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을 위한 글

96세 할아버지가 하나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고....

뿅망치 2022. 10. 3. 18:03

며칠 전 집사람 후배의 부친이 96세에 돌아가셔서 집사람이 문상을 다녀왔었다. 밤새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후배에서 다행이다라고 했다는 그분이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문상 다녀온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가신 분이 하나님에게 편지를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분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편지를 썼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편지의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중요한 대목은 나를 빨리 좀 데리고 가서 천국에서 살게 해 달라는 편지였다고 한다. 자녀들이 집안을 정리하다가 발견하였다고 하며 상을 마치고 돌아온 집사람의 후배가 아버지의 편지 이야기를 하므로서 점심을 먹다가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저번 글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딸만 여섯이 있었는데 다 출가를 하고 부인이 먼저 돌아가시고 혼자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얼마나 혼자 사신지는 모르지만 자녀 중의 한 사람이 주변에 살아서 보살펴는 드렸다고 하지만 혼자 사는 것이 괴롭거나 외롭거나 어쨌든 힘이 들었을 것이니 그런 편지를 썼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물론 교회를 다닌 분이기 때문에 그런 편지를 썼겠지만 그런 편지를 쓰면 정말로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런 편지를 썼는지...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을 것이니 편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썼을 것이다.

어린아이 같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96세가 된 분(언제 썼는지 모르니...)이 이런 편지를 쓴다는 것이 순수해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중고등학생이 산타크로스를 믿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생각을 공유하면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양분으로 삼거나 심지어는 길잡이를 하기도 한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앞서서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 심지어는 전 시대를 살고 간 사람들의 경험이나 생각들이다. 그런 것들이 나의 가치관이나 도덕관이 되기고 하고 때로는 내가 몸 담고 있는 사회의 가치관이나 도덕관이 되기도 하며 더 나아가서는 국가 세계의 가치관이나 도덕관이 되기도 한다.

돌아가신 그 분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며 신이 자신의 태어남가 살아가는 것 또는 죽음에까지 관여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런 편지(기도)를 썼을 것이다. 그분의 가치관이나 생명에 대한 생각들은 교회를 통해서 학습되고 인식되었을 것이며 그런 내용들의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믿어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분들은 사실 여부 -신이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의 대한 것, 신이 자신의 삶에 개입을 하는지 안하는지애 대한 것, 더 나아가서는 신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는지 안하는지에 대한 것- 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신은 존재하며, 신은 자신의 삶에 개입을 하며, 그리고 인간의 역사에도 개입을 한다고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편지를 썼다는 그 내용을 듣는 제 3 자의 입장에서는 그 분의 행위가 합당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신이 없다면 그런 행위는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며, 설령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이나 인간의 역사에 개입을 하지 않는다면 또한 무의미 할 것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 특히 서양의 종교 곧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 기독교(천주교,개신교)나 이슬람교,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신이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삶에도 직접 개입을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서양의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신이 개개인의 삶에 개입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의 역사에도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지구상에 인구가 80억을 육박하고 있는데 절반인 40억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절반인 40억 정도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만약 신이 나의 삶에 직접 개입을 하는 것이 맞다면 신을 부정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잘못 살아가고 있는 셈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신이 나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인생을 헛된 곳에 낭비를 하면서 살아가는 셈이 된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가도 그만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절반은 그렇게 믿고 살아가고 절반은 그렇지 않다고 믿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은 무언가는 문제가 있는 삶이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곳에 포커스를 맞추고 사는 사람과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포커스는 아주 많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죽었을 때 반드시 한 사람은 낭패를 보게 되어 있는 셈이다. 죽어서 다른 세상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다른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황당하면서 낭패감을 느끼겠는가.... 반대로 죽어서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고 살았는데 없다면 또한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죽어서 모든 것이 땡이 되었기 때문에 억울함을 느끼지도 못하겠지만....

 

그러므로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을 해 봐야 하는 것이 맞지만 이런 고민이나 생각조차도 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이런 일은 마지 자신과 상관이 없는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을 좋아해서 남미나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인도 등 세계의 여러 곳을 많이 다녔었고 여행을 가면 경치들도 보지만 그중에 가장 중점을 두고 보는 것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중동 인도 등 사람이 살고 있는 어떤 곳이든 종교가 그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데 종교의 교리 현대의 맞지 않고 고루할수록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불행한 것을 보게 되는데 세상은 변하고 있는도 종교는 변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현실과 맞지 않는 종교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게 되며 선진화 문명화가 될수록 종교는 고사(枯死)해 갈 수밖에 없게 되고, 그 결과 역사적으로 유명한 종교건축물들을 국가에서 세금으로 관리를 하거나 심지어는 상업용 건물로 팔려 나가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이 인간의 태어남과 살아감 그리고 죽음에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가본 아프리카를 예로 들어 입증을 한다. 그리고 나의 입증을 듣는 사람들은 자신의 태어남과 죽음에 신이 개입을 한다는 사람이다.

 

아프리카라는 대륙은 참으로 불쌍한 나라로 교육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이며 부족들의 수도 가장 많은 나라이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도 가장 열악한 곳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에이즈도 가장 창궐한 곳이며 어떤 나라들은 국민들의 20% 이상이 감염된 나라들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는 아이들이 태어나면 성인까지 될 확률이 가장 낮은 나라이다. 어린아이들이 태어나면 기아로 굶어죽고, 병이 들어 죽으며, 부족들간에 전쟁으로 죽어간다. 제일 취약한 생명이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제일 먼저 희생이 되는 셈이다.

 

종교인들의 주장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신의 축복 속에 태어나며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열악한 대륙인 아프리카에서는 신생아들의 질병과 기아로 10% 정도가 죽는다고 하는데, 만약 신이 이렇게 죽을 것을 알면서도 태어나게 한다면 인간이 태어나는 목적과 맞지 않게 된다.

우리가 TV를 틀면 기아와 질병에 죽어가는 어린이들에게 후원과 기부를 부탁하는 광고를 보게 되는데, 나는 그런 광고를 볼 때마다 인간이 신의 축복 속에 태어난다는 주장하는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그 광고를 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신의 축복 속에 태어났다는 새 생명이 성장해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것을 신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상황을 지켜 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만약 신이 인간의 탄생에 개입을 했다면 이런 열악한 곳에 태어나게 해서 죽어가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만약 신이 인간을 태어나게 했다고 믿으면서도 이런 광고를 보고 아무런 생각도 없고 회의감이 들지 않는다면 그는 무뇌인(無腦人)으로 사는 사람이다.

 

사람이 태어남과 죽음에 신이 개입을 한다고 믿으면서 살아가거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거나 간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도 하고 생각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면 유익할 것은 분명할 것이다.

 

고민을 하다가 보면 편지를 쓰는 삶, 곧 신이 나의 삶과 죽음에 개입을 한다는 것을 믿거나 그렇지 않다고 믿거나 둘 중의 하나를 확실하게 선택하게 되지 않겠는가....

 

 

티베트의 고승(高僧)중에 인도에서 티베트로 불교를 전파한 파드마 삼바바(蓮華生上師)’라는 분이 있는데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를 쓰신 분이다.

(참고로 티베트 사자의 서는 사람이 죽고 난 다음 49일 동안 환생할 때까지의 과정을 적어 놓은 글이다.)

 

이 파드마 삼바바가 한 말 중의 가슴을 뜨끔하게 만드는 한 마디의 말이 있는데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해서야 비로소 준비를 시작한다.

죽음이 닥치면 그들은 회한으로 인해 날뛰게 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