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의 연장(延長)과 죄악(罪惡) 가중(加重)의 상관관계
인간들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종교와 인연을 지으면서 살아간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무조건적으로 종교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죄악을 지으면서 살게 된다.
인간은 태어나서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 거짓말이 선의의 거짓말이든 그렇지
않든 말과 동시에 거짓말도 같이 배운다. 이런 거짓말도 종교적인 차원에서 보면 죄를 짓는 것이 된다.
그리고 동생이 태어나면 형이나 언니는 동생에 대해서 질투를 하게 되는데 그 정도가 살의(殺意)를 느낄
정도라고 한다.
구약성서 창세기 4장 8절에 형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들판에서 돌로 쳐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
이 일어나는데 이는 동생을 질투하여 시기하였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살인의 동기는 각각 자신이 수확한 것들을 하나님에게 제물로 바쳤는데 형인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고
동생인 아벨의 제물만 받았기 때문이다.
가인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곡식을 바쳤고 아벨은 목축을 했기 때문에 양을 바쳤는데 하나님이 곡식
의 제물은 받아들이지 않고 양의 제물만 받았다.
실지로 있었던 일도 아니었을 것이 분명한 이 내용을 두고 그 이유에 대해서 구구(區區)한 설명들을 하
지만 아담이 최초의 인간이라고 한다면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 되는 셈이다.
전세계적으로 인류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종교들 중에서 영향력이 큰 순서대로 나열을 하면 기독교
(가톨릭, 개신교)가 25억 정도로 78억 중의32%가 되고 이슬람이 18억으로 23% 힌두교가 10억으로
13%, 불교가 5억명으로 6% 정도가 된다.
모든 종교들은 인간들에게 죄를 짓지 말고 살기를 가르치는데 사람이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죄로 규정을 한다.
그리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종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가짓수가 기억을 할 수 없을 정도
로 많으며, 불교 같은 경우에 죄의 가짓수만 해도 만 가지가 넘는다.
어느 종교나 죄가 있으면 죽어서 천국에 가지를 못하거나 윤회를 하더라도 불리(不利)한 윤회를 할 수밖
에 없다고 가르치는데, 종교에서 가르치는 말대로 할 것 같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게 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를 짓기 시작하고 살아가면서 그 죄가 쌓이게 되며, 죽을 때는 소위 산더미보다 더
높은 죄가 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말로 유명한 고승(高僧) 성철 스
님도 입적을 할 때 자신이 생전에 쌓은 죄가 수미산(須彌山)보다 높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렇게 생각해
서인지도 모른다.
매일 수도(修道)를 하시는 고승이 그런 말을 한다면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은 그
죄가 에베레스트산 몇 개는 쌓아 놓고 죽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인간이 살아가는 날이 길면 길수록 쌓이는 죄가 많다면 태어나자마자 죽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될
것이고, 가장 좋은 것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일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살면서 지은 죄가 쌓이는 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회개라는 방법을 이용하여 교회에 와서
회개를 하거나,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면 모든 죄가 사라진다고 간주를 하여 죄가 쌓이는 문제를 해결
한다.
회개를 하고 죄를 사하여 죄가 없어진 다음 또 살아가면서 짓는 죄는 다음 일요일에 가서 또 회개나 고
해성사를 하고...
이렇게 반복을 하면서 죄가 없어졌다고 간주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이 종교에서 규정한 죄에 짓눌려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은 절대 태어나서도 안되고 태어난다고 해도 일찍 죽어야 하고, 일찍 죽
으면 일찍 죽을수록 그래도 천국에 갈 가능성이 많아지게 되며,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천국이 아닌 지
옥에 갈 확률이 높아진다.
정말 천국이나 지옥이 있어서 티끌 만한 죄가 있어도 천국을 가지 못한다면 오래 사는 것보다 티끌 같은
죄를 짓기 전에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부모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자녀가 태어나서 죄를 짓기 전에
일찍 죽는 것을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죄가 있어서 천국을 가지 못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살만큼 살면서 이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과 종교의 교리는 완전히 모순이 되게 되는데 정말 현명하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
라면, 일찍 죽는 것을 택하던가 아니면 인간의 삶과 맞지 않는 종교를 버리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다.
그런 결단력이 없다면 그는 종교인이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자신의 종교의 교리를 믿지 않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종교에서 말하는대로 죄가 있으면 천국을 가지 못하고 지옥을 간다고 믿는다면 자식들이나 주변 사람들
에게 오래오래 살라고 축원하는 것은 죄 많이 짓고 지옥을 가라고 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의 자식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기 곁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지 일찍 죽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종교에서 규정하는 죄가 사실 터무니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생명을 먹이로 살아가게 되어 있고 생존경쟁을 하도록 되
어 있다. 신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서로가 서로에게 생존을 의지하도록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어떤 존
재도 그 사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신(神)은 잔인(?)하게도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종(種)끼리 경쟁을 하도록 하였고 같은 종 안에서
도 개체(個體)끼리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생존경쟁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심지어는 경쟁상대의 목숨까지도 빼앗아야 하는 경
우도 생기게 되는데 이런 경쟁이 공정(公正)하거나 공평(公平)하거나 선의(善意)만으로 이루어지지 않
는다.
이 과정에서 시기(猜忌)와 질투(嫉妬), 권모(權謀), 술수(術手), 등이 등장하게 되며 이는 인간 사회뿐만
아니라 동물계나 식물계에서도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죄가 아니고 생존에 대한 본능일 뿐이다.
이런 본능을 죄로 규정해 버렸으니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지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동생이 태어나면 질투를 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던 부모의 사랑이 동생에게 가 버리면 자신은 살아남
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곧 동생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며 동생이 자신의 생존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면 부모와 같이 동생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부모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동생이 부모의 사랑을 다 빼앗아 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려주게 되면 질투를 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종교에서 말하는 죄라는 것들의 대부분은 생존본능의 작용으로 죄로 규정할 성격이 아닌 것들이다. 따
라서 이런 것들 때문에 천국을 가지 못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회개의 거리도 되지 않는다.
종교에서 규정하는 죄와 오래 사는 것과는 사실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수명과 관련하여 언급한 것은, 종
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에서 규정하는 죄를 정말로 죄로 생각하고 그 죄의 결과에 대해서 종교가 말하
는대로 믿으면서 실제적인 삶에서는 전혀 믿음과 반대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본인이 종교를 가지고 있고 그 종교의 교리를 정말 그대로 믿는다면 오래 사는 것과 죄의 상관관계를 한
번 생각해 보시도록....
그리고 질투가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에 신이 부여한 본능인지 종교에서 규정한대로 죄인지를 한 번 생
각해 보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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