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튀르키에 패키지관광여행기/중국 망산 여행기

망산(莽山) 고의령(高椅嶺) 등을 다녀 오다(9)...망해버린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망산트레킹(4)

뿅망치 2025. 12. 10. 14:42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려오는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다.

1시 40분경 셔틀버스를 타고 30분쯤 내려오니 망산 자연박물관이 있는 후왕채경관구역이다.

후왕채(㺅王寨)란 원숭이의 왕이 사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이곳에 원숭이가 살고 있는 모양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제일 먼저 목에 청사를 걸고 있는 사람의 동상이 있는데 이 사람이 망산에서 수십 년간 뱀 연구를 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곳에 망산자연박물관(莽山自然博物馆)이 있는데 아 사람 때문에 생긴 박물관으로 망산에 서식하고 있는 동 식물들을 전시하고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자연박물관을 간단하게 둘러보고 아홉 개의 폭포가 있다는 곳으로 올라가 보면 원숭이들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원숭이들을 보지는

못했다.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기도 하고 시간도 조금 밖에 주지 않아서 몇 번째인가의 폭포를 올라가면서 보다가 내려온다.

 

오늘 마지막 일정으로 천저우의 비천산으로 가서 뗏목을 타고 수로탐방을 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150km로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두 시간이 걸려 비천산 뗏목을 타는 곳에 도착을 하니 4시가 넘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셔틀버스 타는 곳

망산 자연박물관을 들어서려면 제일 먼저 보이는 동상...망산에 있는 뱀에 대한 박사...30년이 넘게 뱀을 연구한 사람이라고...한문 실력이 짧

아서 이름을 알 수가 없다....알 필요도 없기는 하지만

규모도 크고 시설도 아주 훌륭하다.

벽면이 화면으로 망산의 사계절과 이곳의 동식물들의 사진이 나온다.

수시로 화면이 바뀌고...

우리가 내려온 망산...구름이 더 아래로 내려온 듯하다. 

이곳에 서식하는 동식물들..반딧불이

노루도 보이고...

늪지와 식물도

망산에 사는 망사(莽蛇) 살무사로 알려진 학명이 프로토보스롭스 망샤넨시스(Protobothrops mangshanensis)로 중국 후난성 및 광동성 일대에서만 서식하는 고유의 뱀으로 망산종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한다.

망사의 뼈...

뱀에 관련 전시물이 많다.

 동상의 주인공...

박물관을 나와서 산을 올려다 보니 구름이 더 내려와 있다....

폭포가 9개가 있다는 골짜기..이 골짜기에 원숭이들이 살고 있다고....

조그만 폭포가 흘러내린 담에 이름들이 붙어 있다....비취담

다리가 아픈 사람들은 아래서 사진을 찍고 거기서 기다리고...

이런 계곡을 올라가면 조그만 폭포들이 줄지어 있다.

청산녹수...

수o동...한자 실력이 짧아서

산꼭대기가 보이기는 하지만...거기까지 갈 시간이 없다.

위에 까지 길이 있기는 하지만...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곳에서 그치고 내려온다.

원숭이를 이렇게 만나게 되는 듯....

망산 오지봉쪽...

 

셔틀버스를 타고 서문쪽으로 간다.

서문으로 나가는 곳

계단식 밭도 보이고...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을 가게 된다.

여행발전대회??

두 시간이 걸린다.

비천산 뗏목 타는 곳에 도착을 하니 비가 내린다....

 

망산과 관련된 이자성과 구려십팔담(九驢十八擔)이야기

호남남부의 변방에 있는 망산(莽山)에 있는 천당촌(天塘村)은 이백년전의 역사적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오래된 촌락이다. 이 신비한

마을에는 수백년동안 신비로운 비결이 하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석암충(石巖沖), 삼좌교(三座橋), 만행백보주(慢行百步走), 삼요금(三

窯金)" 전해지는 바로는 이 비결에 숨은 비밀을 파해하면, 거액의 부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이 부는 바로 명나라 말기 농민군 지도자 이자

성이 패배한 후, 망산에 가져온 "구려십팔담"의 금은보화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 신비한 비결은 무수한 사람들이 보물찾기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1970년대 말기, 망산의 보물찾기는 최고조에 달한

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하여, 천당촌의 다섯 장정은 한 바람불고 어두운 밤에 비밀리에 맹세를 한다. 그들은 조상의 신위 앞에서 맹세를 하는

데, 누가 먼저 보물을 찾든지 간에 좋은 일도 함께 나누고 슬픈 일도 함께 하기로 한다. 그들은 많은 곳을 파헤친다. 그러나 보물을 발견하지

못한다. 얼마 후, 공포가 다가온다. 보물을 찾아나선 촌민이 병석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얼마후에는 세상을 떠난다. 소문에 따르면,

그들은 보물을 지키는 망령의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촌민이 죽은 후,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저녁에 전율할 일막을 목격하기도

한다.

 

촌민중 많은 사람들은 봉두난발을 한 사람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저녁에 산 위에서 불덩이가 이리저리 오가는 것도 본다. 마치 귀화(鬼火)

같았다. 마을의 어린아이들은 감히 바깥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장발을 한 괴이한 사람 모습, 모골이 송연한 무명귀화(無明鬼火), 이 모든 것

은 마치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을 예시하는 듯했다. 이번 보물 찾기에 참가한 촌민들은 불안해진다. 그러나 세심한 촌민들은 발견했다. 마을 뒤

의 산속에 몇 개의 흙무더기가 파헤쳐지고, 곁에는 도기와 자기의 부서진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는 것을.

 

원래, 마을 사람들이 발견한 사람 모습은 도굴범이 사람 눈을 속이기 위하여 한 짓이었다. 그러나 기괴한 일은 많은 가치 있는 문화재들을 도

굴범들이 그냥 버리고 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 도굴범들은 도대체 무엇을 찾는단 말인가? 이 일은 금방 천당촌의 담

상길(譚相吉) 노인의 주의를 끈다. 그는 도굴범들이 버리고 간 문물을 자세히 살펴본 후, 대담한 추측을 내놓는다. 이들 도굴범들은 분명히

전설상의 이자성이 남긴 "구려십팔담" 보물을 찾는 것이다. 망산주변지구의 많은 지명, 예를 들어, 봉천평(奉天坪), 영창촌(永昌村), 미지요

(米脂坳), 마안산(馬鞍山)등은 모두 이자성의 봉호 및 그의 고향지명과 관련이 있다. 그 외에, <의장현지>에는 이자성과 관련된 대목이 나

온다. "순치6년 정월, 틈적(闖賊, 이자성을 가리킴)의 잔당인 일지호가 패배하여 침주(郴州)을 지난다. 살륙이 아주 참혹했다."

 

이자성의 군대는 확실히 망산을 온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자성 보물의 전설도 성립될 것인가? 만일 성립된다면, 그 전설의 거액보물은 도대

체 어느 곳에 묻혀 있을까? 이자성이 망산으로 들어온 노선을 살펴보면서, 망산림구안에서 촌민은 "황장암(皇藏巖)"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

동(山洞)을 발견한다. 이것은 이자성보물을 푸는 계기가 된다.

 

촌민들은 이 암동을 발견하는데, 동굴입구는 잘 숨겨져 있다. 동굴 안에는 괴이한 돌들이 있고, 푸른 연기가 감싸고 있으며,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동굴입구의 편평한 곳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삼합토 모래층이 있다. 확실히 이 곳은 사람들이 활동한 적이 있는

곳이다. 황실의 분위기가 넘치는 이 동굴의 이름에 따라, 이자성이 가져온 보물이 이 암동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자세히

발굴해보니 전혀 달랐다. 동전이 약간 나온 외에 더 이상 보물은 나오지 않았다.

 

설마 이자성이 휴대한 "구려십팔담"의 금은보화전설은 그저 헛소문이란 말인가? 혹은 이 엄청난 보물은 아직도 비밀스러운 장소에 묻혀 있

단 말인가? 이때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진다. 망산과 80리정도 떨어져 있는 백사우향에서 촌민들은 이틈왕지묘(李闖王之墓)라는 석비를 발

견한다. 석비의 높이는 2.5척, 너비는 1척, 두께는 0.5척이다. 비문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것은 이자성이 망산에 묻혀 있다는 것을 더욱

증명하게 된다.

 

이틈왕묘비의 발견은 비록 보물의 발굴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이것이 아마 전설에서 언급한 보물에 새로운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지 생각한다. 보물이 묻힌 지점이 이자성의 군대가 활동한 망산핵심지역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방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방향으로 찾아보다가, 마침내 놀라운 발견을 한다. 길가의 산언덕에 인공으로 쌓은 석벽을 발견한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이것은 간단한 공사가 아니었다. 설마 그 전설상의 보물이 바로 이 석벽의 안에 묻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깊은 산의 숲 속에 인적도 드문 곳에 왜 이렇게 거대한 공사를 벌였단 말인가?

 

일반 백성이라면 이런 공사를 벌일 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길이가 100여미터에 너비가 10여 미터이고 3층이나 된다. 고증을 거쳐,이 석벽에서 1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원래 거대한 산동(山洞)이 있었다는 것을 찾아낸다. 이름은 용가동(溶家洞)이다. 용가동은 망산의 뒷면에 있다. 암동(巖洞)은 아주 큰데, 수동(水洞) 하나와 한동(旱洞) 하나가 있다. 이곳에는 1만명이 숨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현지 촌민들은 청나라군의 계속된 추격에 이자성군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이 동굴로 들어가 숨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굴의 입구에 벼락이 치는 바람에 용가동의 입구는 매몰되었다고 한다.

 

이자성이 남겼다는 거액의 보물을 찾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용가동을 발굴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전설 속의 보물을 찾지는 못했다.

일대영웅 이자성은 마지막에 어디에 묻혔을까? 전설상의 보물은 어디에 묻혔을까? 역사가 남긴 흔적에서 사람들은 계속하여 찾는다. 그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전설의 신비로운 면사를 벗기고자 한다....인터넷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