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래 사는 것이 후회스러울 때가 올 것이다.
누가 노후를 보살펴 주나?
인간은 누구나 노쇠하면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그 보살피는 자가 궁극적으로는 가족이나 국가가 되겠지만 아직은 실질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가족이 최종
적으로 책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은 가족이라는 관계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해 가는 과도기의 시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자식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세대가 그래도 아직은 많이 있지만, 이 시대가 조금
만 지나면, 아니 10 년이 채 지나가기 전에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부모를 모시고자 하는 자녀들의 마음이 희박해 질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주위 환경이 부모를 모실 수 있게 허
락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여건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금의 30대, 40대, 50대가 10 년 뒤에는 경제적인 상황이나 사회적인 상황이 어떻게 변해져 있을지는 아무
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되리라는 생각은 할 수 없다.
우리가 추측해 보건대 경제적인 여건이나 사회적인 상황이 지금보다는 더 나빠져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직장에 의지하여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데 그 직장이 가장 먼저 불안정
해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사회의 출발을 비극적으로 시작한다.
아니 비극적인 출발 자체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가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미 도래하여 수많은 아니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직장을
잡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백수로 전락을 하고 있지만, 그 상황은 세월이 가더라도 앞으로 좋아질 가망성이
없다.
앞으로의 세상은 능력 있는 소수가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고(일자리까지) 그 소수의 부를 분배하여 다수가 살
아가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도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하지 아니하여 소위 말해서 직장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젊은이
들이 늘어가고 있다.
다행히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정자체를 꾸려 나갈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이 일을 해도 먹고살기가 급급해지는 세상이 이미 도래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상황이 도래되면 이미 나 이외의 다른 사람(그 사람이 비록 부모라 할지라도)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한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정적으로는 아무리 부모에게 잘 해드리고 싶다 하더라도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그
런 환경가운데 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20대 30대의 젊은이들의 미래의 모습이다.
지금의 40대 50대들이라 하여 젊은이보다 상황이 더 나을 것도 없다.
직장을 다니다가 감원과 퇴출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하여 재기불능 상태로 되어 있거나, 현
재는 직장을 다닌다 할지라도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거나 하는 사람들이 대부
분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상황은 그렇게 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개선되어 안정된 직장이나 직업을 자기가 선택해서 자기가 원하는 기간 동안 가질 수 있
는 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특별한 능력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은 항상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로 돌입
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옛말에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안정된 후라야 부모형제와
이웃을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앞으로의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경제력이 소진되어 다른 곳에는 신경 쓸 여
력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우리는 신문이나 TV에서 자녀들에게서 버림을 받다시피 하는 노인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 사람들은 부모를 돌보지 않는 그 패륜을 저지르는 그 자녀들에게서 분노를 느낄 지도
모르겠으나, 결혼을 해서 숨 가쁘게 살아가면서 경제적인 사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부모와 따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면서 그들에게 함부로 비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부모에 대해서 효도를 하고 싶고 같이 살고 싶어도 모든 여건이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어 버렸고 대부
분의 사람들이 노후를 자녀에게 무한적으로 의탁할 수 있는 그런 환경도 되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곧 특별히 선택된 소수를 제외하고는 자녀에게 노후를 의지할 없는 시대가 도래됨을 뜻한다.
부모의 노후를 자녀들이 책임을 질 수 없는 시대로 이미 와 버린 것이다.
2002.5.15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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