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줄라 호자예프의 가옥으로 가는 길의 부하라 시가지 모습
유적지를 구경하면서도 이것이 마음에 걸려서 일행들에게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면서 일인당 2만원 조금 넘는 돈 때문에 언어
가 통하지 않는다고 하여 사기를 쳐서는 되지 않는가 하며 동의를 구했으나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박물관이라는 표기가 있는 호자예프의 집
사토라이 모히 호사를 뒤로 하고 파이줄라 호자예프 가옥을 보러 가는데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버린 곳이다.
파이줄라 호자예프(Fayzulla Khodjaev 1896~1938)는 부하라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25년 우즈베스탄공화국의 초
대 의장을 지냈던 사람이다.
호자예프가 살았던 당시의 부하라는 러시아의 속국이 되어 부하라의 국왕이 러시아로부터 위임지배를 받고 있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봉건주의 체제를 타파하고 공산주의 체
제로 전환하게 된다.
그리고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던 중앙아시아를 소비에트 인민공화국에 합병시키려는 시도를 하여 1925년에 부하라왕국을 멸망시
키고 부하라인민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파이졸라 호자예프는 부하라 왕국을 멸망시키고 부하라 인민공화국을 설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나중에 우즈베키스탄
인민공화국의 초대 의장이 되었으나, 타슈겐트에 기반을 둔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던 아크말 이크라모프(Akmal Ikramov, 1898년
~1938년)와의 권력투쟁에 패배하면서 실각하게 된다.
이는 호자예프가 우즈베키스탄의 민족주의를 공산주의의 보다 앞세우는 바람에 민족주의를 말살하려는 소련의 노선에 맞지 않기
때문에 소련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당에 있는 파이줄라 호자예프 흉상...그런 시대에 살았던 엘리트들은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문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파이줄라 호자예프의 가옥
호화로운 저택이다.
집안에 있는 우물...안에 물이 고여 있다.
내부는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호자예프를 권력에 눈이 먼 사람으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엘리트로서의 민족에 대한 미래를 먼저 생각한
선각자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파이줄라 호자예프 가옥은 Fayzulla Khodjaev House Museum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엄청난 부자상인 이었던 그의 아버지
가 1891년에 건축한 집이라고 한다. 파이줄라 호자예프는 이곳에서 1925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이 저택은 호화롭기 그지없으나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관광객들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서 구경을 하게 되며 안에 들어
가면 우즈베키스탄 전통복장을 입고 사진도 찍을 수가 있다.
우리와 같은 시간에 와 있던 관광객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어서 도촬함
우즈베키스탄 정통 무늬들로 벽들이 장식되어 있다.
건물을 관리하는 직원...내부 사진을 찍으려면 비용을 내라고 하는데 그냥 눈감아 준다.
여자 직원들에게 예쁘다고 칭찬 한 번 해주고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한 판 찍어 본다....모자도 부하라에서 산 것이고 바지도 부하라
에서 산 것이다.
그냥 편안한 삶을 택했더라면 안락하게 말년을 보냈을 텐데...1925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집 내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자료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부하라지도라고 한다.
그 당시 부하라의 상황과 생활모습들이 전시되어 있다.
택시 기사와는 이곳까지만 계약을 했었으나 초르 미노르까지 더 연장을 하자고 하여 초르 미노르로 출발을 하였는데 가는 길에 자
기 집이 있다고 하며 자기 집앞에 차를 세우고 마당에서 포도를 따서 먹으라고 준다.
참으로 순박한 사람인데...
뒤통수를 치려는 줄도 모르고
마당에서 포도를 따는 손녀와 운전기사
할아버지와 우리를 배웅해주는 운전기사의 손주들...
초르는 이곳말로 4이고, 미노르는 첨탑이란 뜻의 미나렛이다.
이 미나렛은 부유한 터키인인 니야즈쿨이라는 사람이 1801년에 기증한 마드리사에 1807년에 건축되었으나 마드리사는 무너지고
첨탑만 남아 있는 곳이다.
초르 미노르가 보이는 곳에서 차가 더 들어갈 수가 없어서 택시 기사와 이별을 하는데 다시 한 번 일행들과 상의를 하였으나 더 줄
생각이 없는 것아서 그들이 얼마로 협상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4만 솜을 낼 터이니 그리 알라고 하여 공통으로 걷
은 차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직접 그 사람에게 주었다.
지금도 뒤통수를 맞고 황당해 하던 그 택시기사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주었을 때 고마워하던 표정도......
편리하게 이용을 하였으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특히 우리보다 후진국인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일정이 며칠 남지도 않았지만 그들과 얼굴을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가능하면 대화도 피하고 말았다.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저주를 내리고 싶다 ....여행을 앞으로 하지 못하는 저주를...
초르 미노르는 론리 플레닛이라는 여행잡지사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유명해진 곳으로 조그만 네 개의 첨탑이 참으로 인상적인 곳
이다.
부하라를 찾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오는 곳 중의 하나이다.
초르 미노르...네개의 탑을 가진 뜻이라는
1807년도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론리 플레닛이라는 여행잡지에 이 사진이 올라오면서 부하라의 유명물이 되었다.
주변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공산주의 시절의 훈장들과 계급장과 복장들을 파는 가게
그리고 다른 것들도 판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꼭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가는 곳이다..이곳에서 일행들을 또 만났다.
배낭 관광객들도 이곳을 찾는 곳이라고
초르 미노르에서 라비하우스까지는 가깝기 때문에 걸어서 오는 길에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았는데 올드 부하라는 식당이 보인다.
유명한 식당이라고 하여 들어가 보니 유명식당이어서인지 사람들도 많고 가격도 만만하지 않다.
라비 하우스 근처의 나름대로 깨끗한 식당을 찾아서 점심을 먹는다.
라비 하우스 근처로 와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옵의 셈과 이스마일 묘 그리고 아크 성을 보기로 한다.
골목을 걸어서 가는데...노란 관은 가스관으로 구소련 시절에 위성국가들에게 소련이 설치해준 것으로 아제르바이잔에서 나오는
가스였다고 한다.
뽕나무를 기둥 삼아 쌓은 벽
옛날 건물들이 보수중으로 이런 건물들은 호텔 등으로 개조가 된다.
위쪽에 전망대겸 식당이 있는 집들
올드 부하라는 음식점이 유명한 곳이라고...
친근한 우즈베키스탄 할아버지 인형이 호객을 한다.
예약이 하지 않아서 퇴출되고...
라비 하우즈 쪽으로 걸어 가고
어제 저녁에 보았던 모습과는 다른 라비하우스
점심 먹으로 들어갔던 식당과
히잡을 쓴 종업원...종교의 굴레를 씌어 놓았지만 이들도 우리나라의 젊은이들과 같이 자유롭고 싶을 것이다.
얼마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청춘인가....
히잡을 벗으면 어떤 인물이 나올지 정말 궁금한 얼굴이다.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먹을 만 했던 메뉴
우리가 점심을 먹은 곳이 랴비 하우즈 근처로 잠깐 쉬고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내일은 부하라를 떠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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