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딴라폭포에서 바오다이황제의 여름별장(제3별궁)으로 출발하는 시간이 4시로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금방 간다.
바오다이 황제의 별장으로 가는 길...산등성이를 타고 가기 때문에 달랏 시내를 보면서 간다.
바오다이황제의 여름별장은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2km 정도 거리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속에 있으며 응우옌 왕조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와 그 가족을 위하여 1933년에 지어진 여름 별장이다.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달랏 전체가 사방으로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바오다이 궁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건물 외관이 궁전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간소하지만 내부는 거실, 연회실 등 모두 25
개의 방이 있다. 궁전에는 각종 예술 작품과 골동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늘에서 본 바오다이 궁...소나무숲으로 둘러쌓여 있다.
위에 설명한 내용 그대로 궁전으로 보기에는 너무 초라해 보인다.
내부에는 바오다이와 그의 부인 남프엉 그리고 가족 사진들과 그들이 생활했던 생활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주 간결하다.
여름별장 들어가는 입구
들어서면 잘 생긴 소나무와 종려나무??들이 보인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베트남 사람들처럼 보인다.
들어가는 입구....궁전이라고 하기에는 아담하다.
덧신을 신고 들어간다.
생활하던 곳들을 둘러본다.
생활용품들과 사진들
바오다이 황제....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잘 생기고 키도 컸다고 한다.
바오다이 국왕(황제?? 1913년 10월 22일 ~ 1997년 7월 31일)은 베트남의 마지막 국왕(재위: 1925년 11월 13일 ~ 1945년 3월 11
일)이자 베트남 제국의 국왕(재위: 1945년 3월 11일 ~ 1945년 8월 23일)이고, 베트남국(베트남 공화국)의 국가원수(재임: 1949년
6월 13일 ~ 1955년 4월 30일)이다. 베트남은 프랑스의 통치를 받는 기간 중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와 일본의 식민통치 하에서 형식
적으로 왕위를 유지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바오다이는 프랑스의 지원으로 남베트남의 베트남국의 국가 원수가 되었으며, 1949년 프랑스와 조약을 맺고
통치권을 인정받지만, 1955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총리 응오딘지엠이 국민투표를 통해 군주제를 폐지하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본
명은 응우옌푹티엔(베트남어: Nguyễn Phúc Thiển, 阮福晪), 즉위 전 이름은 응우옌푹빈투이(베트남어: Nguyễn Phúc Vĩnh Thụy,
阮福永瑞)이며, 말황제(Mạt Hoàng Đế, 末皇帝)라고도 불린다.
6명의 부인으로부터 11남매를 두었다(위키백과)
예복을 입은 바오다이
그의 정실 부인이었던 남프엉
첫 번째 부인인 남프엉(1914년 12월 14일~1963년 9월 16일 향년 48)황후는 절세미인으로 유명하다. 남프엉이라는 이름은 '남쪽
으로부터 오는 향기(南芳)'라는 뜻으로 꽃다울 방(芳) 자를 쓰며 한자식으로 읽으면 남방황후가 된다.
그녀는 베트남 남부 재벌 가문의 딸로 12살 때 파리의 가톨릭 학교에서 유학을 했고 이때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프랑스식 이름
은 마리테레즈(Marie-Thérèse)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서 불교를 믿는 황실에서 가톨릭 신앙 유지를 조건으로 바오다이의 황후가
되었다고 한다.
20세인 1934년 3월 24일에 바오다이와 결혼했는데 바오다이는 프랑스 유학 후에도 천주교로 개종하지 않았지만 남프엉 황후와
아들은 천주교 신자였다.
2남 3녀를 두었는데 장남 보륭(바오롱) 황태자(1936-2007), 보승(바오탕) 황자(1944-2017)는 모두 자녀가 없었다.
한국으로 치면 이방자와 비슷한 포지션으로, 실제로 남프엉 황후도 자선활동 같은 걸 하며 사랑 받았다고 한다. 호치민이 황실에
대한 예우로 10,000 달러에 달하는 돈을 생활비로 주었으나, 폐위된 황후는 그 돈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지금 시각으로 봐도 빼어난 미인이라서 베트남에서는 지금도 상당히 인기가 있다.
바오다이는 소문난 바람둥이에다 공식적인 후궁도 몇 명 두었고 그녀 사후 재혼도 했지만 다들 첫 황후보다 못했다.
1963년 48살에 프랑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나무위키)
침실등도 개방되어 있다.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정면쪽
잘 가꾸어진 화단도 보이고...
남프엉의 응접실인 듯
남프엉의 개인적인 방이라는 설명과 사진....아주 미인이었다고 한다.
상당한 미녀인 남프엉의 사진...일반적인 베트남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겼는데 눈에 쌍까풀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현지인의 혈통은 아
닌 듯하다.
죽을 때까지 가톨릭 신자였었다고...베트남은 불교국가로 국교이다시피하다.
이곳 저곳..
자녀들의 방도..
공주들의 방인 듯...
접견실이었던 듯...의자와 이곳에서 쓰던 왕실도구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옷을 빌려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회의실??
소박한 왕궁을 둘러보고 나와서
나무 사이로 달랏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궁전이라고 하지만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금방 둘러보게 되며, 안에서 기념사진들을 찍는 곳도 없기 때문에 대충 둘러보고는 나
와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항응아 빌라(크레이지 하우스)라는 곳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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