행상 상패와 500만원의 상금을 받는다.

 

1991년 부친이 지병으로 세상을 뜨고 3년 뒤에는 어머니 김반순(81)씨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김씨는 시집도 가지 않은 채 노모의 손과 발이 되어 지금까지 정성스레 보살피고 있다. 그는 ?처음 어머니가 쓰러졌을 때 정말 내 몸의 한 곳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팠다?며 ?살아갈 희망과 의욕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홀어머니에게 식사를 챙겨주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행여 어머니가 찾을까 멀리 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김씨의 지극 정성으로 지금은 다행히 어머니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그는 어머니가 없는 세상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의 노모 사랑은 가족들이 별종이라고 할 정도로 남달랐다. 4남2녀 중 셋째였던 그는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의 고생을 지켜봤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한 데다 아버지가 항상 몸이 아파 어머니는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고 6남매를 키우기 위해 온갖 고생을 겪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항상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식들 배를 채우려고 늘 굶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하루는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온 어머니를 위해 밥을 차려 드렸어요. 그걸 보신 엄마는 저를 안고 울더군요.?

 

어머니를 못 찾아 뵐 것 같아 결혼할 마음도 안 들었다는 김씨는 1994년 홀어머니가 쓰러지자 맡고 있던 가게부터 처분했다.

 

경기도 화성에 나와 살면서 자신의 이름을 딴 ?연분제과?를 차렸지만 미련없이 정리하고 어머니가 계신 충북 충주로 내려왔다. 그때 번 돈을 간병비로 썼고 지금은 아는 사람 가게 일을 도와주며 어렵게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이런 그에게 주위에서는 ?하늘이 내린 효녀?라며 칭찬이 자자했고 5년 전에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효녀패를 받기도 했다.

 

누워 계신 어머니가 식사를 안 할 때 가장 속이 상한다는 김씨의 소망은 딱 한 가지다. 바로 어머니와 오래오래 같이 지내는 것. ?그동안 효도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빨리 일어나 효도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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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기사를 보면서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이제는 정말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이제는 사람들이 가치관을 바꾸어야 할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가치관을 바꾸지 않음으로 인하여 억울한 희생이 미덕이 되는 것처럼 아직도 칭송을 해서야 되겠는가.

위의 기사는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자기도 아예 죽을 결심을 하고 곡기를 끊은 지 닷새 만에 죽었다는 내용이다.

 

아래기사는 병든 노모를 수발하기 위하여 딸이 시집가는 것을 포기를 하고 11년째를 모시고 있다는 내용이다.

 

위의 기사를 보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그 시인의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식을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이미 인생을 달관한(?) 것 들을 읽을 수가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숙연한 가운데서도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아래 기사를 보면 부모에 모시기 위하여 결혼을 포기하고 11년째를 모시고 있다고 하는데

물론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부모를 모시는 것이 훌륭한 일임에 틀림이 없고 본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 기사를 보면서 애처러운 마음과 무엇인지 모를 분노 같은 것이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다.

기존의 가치관(특히 종교인들)에서 보면 위 시인은 소극적인(부작위로 인한) 자살을 하였으니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분이 선택한 죽음에 대해서 심정적으로 오히려 그 용기를 부러워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그 행위를 비난할 사람은 적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가치관으로 보면 아래의 내용은 모든 사람이 본받아야 될 미담으로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 될 가치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를 모시는 것이 과연 효도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면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히 최선의 선택이 아니고 어리석은 선택이다.

우리의 고전 중에 효(孝)를 주제로 한 것이 심청전이다.

과정은 어떻게 되었든 딸의 목숨과 아버지의 눈과 바꾸는 내용이다.

이것은 효를 강조하다가 보니 그렇게 했겠지만 사실은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내용이다.

눈의 가치가 목숨의 가치를 넘어 설 수도 없으며 설령 눈의 가치가 목숨의 가치와 맞먹는다 하여도 자식의 눈을 위해서 부모가 목숨을 버릴 수는 있어도 부모의 눈을 위해서 자식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아래 기사를 보면 4남 2녀 중 셋째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결혼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결혼들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 자기가 하던 사업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11년째를 수발하고 있다고 하며 그 것이 행복하다고 한다.

 

어머니가 맑은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육신을 움직이지 못하더라도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를 간호하느라고 결혼도 포기하고 수발을 들고 있는 것을 안다면 그 마음이 어떨 것인가?

 

결국 늙고 병든 자신 때문에 꽃다운 딸이 늙어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딸에게는 보람이고 기쁨일지 모르지만 부모로서는 그것이 차라리 형벌일 것이다.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지고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지만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결혼을 희생하는 것(사실은 인생의 비자발적 포기?)과 차라리 불효를 하더라도 결혼을 하는 것과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이고 더 바람직한 것인가?

 

물론 병든 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본인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돌볼 수 있다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해 가면서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진정한 효도의 길인가?

과연 그 행위가 세상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것인가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부모에게 효를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자식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한다.

그렇지만 위와 같이 자기의 인생을 송두리째 희생해 가면서 하는 효도는 잘못된 것이다.

 

늙거나 병들어서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늘고 병든 자신 때문에 자식이 고생하고 희생하는 것을 보면서 그 자식의 고생과 희생을 흐뭇하게 생각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 짐을 덜어주는 방법이 빨리 저 세상으로 가는 방법이외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만약 가능만 하다면 그 짐을 덜어주고 싶을 것이다.

 

자식의 입장에게 내가 힘들고 어렵다고 하여서 병석에 있는 부모에게 돌아가시라고 부탁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는 선택을 할 수가 있다.

아니 선택을 하여야 한다.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물론 지금 이런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비난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지 않는가?

 

부모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김상옥 시인의 용기와 결단을 당연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살만큼 살고 난 후 세상에 미련을 둘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위의 시인처럼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자식을 위해서 감히 곡기를 끊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러나 그러기 전에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보는 것이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