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엘공원에서 조금 내려오면 매스컴에서 하도 보아서 눈에 익은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당이 나오는데 성당 주변
에서 내려서 걸어간다.
정문쪽에서 성당을 바라보면 일단 그 크기와 모양에 대해서 압도를 당하게 되는데 우리가 늘 보아오던 익숙한 모양의 성당과는 거
리가 먼 모습이서서 낯이 설기도 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가는 길에 보이는 거리 풍경...바르셀로나 이곳은 미술가 후안 미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후안미로
의 그림은 아님)
걸어서 가는 길 주변의 모습....민들레가 핀 것 같기도...이번 여행에서 봄을 보고 있는 중이다.
한참을 걸어서 간다.
이 성당은 가우디의 대표적 건축물로 1882년부터 지금까지 건축되어 지고 있으며 완공예정은 가우디 사후 100년이 되는 2026년
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 건축물은 세계의 출입구(Façade)로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탄생의 파사드(Nativity Façade)와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기까지의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çade) 그리고 3일반에 부활한 내용의 '영광의 파사드(Glory Facade)'이다.
이 세계의 파사드 중에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완성했지만 수난의 파사드는 1976년에 완성되었고, 영광의 파사드는 2002년이
되어서야 착공하여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성당이 모습이 나타나고...일단 그 규모와 위용에 감탄사를 발사하게 된다.
이쪽은 탄생의 파사드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 문으로 들어간다.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성서의 내용들이 조각되어 있는데...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직접 건축하였다.
안에 들어가기 전 밖에서 눈에 보이는 성당을 사진에 담아본다.
열 두개의 탑은 열 두 제자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우측은 영광의 파사드로 건축중이다.
건축의 조각 하나하나에 성서적인 의미를 표현한 것으로 빼곡하게 있는 그 의미를 다 알 수는 없고 다 알 필요도 없을 것
주변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어보는데.... 그 사진이 그 사진이 되고 만다.
사진을 찍어서 보면 그냥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부분 부분을 찍어 보기도 하고...
조각의 의미는 비종교인에게는 사실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탄생의 파사드에 조각된 내용은 요셉과 마리아의 결혼부터 탄생 그
리고 성장 등의 내용이 아래로 조각되어 있다고..
이 성당이 지어지게 된 배경 중의 하나는 18세기와 19세기에 카탈루냐 지방은 산업혁명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사회주의적인 사상
도 팽배했는데, 마르크스의 "정신은 물질의 생물학적 부산물이다."라는 말처럼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사회주의자들이 성당
들을 파괴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가우디는 카탈루냐 지방이 하느님께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성당을 계획
하고 신자들의 기부로 이 건축물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도 이 건축물의 공사를 이어가는 건축가들은 카탈루냐 지방의 건축가들로만 구성이 되어있고, 이지방의 기부금과 관광객의
입장료만 가지고 건축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탄생의 파사드에서 입장을 하여 내부를 구경하고 종탑으로 올라가서 바르셀로나를 조망하고 수난의 파사드로
나오게 되는 코스로 관람을 하게 되는데 패키지관광객들은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입구에서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
가서도 주변을 둘러보면서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나오게 되는데 감상이나 감탄을 할 틈이 없다.
건물 외부는 각 파사드마다 그 주제에 맞는 성서의 내용을 조각하여 놓았고 내부는 기둥과 천정의 모양이 커다란 나무가 있는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햇빛이 아침에는 녹색의 스태인드글라스를 통해서 들어오도록 되어 있고 오후에는 붉은 빛과
오랜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석양이어서 서쪽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성당 내부가 황
금색으로 물이 들었다.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성당내부...마침 늦은 오후의 햇살이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서 들어오고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난다.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천정...모두 고개를 들고 쳐다보면서 사진을 찍는다.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황홀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광경을 보면서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겠지만 참으로 아름답다는 느낌은 공통적으로 가질 것이다.
기둥이나 창문, 그리고 거기에 조간된 성서적읜 의미는 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건물자체의 신비감만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석양이 시작되는 시간이라서 붉은 색과 노란색으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이 성전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붉은색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빛...
들어오던 문쪽이다.
석양이 지는 지금의 때가 가장 신비로운 성전이 되는 시간이라고
햇빛을 통한 조명이 가장 아름다운 때가 아침에 해가 들어올 때와 저녁에 해가 질 때이다.
시간이 없어서 하나하나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없을 뿐 아니라 건물자체 때문에 성서적 의미를 찾아보는 것
을 잊어버리게 한다.
기둥에 있는 그림은 열두 제자를 표시한 그림으로 오른쪽은 마가(마르코) 왼쪽은 마태(메튜)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상
햇빛이 비치는 곳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틍해서 들어오는 빛
주기도문이 전 세계의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자신의 나라글씨도 찾아보고 그 앞에서 사진도 찍는다.
한글도 기록되어 있다.
이런 건축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영광스럽다.
각자 핸드폰으로 이곳에 왔다감을 찍는다.
수난의 파사드 쪽은 조각이 탄생의 파사드와는 다르게 직선적이고 생략적이며 추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바닥의 유리를 통해서 찍은 사진
정상적인 기념사진도 남기고
모처럼 찍사도 얼굴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종교적 건물이라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예술품으로도 보아야 할 정도로 건물의 목적이 주는 의미보다는
건물자체가 주는 감동이 더 크다.
이 건물을 보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가톨릭신자보다 비종교인이나 타종교인들 그리고 개신교인들이 더 많을 것이며 그들은 유명
한 성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건물 그 자체를 보러 오는 것이다.
(여기서 가톨릭과 개신교를 구태여 구분한 것은 그들의 관계는 기독교아 이슬람만큼이나 신앙의 방법에 대해서 간극이 벌어져 있
기 때문이다.)
이 건축물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가우디라는 사람은 어떻게 하여 이런 건축물을 설게할 수 있었고 건축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다.
건축물을 보면서 종교인의 입장이니 비종교인을 떠나서 건물의 조각 하나하나를 찾아보고 의미를 생각하면서 감상할 필요는 없다
는 생각이다.
동쪽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청색과 초록색이어서 오전에는 푸른색과 초록색이 성전에 가득차게 된다고...
햇빛이 비치면 또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성전은 파란색이 될 것이고...
어떻게 이런 건물을 설계할 수가 있었는지 천재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개 된다.
설명이 필요없는 아름다운 색깔이다...필요가 없다기 보다 설명을 할 수 없는
어떤 설명이 필요하겠는가...석양에 들어온 것이 신의 한 수였을까...
얼마나 황홀한지는 직접 보아야만 알 수 있다.
성전을 나오기 전에...
성당은 가로 150미터이고 세로 60미터라고 한다...내부가 넓다.
수난의 파사드쪽...예수가 십가가에 달리는 과정이 조각되어 있는데 호셉 마리아 수라비치가 1952년부터 참여하
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탄생의 파사드쪽과는 조각의 모습이 다르다....추상적이고 단순하다.
베드로가 예수를 배신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다....왼쪽에는 닭이 우는 모습이...
십자가에 달리는 모습과 그 모습을 쳐다보는 가족들과 신도들이다
로마 병정의 모습도...
수난의 파사드 쪽의 조각상들은 슬프고 괴롭게 표현되어 있다.
수난의 파사드 모습...탄생의 파사드와는 느낌이 아주 다르도록 만들었다.
각 문마다는 네게의 기둥이 있게 되는데 열두개의 기둥은 12사도를 의미하며 높이는 100미터가 넘는다고..
오른쪽은 영광의 파사드로 아직 건축중이며 1026년 완공예정이라고..
참으로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건축물이다.
시간이 없어서 종탑에는 올라가 보지 못하고 외관과 내부만 대충 구경을 하고 나왔는데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면 하루 종일을 감상
하더라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백과사전에서
스페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이코르네트(Antonio Gaudi y Cornet)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감독을 맡
은 로마가톨릭교의 성당(聖堂) 건축물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聖) 가족'이라는 뜻으로, 예수와 마리아 그리
고 요셉을 뜻한다. 원래는 가우디의 스승인 비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 y Lozano)가 설계와 건축을 맡아
성 요셉 축일인 1882년 3월 19일에 착공하였으나, 비야르가 건축 의뢰인과의 의견 대립으로 중도 하차하고 1883
년부터 가우디가 맡게 되었다.
가우디는 기존의 작업을 재검토하여 새롭게 설계하였으며, 이후 40여 년간 성당 건축에 열정을 기울였으나 1926
년 6월 사망할 때까지 일부만 완성되었다. 건축 자금을 후원자들의 기부금만으로 충당하여 공사가 완만하게 진행
되었으며, 스페인내전과 제2차세계대전 등의 영향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1953년부터 공사를 재개하여
현재까지 진행중이며,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전체가 완성될 경우 성당의 규모
는 가로 150m, 세로 60m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중앙 돔의 높이는 약 170m이다.
1889년의 건축물의 모습
건축양식은 입체기하학에 바탕을 둔 네오고딕식이다. 구조는 크게 3개의 파사드(Façade;건축물의 주된 출입구
가 있는 정면부)로 이루어져 있다. 가우디가 사망할 때까지 완성된 파사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탄생의
파사드(Nativity Façade)'뿐이며, 가우디가 직접 감독하여 완성하였다. 나머지 2개는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ç
ade)'와 '영광의 파사드(Glory Facade)'인데, 전자는 1954년에 착공하여 1976년에 완성되었고, '영광의 파사드'는 2
002년이 되어서야 착공하였다.
3개의 파사드에는 각각 4개의 첨탑이 세워져 총 12개의 탑이 세워지는데, 각각의 탑은 12명의 사도(제자)를 상징
한다. 모두 100m가 넘는다. 또 중앙 돔 외에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높이 140m의 첨탑도 세워진다. 재료는 석재
인데, 1953년 건축을 재개하였을 때 석재가 부족하여 그 뒤에는 인조 석재와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있다. 탑의 모
양은 옥수수처럼 생겼고, 내부의 둥근 천장은 나무처럼 생긴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천장은 별을 닮은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 차 있다.
내부의 천정...인터넷
가우디 건축의 백미(白眉)로 꼽히며,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가우디가 직접 건축에 참여
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탄생의 파사다'와 예배실은 구엘 공원(Parque Güell), 구엘 궁전(Palacio Güell), 카사밀라
(Casa Mila), 카사비센스(Casa Vicens), 카사바트요(Casa Batlló), 콜로니아 구엘 성당의 지하 예배실(Crypt in Col
onia Güell)과 함께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Works of Antoni Gaudí)'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
로 등재되었다.
인터넷에서...
가우디...위키백과
안토니 가우디 이코르네트(카탈루냐어: Antoni Placid Gaudí i Cornet, 1852년 6월 25일 - 1926년 6월 10일)은 스페
인 카탈루냐 지역의 건축가이다.
기록된 그의 정식 이름은‘안토니 플라시드 기옘 가우디 이 코르넷(Antoni Plàcid Guillem Gaudí i Cornet)’이다. 아
버지쪽 가문은 프랑스계의 가우디 집안이고, 어머니쪽이 코르넷 가문이다. 안토니라는 이름은 그의 어머니의 것
을 물려받은 것이다. 74세를 살았으니 당시로서는 단명한 것은 아니나, 젊어서 가족의 대부분을 잃고 쓸쓸한 인생
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밀라 주택, 바트요 주택, 구엘 저택,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을 설계했다.
19세기말 카탈루냐 지역에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대단한 변화가 있었다. 가우디는 당시 카탈루냐 건축을 주도했
던 고전주의 건축을 벗어나, 건조한 기하학 만이 강조된 건축이 아닌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
의 사물들을 관찰했고, 그런 형태들의 가능성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결과 그의 건축물은 기하학적인 형
태들 외에도 곡선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내부 장식과 색, 빛이 조화를 이룬 건물들을 건축했다.
건축 작품
그의 건물 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현재까지 모두 7 작품이다.
1.비센스 주택 1878-1880
2.구엘 저택 1885-1889
3.구엘 공장단지 내 지하경당 1898-1914
4.구엘 공원 1900-1914
5.바트요 주택 1904-1906
6.밀라 주택 1905-1910
7.성가족성당 탄생 입면 및 지하경당 1884-1926
그중 구엘저택과 밀라주택, 성가족성당은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을 수 있으며, 바르셀로나에 있는 성가
족 성당은 아직도 건축 중에 있다.
1918년 부터는 자신이 평생동안 건축해온 성가정 (성가족) 대성당 건설에 매진했지만 재정 문제로 인해 끝을 보지
못하고 1926년 6월 7일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지나가던 노면 전차에 부딪혀 치명상을 당했다.
그러나 운전수는 지저분한 노숙인으로 생각하고 그를 길옆에 팽개치고 노면 전차를 몰고 가버렸다. 사람들이 병
원으로 데려가고자 택시를 찾았지만 역시 노숙인으로 생각한 기사들은 그냥 지나쳐 3번의 승차 거부 끝에 4번째
로 잡은 택시 운전수가 겨우 운전했지만 병원도 2곳이나 진료 거부를 당해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무상 병원에
놔두고 가버렸다고 한다. 문제는 신분을 증명하는 것인데 병원에서 방치된 채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가우디
는 병원 간호사에게 이름을 말하자 병원 관계자들은 경악을 하며 가우디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급히 연락했다고
한다. 서둘러 달려온 그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자고 말했지만 가우디는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이
거지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
다"라며 그대로 빈민 병원에 남았고 결국 1926년 6월 10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죽게 만든 노면 전차 운전수는 파직과 동시에 구속되었으며, 승차를 거부한 택시 운전수 3명도 불구속 입건
되었다. 결국 택시 운전수 3명과 그의 치료를 거부했던 병원은 막대한 배상금을 가우디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
을 받았다. 그리고 장례식은 1926년 6월 13일 많은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성대하
게 거행되었고, 유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 지하에 있는 가우디의 묘
https://youtu.be/TylzXtQgIG8?si=XyyBpD1ZH-KshsZl....사그라다 파밀리아 ebs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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