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그리고 네팔배낭여행기

인도네팔 배낭여행기(18)...네팔의 수도 카트만두(3) .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뿅망치 2020. 2. 25. 11:17

나가르코트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히말라야의 장엄함을 보고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오늘은 하루 종일 카트만두의 유적지를 보는 자유 시간으로 카트만두의 더르바르 광장과 타멜 거리 등 카트만두의 다른 유적지를 보는 날이다.




나가르코트에서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들판과 밭들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들의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곳에 간다면 사실 눈으로는 보았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오게 되는 셈이다.

보는 것들이 종교와 관련된 유적지들이고 우리나라와는 달리 그들의 삶은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를 모르면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사는지도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여행은 단순한 구경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래야 시야와 생각의 폭도 넓어질 수 있는 것이며 자신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더 확고하게 확립을 하거나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의 목적은 견문을 넓히는 것이며 견문을 넓히는 목적은 자신을 지적(知的)으로나 영적(靈的)으로나 더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여행은 자신을 성숙시키기 위한 목적이 되는 것이다.

 

고생스러운 여행을 단순히 어디 어디를 다녀온 것으로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단세포적인 생각이며 안타까운 일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 믿지만....

 

카트만두의 유적지를 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네팔의 종교에 대해서 간단히 라도 알아야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힌두교 관련 유적인지 불교 관련 유적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네팔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나라이지만 인도와 마찬가지로 힌두교가 81%이고 불교가 11% 이슬람이 4.5% 기독교 1.5% 등으로 힌두교가 국교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나라이다.

그리고 네팔의 불교는 우리에게는 낯이 선 티베트의 불교를 믿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불교유적지와는 모습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참고로 네팔에 기독교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있다는데 그 이유는 카스트제도의 ‘수드라’ 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인 ‘딜리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으로 취급을 받지 못하는 그들 입장에서는 신(神)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독교의 사상이 복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카트만드두에는 더르바르(왕궁)가 두 군데 있는데 카트만두 더르바르와 파탄 더르바르로 이곳은 왕궁으로 이곳에 있는 유적지는 왕궁과 힌두교와 관련된 유적지 들이다.

그러므로 관광객들이 카트만두에서 보는 건물들은 왕궁과 힌두교 사원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스와얌부나트 사원과 보디나트 사원 두 군데는 티베트 불교 사원이라는 것을 상식적으로라도 반드시 알아둘 필요가 있다.

(티베트 불교에 대해서는 티베트 여행기에서 더 자세히 설명을 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생략하고 힌두교에 대해서도 다음 회나 다다음 회에서 설명을 할 예정이다.)

 

인도와 네팔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 등의 유적지를 갈 때는 종교에 대한 이해를 하지 않으면 여행의 의미가 줄어들기 때문에 글들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행기가 종교설명서가 되어서 미안하기는 한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타멜 거리는 카트만두 더르바르와 붙어 있기 때문에 지나가면서 보는 것으로 패스를 하였는데 2007년도에 히말라야 트레킹 왔을 때에 타멜 거리의 밤과 낮을 다 구경하였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전체 일행들이 카트만두 더르바르를 구경하게 되었는데 이곳은 입장료를 받는 곳으로 개인적으로 입장권을 사게 되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렵기 때문에 가이드가 일괄적으로 돈을 걷어서 입장권을 구매해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각자 알아서 구경을 하고 포카라에서 와서 잠을 잤던 그 호텔로 각자 알아서 들어가면 된다.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과 붙어 있는 타멜거리의 모습

시장과 유적지들이 공존한다.

야크털로 짠 목도리부터 여러가지 제품들이다.


오전에는 모든 일행이 더르바르 광장을 중심하고 광장의 사원들과 사원주변에 있는 상점들, 그리고 박물관과 쿠마리 사원을 구경을 하였으나 오후에는 각자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헤어져서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 오후에는 모자 일행과 보디나트를 보게 되었다.

 

주변에 파탄 더르바르광장도 있지만 카트만두 더르바르광장 주변을 보는 것만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오전에는 이곳을 보는 것도 버겁다.

모자 일행과 같이 구경을 하는데 엊그제 먹었던 스테이크가 문제가 되어 몸살과 설사가 어제부터 시작되어서 다니는 것이 힘이 들지만 구경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숙소에 들어가도 춥기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하기 때문에 밖에서 비록 식사도 하지 못하지만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박타르푸르의 더르바르를 보았기 때문에 이곳도 그곳과 별로 다를 것이 없고 힌두교에는 신도 많고 따라서 그런 신을 모시는 사원도 많아서 지도를 들고 일일이 대조를 하지 않으면 무슨 사원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수많은 신을 다 아는 것도 그리 큰 의미도 없다.

그래서 그냥 둘러보는 것으로 관광을 할 수밖에 없다.


오전에는 모든 일행이 더르바르 광장을 중심하고 광장의 사원들과 사원주변에 있는 상점들, 그리고 박물관과 쿠마리 사원을 구경을 하였으나 오후에는 각자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헤어져서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 오후에는 모자 일행과 보디나트를 보게 되었다.

   

힌두교 사원들

힌두교에서  모시는 신 중의 하나인 하누만이라는 원숭이 신상

신전과 시장이 어우러져 있다.

기도를 하기도 하고 이곳에서 상담도 한다고 한다..


불교의 사천왕 같은 역할을 하는 신이 아닌가....칼라바이 라브 신이라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사람의 머리이다.

이 신도 하누만 신 같은데...

신에게 예물을 바치고 축복을 받기 위해서 줄을 서있는 사람들

사원과 주변의 모습들...

이곳은 왕궁의 뜰이었는데 개방이 되어 장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사원의 서까래의 조각들...자세히 보면 성기들을 조각해 놓았는데 힌두교 신앙에서는 성이 중요시 된다.. 인도의 카주라호에는 성행위를 하는 조각들이 새겨진 부조로 유명하다.



왕궁근처의 카트만두의 모습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쿠마리와 쿠마리사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박타르푸르나 파탄 등에도 쿠마리들이 있어서 쿠마리가 머무는 사원이 있지만 이곳의 쿠마리와 쿠마리 사원이 가장 유명하며 사람들이 쿠마리를 보러 오기도 하고 쿠마리와 쿠마리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을 보기 위해서 관광객들이 찾기도 하는 곳이다.

카트만두에서 유적을 볼 때 힌두교의 신들을 위해서 지은 사원은 다 기억을 하지 못하더라도 살아 있는 신으로 받들고 있는 유적(遺蹟)과 같은 존재인 쿠마리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아야 할 것이다.

쿠마리 제도는 사실 인신공양과 다름없는 제도로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서양 같으면 아동학대로 당장 페지 되었어야 할 제도이다.

쿠마리들을 보면서 어린아이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이 종교적 행위일 뿐이고 그들의 문화일 뿐이라는 생각이라면 여행하는 사람의 자세는 아닐 것이다.

 

  쿠마리사원...나무로 된 사원의 창문이나 발코니의 조각들이 수백년이 지났음에도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단단한 것이 신기하다.

베란다 위에 있는 부조들..돌 같이 생겼으나 나무이다.

관광객은 쿠마리들의 사진을 직을 수가 없다.

이런 어린아이에게 참으로 몹쓸짓을 하는 셈이다.

쿠마리들....10명의 쿠마리가 있다고 한다.


네팔에는 쿠마리가 열 군데가 있는데 카트만두의 카트만두 쿠마리를 료 파탄 쿠마리 박타르쿠르의 쿠마리를 로얄 쿠마리라고 하고 지방에 있는 쿠마리를 로칼 쿠마리라고 한다 



쿠마리에 대해서 사전에서 빌려온 글로 시간이 있는 사람은 읽어 보시도록

 

네팔에서 살아 있는 여신으로 숭배되는 존재되는 쿠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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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리(Kumari)란 산스크리트어에서 ‘처녀’를 뜻하는 ‘카우마르야(Kaumarya)’에서 비롯된 말로 ‘처녀신’을 뜻한다. 네팔에서 티베트불교의 바즈라 데비(Vajradevi) 여신이나 힌두교의 두르가(Durga시바신의 아내로 여전사) 여신의 살아 있는 화신으로 숭배되는 존재로 쿠마리 데비(Kumari Devi)라고도 한다. 보통 초경 전의 어린 소녀가 초경을 할 때까지 역할을 맡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초경 이후에도 역할이 지속되기도 한다.


네팔의 쿠마리는 왕실쿠마리(Royal Kumari)와 각 지역에 존재하는 지방쿠마리(Local Kumari)로 나뉜다. 카트만두의 쿠마리사원(Kumari Ghar)에 거주하는 왕실쿠마리는 왕실의 수호신이자 국가의 운명을 알려주는 예언자로 숭배된다.

지방쿠마리는 바크타푸르(Bhaktapur)와 파탄(Patan) 등의 지역에 존재하는데, 지역마다 선출방법이나 신앙의 형태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네팔의 처녀신 숭배 역사는 기원전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쿠마리 숭배의 전통은 13세기에서 18세기 중엽까지 이 지역을 통치했던 말라 왕조(Malla Dynasty)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오늘날 네팔에 전해지는 여러 전설들은 그 기원을 말라 왕조의 마지막 왕인 자야 프라카시 말라(Jaya Prakash Malla, ?~1768)와 연관시키고 있다. 전설마다 세부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핵심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자야 프라카시 말라 왕이 두르가 여신의 화신인 탈레주(Taleju) 여신과 가깝게 지냈으나 금기를 어기는 바람에 여신이 떠났다. 여신은 떠나기 전, 나라가 다시 자신의 보호를 받기 원한다면 자신의 화신인 어린 소녀를 찾아 숭배하라고 명했고, 이때부터 쿠마리 숭배의 전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쿠마리의 선발 쿠마리는 초경 이전의 3~6세 소녀들 가운데에서 엄격한 기준에 맞추어 선발되는데, 그 과정은 티베트불교에서 살아 있는 부처로 숭배되는 달라이라마(Dalai Lama)나 카르마파(karmapa)의 선발 과정과도 유사하다. 우선 카투만두 인근에 거주하는 네와리 족(Newari) 가운데 석가모니와 같은 샤캬 족(Shakya) 출신이어야 한다. 몸에 상처나 병이 없어야 하며, 태어날 때의 천시(天時)가 나라나 국왕과 상성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32가지 기준에 따라 신체의 아름다움도 판별된다. 몸에 반점이 없어야 하고, 치아도 빠진 것이 없이 가지런해야 한다.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검어야 하고, 몸은 보리수와 같아야 한다.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나열된 물건들 가운데 전대 쿠마리의 물건을 찾게 해서 영적인 능력을 시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나 돼지, 양, 닭 등의 머리를 잘라 놓아둔 컴컴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하는데, 무서워서 울거나 소리를 내면 선발에서 탈락한다.


쿠마리의 생활과 역할쿠마리로 선발되면 가족과 떨어져 쿠마리사원에서 지내게 된다. 쿠마리는 붉은색 옷만 입으며 얼굴에도 붉게 화장을 한다. 그리고 1년에 몇 차례밖에 사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살아 있는 여신으로 대우를 받으므로 자신의 발로 땅을 딛지 않으며, 이동을 할 때에는 안겨서 옮겨진다.쿠마리는 살아 있는 여신으로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는다.

사람들은 쿠마리에게 축복을 받으면 병을 고치고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해마다 9월에 행해지는 인드라 자트라(Indra Jatra) 제의 때에 쿠마리는 가마를 타고 카트만두를 행진하면서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쿠마리는 예언자로도 여겨진다. 사람들은 쿠마리는 행동이 예언을 나타낸다고 여기는데, 예컨대 쿠마리가 울고불고 하거나 큰 소리로 웃는 것은 심각한 병이나 죽음이 닥친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며, 몸을 떠는 것은 투옥된다는 것을, 공물을 쥐면 재산을 잃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여긴다. 반면 쿠마리가 편안한 상태로 차분히 있으면 안심해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아동학대 논란쿠마리는 초경이 시작되면 자리에서 물러난다. 때로는 유치가 빠지거나 상처를 입어 피가 나는 경우에도 신성함이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한다. 새로운 쿠마리를 맞이하는 의식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도록 허용되는데, 퇴임한 쿠마리에게는 매달 일정금액의 지원금이 지급된다.

그러나 쿠마리였던 소녀들은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쿠마리였던 여자와 결혼하면 남편이 일찍 죽는다는 속설 때문에 결혼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네팔의 쿠마리 숭배 문화는 2004년 린지 애슈퍼드(Lindsay Ashford)가 《쿠마리, 살아 있는 여신(Kumari: The Living Goddess)》을 발표하면서 서구 세계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뒤 어린 나이에 사회에서 단절되어 생활하는 쿠마리에 대해 아동인권 침해라는 국제인권단체의 비난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네팔의 최고재판소는 2008년 아동인권에 관한 조약이 보장하는 권리를 쿠마리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할 근거는 역사적 문헌이나 종교적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다며 쿠마리의 학습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 뒤 쿠마리들도 학교를 다니거나 개인교습을 받게 되면서, 전보다는 생활에 대한 구속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권침해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축복을 받기 위해서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