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클대회라는 단어가 젊은이들에게는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단어겠지만 나이가 70줄에 들어선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단어일 것이다.
특히 시골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콩쿠르(concours)라는 단어로 사전적 의미는 ‘음악, 미술, 영화 등의 분야에서 실력을 겨루기 위해 여는 경연 대
회’라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도 콩클대회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치루어지고 있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콩클 대회
는 우리나라가 산업화가 되기 전인 60년대에 시골에서 봄이나 가을에 도시로 나가지 못한 젊은이들이 젊음을 발
산했던 콩클대회이다.
그 때는 TV는 말할 것도 없고 라디오도 동네에 하나 둘 있을까 말까 한 정도로 문화생활이라는 것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던 시절이었다. 어쩌다가 냇가의 모래사장이나 학교에 가설극장이라도 들어오면 그때가 소위 최첨단 문
화를 접하는 때였었다.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마을로 들어오는 신작로에부터 확성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그
멘트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OO면민 여러분 오늘도 어쩌구 저쩌구~~ ’
그 때부터 마음이 설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설극장에서 영화상영을 하려면 휘발유 발전기를 돌리
고 불을 밝히기 시작하면 그렇게 밝은 전깃불도 처음보는터라 그 자체도 구경거리였었다.
돈이 없어서 천막사이로 몰래 들어가다가 뒷덜미를 집히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해봤었고 영
화가 절반 정도 지나면 천막을 걷어서 돈을 내지 않아도 볼 수 있게 했었다.
콩클대회 이야기를 하려다가 보니 가설극장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는데 그 추억이 콩클대회와 같이 연결되어서
이다.
콩클대회의 추억이야기를 왜 하게 되었는가 하면 아는 누님이 콩클대회에서 드럼치던 그 총각에게 한눈에 반했었
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서도 잊을 수가 없었다면서 50이 넘어가면서까지 잊을 수가 없었는데 50이 지
나고 나기 잊을 수가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서 중매로 결혼하면서 신랑에게 자기는 50이 되면 그때 짝사랑하는 그 사람을 찾아가겠다고 선언을 했
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누님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이 엊그제이다.
시골에서 콩클대회가 한참 유행할 때가 내가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 때까지였을 것이니 50년대 말에서 60년대
말까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콩클대회는 봄에 했던 것 같은데 다른 계절보다 농촌이 좀 한가하기도 하고 춘심(春心)들이 봄에 더 발동하기 때
문이었을 것이다.
보통 콩클대회를 하면 동네 변두리나 냇가에 천막을 치고 엠프와 스피카를 설치하고 3~4일 정도 콩클대회를 하게
되는데 주로 상품은 살림 도구로 플라스틱 그릇이나 양은 냄비 그리고 양은 솥 등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콩
클대회 무대라고 해 봤자 동네 껄렁패 사회자와 외지에서 모셔온 기타리스트 정도로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무대였
었다.
노래를 하려는 사람은 돈을 내고 표를 사서 노래를 하였는데 그 사람들 가운데서 노래를 제일 잘 했던 사람에게
상을 주곤 했었다. 워낙 출중하게 잘 하지 않으면 대부분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상을 주곤 했었는데 관중들도 누
구가 일등인지 아닌지를 대충 눈치를 채곤 했었다.
그 시절에는 그런 행사가 처녀 총각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가 보니 콩클대회가 끝나면 무수한 이야깃거리나
남아지게 되는데 그 기회를 틈타 다른 동네 처녀들이나 잣총각들이 오게 되면 자기 동네의 처녀들은 못 건드리게
하고 다른 동네에서 온 처녀들에게는 눈독을 들이게 되니 필연적으로 싸움박질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인근 고을에 소문난 퀸카가 콩클대회에 참가를 하거나 놀러 오게 되면 그 퀸카를 두고 청년들끼리 결투가
벌어지기도 했고 또 주변에 누가 태권도(그 때는 당수라고 했음) 몇 단이라는 소문이 나면 실력을 가늠해 보느라
고 도전하기도 해서 콩클대회가 이루어지는 와중 또 다른 곳에서는 싸움이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인근의 바람둥이들이 순진한 시골 처녀들을 꼬여서 데리고 놀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서 연애로 이어져서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하룻밤으로 끝나고 말았다.
콩클대회가 끝나고 나면 그 흔적들이 보리밭이나 숲속 같은 곳에 남기도 했는데 보릿골에 사람이 들어가 누울 정
도로 보리가 쓰러져 있는 곳들이 가끔 발견되기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동네 아주머니들의 입방아에 보리밭이 오르내리면서 동네 처녀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었고 동네 처
녀들의 행실에 대해서 누가 어떤지를 알다가 보니 좀 설치는 처녀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누명을 쓰는 경우도 있
었다.
그리고 보리밭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돌면 자기들끼리도 서로 의심을 하고는 했었는데 아마도 OO 이 그년일 것
이라고 그년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이모에게 직접 듣기도 했었다.
콩클대회가 끝나면 보리밭 사건도 있지만 누가 누구에게 맞아서 눈이 밤탱이가 되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실지로
눈이 밤탱이가 되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달걀로 문지르는 동네 형을 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콩클대회가 끝나면 인근에 누가 노래를 잘하는지도 알려지게 되지만 누가 싸움을 잘 하는지도 알려지게
되어서 서열들이 매겨지기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형이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당수도장을 다녀서 2단인가 3단인가가 되었었다는데, 나는
모르지만 가끔 그런 곳에서 싸움을 하였는지 중학교 다닐 때 등교를 하면서 네 형이 누구하고 싸움을 했는데 실력
이 모자라서 두들겨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는데 그 형은 이미 10여 년 전에 고인이 되었으니....
짝사랑했다던 드럼 치는 총각(그때 드럼이 있었나???)을 못 잊어서 결혼하고 나서도 신랑에게 50이 넘으면 첫사
랑 찾아가겠다고 했다는 누님 이야기를 듣고 어렸을 때의 콩클 대회가 생각이 나서 기억이 나는 것들을 적어 보았
었다.
그런데 그 누님이 50이 넘어서 짝사랑이자 첫사랑인 그 사람을 찾아 보았더니 죽어 버렸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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