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비슈케크로 들어오던 날인 8.7일 전직 대통령이었던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를 체포하기 위해서 현직 대통령인 소론바이
제엔베코프가 특수 부대원을 동원하였으나, 실패하여 특수부대원이 인질로 잡혔다고 하여 정정이 불안하기 때문에 우리는 비슈케
크 관광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가이드 말로는 두 대통령이 서로 화해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여 시내 관광을 하게 되었는데 가이드에게 이번 사
건에 대해서 물어 보았더니 전직 대통령의 입장에서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는 입장에서 설명을 한다.
나중에 알아 보았더니 전직 대통령과 같이 키르키스스탄의 북부지방 사람이었다.
우리가 시내관광을 간단하게 하고 들어간 그날 저녁 결국 전직 대통령은 지지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택에서 특수부대원들에
게 체포되었다고 한다.
현직 대통령인 제인베코프는 전직 대통령인 아탐바에프에 의해서 당선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우호적이었으나 갈등이 생기면서 전
직대통령을 부패혐의로 체포하기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자기 손으로 대통령을 만들었더라도 살아 있는 권력과 대립을 하게 되면 그 결과는 이렇게 되는 것이 세상이치일 것이다.
알라 아르차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
국립공원을 나오면 시내로 들어갈 때 주변 산들에는 나무들이 없다.
시내로 들어오면서.... 가로수가 잘 심어져 있다.
이런 길들은 구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거리들이라고 한다.
비슈케크로 들어오는 길의 가로수 길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으로 관광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어서 오크파크 주변의 건물들과 공원을 구경한다....
개별적으로 남아서 시내관광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정정도 불안한데 그렇게 할 것까지는 없다.
레일이 없는 전차? 전기버스?
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거리
구글지도에는 Ministerstvo Kul'tury, Informatsii, Sporta I Molodezhnoy Politiki Kr라고 되어 있는 건물이다.
역사 박물관 앞에 내려서 회랑을 통과하여 오크 파크 쪽으로 간다.
오크 파크...비슈케크는 구소련 시절 계획도시로 만들어진 도시로 이공원도 그 때 조정된 것이다.
우리가 비슈케크 시내 관광의 중심지인 오크 파크 주변에 도착한 시간이 6시 반으로 아직 해가 남기는 했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서
주변에 있는 건물들과 공원의 조각들을 보는 것으로 시내 관광은 끝이 났는데 이 중에서 마나스라는 인물의 동상과 르만드잔 다트
카의 석상이 인상적이다.
알라토 광장으로 가는 길에..
쿠르만잔 다트카 상을 지나간다.
쿠르만잔 다트카(Kurmanjan Datka 1811-1907)라는 여성으로 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슬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
라의 50솜 지폐에 얼굴이 그려져 있다.
쿠르만잔의 초상화가 그려진 화폐
장군이나 지도자를 의미하는 '다트카'라는 명칭을 가진 쿠르만잔은 알타이 계곡의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을 약 30년간 통치했다고
하며, 쿠르만잔은 코간트 카간국의 재상인 남편이 사망하고 난 후, 총을 잘 쏘는 청년들을 모집하여 자국 국민을 러시아로부터 지
켜냈다고 한다.
쿠르만잔은 키르기즈 알라이의 지도자로 키르기스스탄의 러시아의 연방 편입에 찬성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키르기스탄인들이
소련으로부터 희생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어머니와 생각이 달라서 러시아에 합병에 항거를 하다가 러시아의 군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가 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어서 쿠르만잔의 부대들이 아들을 감옥에서 구해 올 것을 건의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여러분을 믿어요. 여러분이 하룻밤에 그 감옥에서 내 아들을 구하고 올 수 있는 것도 알아요 다만, 내 아들이 사형되면 한 어머
니가 울 것이고, 여러분이 이러한 작전을 하면 많은 어머니들이 울 것입니다.
나는 다른 어머니들을 울게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안 됩니다!"
쿠르만잔은 이슬람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어릴적 부모가 정해준 혼처에 대해서 파혼을 선언하고 자신이 선택한 알림벡 다트카와 결
혼을 할 정도로 깨어있는 여성이었다고 한다.
쿠르만잔은 키르기스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난 뒤부터 새롭게 부각이 된 사람으로 오크 파크에 있는 조각상은 2004년
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쿠르만잔의 조각상도 마나스처럼 키르기스스탄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불안한 상태이어서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공원에 있는 조각상들
젊은이들이 탁구도 치고...이곳은 이슬람국가지만 파키스탄과 같이 엄격주의가 아닌 나라이다.
야외석상 박물관
조각상들...
공원을 지나가면서..
놀러 나온 가족들이 음료수를 사먹고 있는데...사람이 너무 없다.
알라토 광장쪽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도 낮에는 정말 더운 곳이다.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공원
분수대 쪽에는 사람이 더러 보인다.
Aidarbekov Imanaly(아이다베르코프 아마날리)...스탈린에 의해 민족주의자라는 처형당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건너펀 건물...Ministerstvo Kul'tury, Informatsii, Sporta I Molodezhnoy Politiki Kr라고 구글에 나오는데 해석이 불가능하다.
마나스 기마상
정면에서 본 미나스 기마상
마나스(Manas)는 키르기스인의 40개의 부족을 규합하여 8세기 경 이곳을 지배하던 위구르 족을 몰아낸 전설적인 인물로 키르기
스라는 국가명도 나마스가 이끌었던 40개의 부족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마스라는 뜻은 키르기스스탄의 영웅 대서사시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 대서사지의 주인공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하며 나마스가 실
존인물은 아니지만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인물로 여러 곳에 나마스 기마상 동상이
있고 비슈케크의 공항도 나마스의 공항이다.
우리나라의 단군과 이순신을 합친 것과 같은 위상인 같은 나마스의 동상...이곳은 비슈케크의 가장 상징적인 알라또 광장으로 본
래 이곳에는 레닌 동상이 있었는데 소련으로부터 해방이 되면서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가 2011년에 나마스 동상이 설치 되었다고
한다.
알라 토 광장
역사 박물관
국기 게양대
부동자세로 서 있는 군인들2010년 폭동이 일어나서 총알이 날아왔을 때도 그대로 서 있었다고 한다.
판필로크 공원(Panfilov Park) 쪽으로 가는 길...1941-1942년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침공을 저지하는데 큰 공을 세운 알마아타 28
인 용사의 사단장이었던 판필로프의 이름을 따서 소련시절에 만든 공원이다.
스토리가 있는 보드인데...글자를 몰라서 알 수가 없다.
1974년에 만들어졌는데 소련연방에 통합된 100주년 기념비로서 대통령궁 옆에 위치하고 있는 28m의 높이의 두개의 날개를 상
징하는 콘크리트 상징물로서 키르기즈와 러시아의 깨지지 않는 우정을 상징하며, 전면에 있는 두명의 여성은 각각 키르기즈와 러
시아 어머니를 상징하며,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대통령궁 바로 옆에 있는 흰 돌과 검은 돌로 된 추모비(위령비).. 두 개의 돌은 빛과 어둠을 상징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검은 돌을
미는 것은 어둠을 밀어내는 것을 상징하고 있으며 어둠을 밀어내면 빛이 온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 위령비는 두개의 의미가 있는데 첫번째는 2002년 4월 시위대에게 아카에브대통령의 명으로 발포하여 6명이 죽고 50여명이 총
상을 당한 사람들, 두번째는 2010년4월7일, 시위대에 발포하여 86명이 죽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하였는데 자유를 위해 희생당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하여 추모비라고 한다.
어둠을 밀어 내는 사람들의 얼굴이 고통스럽기도 하고 비장하기도 하다.
더 구경을 할 것인가 그냥 갈 것인가를 의논하고 ...더 구경을 할 사람은 개별적으로 남고 그냥 갈 사람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간다.
공원과 광장을 간단하게 구경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밖에서 저녁을 사먹으려고 했는데 전직 대통령의 체포 사건으로 인해서 식
당이나 슈퍼 등이 일찍 문을 닫아 버렸다.
우리 호텔 앞에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국수집이 있는데 여기도 문을 닫아서 숙소로 들어오는데 일행을 만났더니 우리나라의 분식
집 같은 곳이 있어서 라면을 판다고 한다.
국수집 옆집 옆집인 그곳을 찾아 갔더니 청소년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라면과 콜라를 마시고 있고 나는 라면을 시키고 기다리고 있
는데 외국인이라고 관심을 가져서 대화를 시도했으나 영어가 통하지 않아서 대화가 되지 않지만 케이 팝과 가수들을 좋아한다는
의미는 알아 들을 수 있었다.
2018년도에 아프리카를 갔을 때 그곳의 꼬맹이들이 강남스타일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었던 기억이 나면서, 전 세
계의 젊은이들이 케이 팝을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
대통령궁이 보인다.
우리가 묵었던 루루호텔....호텔은 미리 정해지지만 갑자기 변경되기도 하는데 당초 예정되었던 호텔보다 더 좋은 호텔이라고 가이드가 말하는데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우즈베키스탄의 타슈겐트에서도 그랬었다.
호텔 옆에 있는 국수집...늦어서 문을 닫았다.
구글에서 보니 메뉴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앞에 있는 아파트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일몰 풍경...저녁에도 얼마나 더운지 빨래를 밖에 널어 놓으면 금방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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