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을 위한 글

나이가 들어도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자연인이다'의 행복

뿅망치 2022. 9. 30. 19:18

60~80이 된 사람들에게 당신은 행복한가 하고 묻는다면 자신이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일단 나이가 들게 되면 건강도 젊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부실해지고 그러다가 보니 정신적으로도 위축되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 오래 살다가 보니 생활전선에서 또는 인간관계에서 우여곡절도 많이 겪으면서 상처의 흔적도 많이 쌓여져 있게

되는 나이가 된다.

 

그러나 건강도 양호하고 맨탈이 강건하여 보통사람들이 받는 상처를 받지 않고 현재의 외적 환경이 행복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

건을 갖춘 사람들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일 것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그 나이에 걸맞는 건강과 정신상태를 가

지고 살아갈 것이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추상적인 단어이고 행복의 상태도 주관적이다가 보니 현재 자신의 건강이 안 좋아서 고통속에서 살고 있거

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폐지를 줍거나, 자식들과 척(隻)을 지고 살더라도 본인이 현재의 상태를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행복이 아무리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만들어 놓은 행복의 기준이

라는 것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행복은 정상적인 행복이 되지 못한다.

 

보통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행복의 대체적인 기준은 질병으로 인한 내적 생명의 위협과 전쟁 등과 같은 외적 것으로부터의

생명의 위협이 있는 상태가 아니어야 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가 아니어서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경제력이 있어야 할 것이며, 가족 간에 가족으로서 서로 사랑하거나 최소한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상태는 아

니어야 행복할 수 있는 상태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행복하다고 한다면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도 그 사람

이 행복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수긍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일단 행복할 수 있는 내적 외적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라야 가능한 것이며, 그렇지 않

은 상태에서 본인이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건들임에도 불구하고 결핍된 조건들을 간과하거나 그것을 초월한

상태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 이런 행복을 위한 조건들이 점점 더 결핍되어져 가기 때문에 행복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지극히 자

연적인 과정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인해서 행복과는 더 거리가 멀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행복한 상태의 반대 개념은 행복하지 않은 상태와 불행한 상태가 있을 것인데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불행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부족한 부분은 행복하지 않게 하는 것이지 불행하게까지 하는 것은 아니니...

이런 개념만 이해를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행복해 질 수 있지는 않을지..... 그렇지만 행복의 결핍감을 느끼지 않기 위

해서는 행복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더 행복해지거나 불행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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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 그 중에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 많이 보는 TV채널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라고 한다. 그런 프로를 많이 본다는 것

은 단순한 호기심보다는 본인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이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TV에 나오는 자연인들은 그 생활에서 행복함을 느끼면서 살아간다고 함으로 본인도 자신이 행복한 줄을 알고 있는 것

이고 그 프로를 보는 사람들도 그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 곳에서 살 수도 없거니와 위의 행복의 조건을 보더라도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삶이 보통

의 사람들이 느끼는 평범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이라는 것을 이해를 하지 못해서 나오는 오해이다.

 

그러나 그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행복이나 TV를 보면서 행복하다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적인 행복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복이다. 이들의 삶은 수행자(修行者)들의 삶과 비슷한 삶으로 구태여 이런 생활을 하지 않

더라도 일상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행복이지만 구태여 그런 생활을 한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는 행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당사자는 자의적(恣意的)으로 그런 삶을 택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타의적인 조건 때문에 그런 삶을 강요받은 것이

며, 강요받은 삶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그 사회적 조직 안에서 살아가도록 되어 있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런데 그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혼자의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고 그들이 느끼는 행복도 사실은 온전한 행복이 될 수 없는 것으로 그런 생활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부러워 해서도 안되

는 것이다.

그런 삶이 부럽다면 가족이나 사회 안에서 자신의 삶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니 그들이 왜 부러운지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어떤 종교나 어떤 철학에서 어떤 흰소리를 하더라도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태어나는 것도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고, 살아가는 것도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행복의 상태나 행복의 위치 등을 상정(想定)해 놓고 그 상태가 되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상태를 만

들기 위해서, 또는 그 상태가 만들어지면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만 그런 상태는 도달하기도 어렵고 설령 도달

한다고 하더라도 그 상태는 금방 깨져 버리고 만다.

기독교에서는 행복의 상태를 천국이라는 것에 비유를 하지만 그런 천국은 있을 수도 없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천국은

그들이 말하는 지옥만도 못할 것이다. 영원히 맛이 있는 것을 먹고 마시며 영원히 춤추고 노래를 하는 곳이 천국이라면 얼마나

지겹겠는가....

차라리 이 세상처럼 지지고 볶고 하면서 사는 다이나믹한 지옥이 천국보다 나을 것이며 천국의 실상을 안다면 그 천국은 그리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결국 기독교의 이런 천국의 개념은 행복은 고사하고 굶어 죽는 것을 면하는 것이 우선인 시대에 만들어진 개념으로 오늘날 현

대인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개념이다.

오늘날 같으면 천국을 언제라도 푸른 잔디에서 골프를 칠 수 있고, 다양한 오락을 언제라도 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음식과 미남

미녀들은 수시로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곳일 것이다.

 

행복한 곳으로의 천국의 개념은 행복하기 위한 외적인 조건으로 이런 조건들은 실생활에서 살아가면서 갖추기는 어려운 것이

고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금방 변해 버린다.

그러므로 외적인 조건으로서의 행복을 얻는다는 것은 한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하면 그런 깨질 수 있는 행복이 아닌 근

원적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사람이 일찍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사람이 고타마 싯다르타 곧, 석가모니이다.

 

그는 외적으로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었지만, 그런 행복은 시간이 지나면 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영

원히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구도의 길을 나서서 6년간의 수도 끝에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카빌라 왕국의 왕자로 제1의 왕위 계승자였고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았으며 외적으로는 행복할 조건을 갖추었으나 이런

행복은 사라지는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조건들을 버리고 수도의 길을 떠나 버렸다.

 

석가모니는 오늘날 우리가 TV에서 보는 ‘나는 자연인이다’의 생활을 스스로 선택하여 구도의 길을 간 것이니 외적으로만 보면

‘나는 자연인이이다’의 삶도 석가의 삶과 비슷하다. 그러나 석가는 인간의 깨어지지 않는 행복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들어

간 것이고 자연인은 보통사람들과 어울려서는 행복할 수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들어간 것으로 목적도

다르다. 만약 자연인들이 석가처럼 인간의 삶의 목적이 행복하기 위해서인지 그리고 그 행복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

하는 기간이라면 박수를 받아 마땅하나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생활이라면 그 생활은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석가는 그 기간을 통해서 자신이 깨닫고 난 뒤에는 그 깨달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그곳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세상으로 나왔지만, 자연인들은 더 늙거나 다른 조건으로 해서 생활이 불가능해지면 세상 밖으로 타의적으로 나오게 될 것이니

그들이 그곳에서 느끼는 행복은 잘못된 행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비정상적인 행복인 셈이다.

 

만약 그들이 행복이 어떤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지속 되는지를 안다면 그곳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정상적인 행복이 아니

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과 비슷한 행복으로 북한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과 부탄 사람들이나 방글라데시 사

람들이 느끼는 행복, 그리고 비현실적인 종교로 인해 무지한 상태가 되어 상식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 종교인들...무슬림이나

기독교인들이 느끼는 행복들이 이런 행복들인 셈이다.

 

이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연인들이 느낀다는 행복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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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북한사람들이 느끼는 행복

 

영국인, 프랑스인, 북한 사람이 함께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영국인: “겨울밤 집에서 양털 바지를 입고 벽난로 앞에 앉아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

프랑스인: “너희 영국인들은 너무 진부해. 금발 미녀와 함께 지중해로 휴가 갔 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냥 정리해 버리는 것이 가 

           장 행복한 것이 지!”

북한인: “한 밤중에 누군가가 노크를 해서 문을 열어보니 ‘강성미, 너 체포 됐어!’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강성미는 옆집 사람이 

          거든? 우리는 이 때가 가장 행복해!”

 

미술관에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들고 있는) 그림 한 폭이 있다.

 

영국인이 말한다. “이들은 영국 사람이다. 남자는 맛있는 것이 있으면 여자와 함께 먹으려고 하니까.”

프랑스인이 말한다. “이들은 프랑스 사람이다. 누드로 산보하고 있으니까.”

 

북한인이 말한다. “이들은 조선 사람이다. 옷도 없고 먹을 것도 적은데, 자 신들은 천당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