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Sevilla)는 고대 페니키아 사람들이 세운 식민도시로 당시 이름은 '스팔'이었는데, 이는 페니키아어로 저지
대를 뜻한다고 한다. 이 스팔이 로마의 속주 시절에는 라틴어로 히스팔리스(Hispalis)가 되고, 서로마가 망한 후 서
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된 후 712년 이슬람 제국에게 정복된 이후에는 히스팔리스가 아랍어로 이쉬빌리야
(أشبيليّة/ishbiliyah)가 되었다.
그 후 1248 페르난도 3세에 의해서 이슬람으로부터 되찾아 오면서 에스파냐어로 세비야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
다.
이곳은 이슬람의 마지막 왕국이었던 그라나다 까지 248㎞로 코르도바와 함께 카스티야 왕국이 이슬람세력을 이
베리아 반도로부터 몰아내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였던 곳이기도 하며 콜럼버스가 이곳에서 항해를 시작한 곳으로
콜럼버스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고 한다.
마지막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 왕국...세비아를 점령하고도 250년 간 그라나다 왕국을 그대로 두었던 것은 이 왕
국이 스페인의 속국과 같은 입장에 있었고 아프리카의 이슬람의 창구 역할을 하였으나 대항해 시대가 개막되면서
필요가 없어지게 됨에 따라 1492년 아프리카로 몰아내게 된다.
세비야는 해안에서 87여㎞ 떨어진 곳으로 과달카비르 강이 가로 지르고 있는데 과거에는 배도 작았고 과달키비르
강이 수심이 깊고 유량도 많아 항구로서 기능이 가능해서 스페인 제국의 당당한 제1 무역도시였었으며, 신대륙 교
역의 첫 관문으로서 영화를 누렸지만 수위가 낮아지고 배는 커진 지금은 세비야의 기능을 말라가 같은 해안가 도
시가 대신하고 있어서 항구도시로서의 기능은 사라지고 말았다.
세비야는 플라멩코와 투우의 도시로도 유명하다고 하며 세마나 산타기간의 행렬의식과 페리아 축제도 유명하다
고 한다.
그리고 오페라 피델리오, 피가로의 결혼, 세빌리아의 이발사, 카르멘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며 무려 120개의 오
페라가 세비야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는 세비야의 모습은 당대
유럽인들에게도 굉장히 이국적으로 보였고 거기다 성(性)을 부각시키는 내용의 오페라는 이탈리아나 독일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하기를 꺼렸는데, 스페인은 적당히 이국적이면서도 유럽이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내용을 배경으로
하기에 적합했다고 한다.
세메나 산타 행렬
그리고 이곳은 스페인 내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도시로 7~9월에 최고 기록으로 2003년에 47.2℃를 기록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습도가 여름에는 10~20%대를 벗어나는 일이 없어서 낮에도 그늘에 있으면 그렇게 덥지는 않다고
한다.
16세기의 세비야 그림
세비야 대성당
스페인 광장
15세기 말에는 신대륙무역의 기지로서 전성기를 맞았으나 그러나 17세기에는 대형 선박의 출입이 편리한 카디스
에 밀려,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으나 지금은 관광도시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으로 스페인을 찾는 관광객들
이 반드시 들러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은 스페인의 국민화가 무리요와 벨라스케스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스페인의 국민화가인 무리요의 '창가의 두 여인'
벨라즈케스의 '시녀들'
유명한 관광지로는 황금의 탑, 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 탑, 세비야 알카사르, 세비야 투우장, 인디아스 고문서(古
文書)관, 세비야 스페인 광장, 메트로폴 파라솔 등이 있다고 한다.
황금의 탑
황금의 탑은 왕립 마에스트란사 투우장 맞은편 과달퀴비르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13세기 이슬람 시대에 지은 12
각형 형태의 탑으로 강 상류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원래는 강 맞은편에 똑같이 생긴 은의
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황금의 탑만 남았는데 두 개의 탑을 쇠사슬로 연결해서 적의 침투를 막았다고 한다. 이슬람
시대에 지어진 군사용 건물로는 마지막으로 남겨진 건물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탑 위에 작은 부속 탑은
18세기 후반에 들어와 새롭게 증축된 것으로 탑은 소성당, 화약 저장고, 감옥 등으로 사용되다 현재는 해양 박물
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황금의 탑
세비야 대성당[Sevilla Cathedral]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당(르네상스 양식),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네오르네상스 양식)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고딕 양식 성당 중에서는 세비야 대성당이 가장 크다. 1401년 성당 참사회의 “그
어떤 다른 성당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크게 지어 이 성당이 마무리되면 성당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
를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해야 한다.”라는 결정으로 무조건 톨레도 대성당보다 크게 지어야 한다며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짓기 시작해 105년 후인 1506년에 완공되었다. 대성당 종탑인 히랄다 탑은 오렌지 정원과 함
께 유일하게 남은 12세기에 지어진 이슬람 사원의 한 부분으로 17~18세기에 들어와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
식이 추가되면서 여러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기도 하다고...
이곳에는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로부터 되찾은 산 페르난도 왕을 비롯하여 에스파냐 중세기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
어 있고 남쪽 문 근처에는 콜럼버스 묘가 있는데, 에스파냐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
는 조각상이 관을 메고 있다. 이 관에는 콜럼버스 유골분이 안치되어 있다.
세비야 대성당
히랄다 탑
콜럼버스의 묘(Sepulcro de Colón)
스페인 정부는 콜럼버스가 세운 공을 인정하여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라는 그의 유언을 지켜 주기
위해 당시 스페인 4대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의 4명의 왕들이 그의 무덤을 짊어지게 했다. 앞
에 있는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왕들은 고개를 들고 있고, 뒤에 있는 나바라, 아라곤 왕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것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지했던 왕은 고개를 들도록, 반대했던 왕은 고개를 숙이도록 한 것이란다. 그리고 오
른쪽 레온 왕의 창살 아래에는 그라나다를 뜻하는 석류가 꽂혀 있는데 국토 회복 운동으로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왕들이 입고 있는 옷에 그려진 문장이 해당 왕국을 의미한다. 오른쪽 레온 왕의 발과 왼쪽
카스티야 왕의 발이 유난히 반짝이는데, 이것은 이들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세비야에 다시 온다는 속설
과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공중에 떠 있는 콜럼버스의 묘...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이사벨라로 부터 인도항로를 개척하기로 하고 세
번의 항해를 하여 아메리카를 발견하여 그 공로를 인정 받아 작위를 받았으나 이사벨라 이후에는 사기꾼으로 비
난받아 작위가 박탈당하면서 말년을 비참하게 보내면서 죽을 때 자신을 배신한 스페인에 묻히기를 원치 않아 절
대로 스페인 땅에 묻지 말라고 후손에게 부탁하여 쿠바에 묻혔다.
세비야 알카사르(Sevilla Alcazar)
원래는 1170년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성이었던 자리에 잔인왕이라고 불렸던 카스티야 왕국의 국왕 페드로 1세
가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성을 보고 반해 그라나다와 톨레도에서 이슬람 장인들을 불러 모아 무데하르 양식의 궁
전을 짓게 했다고 한다. 대성당과 가장 가까이에 인접해 있는 ‘사자의 문(Puerta del León)’을 통과하면 작은 정원
을 지나 페드로 1세 궁전이 보이는 ‘파티오 델 라 몬테리아(Patio del la Monteria)’가 나오고 이곳을 통과하면 세비
야 알카사르의 하이라이트인 페드로 1세 궁전 안에 자리한 ‘아가씨의 파티오(Patio de las Doncellas)’가 나타난다.
페드로 1세가 이슬람 장인들을 불러 모아 그라나다 알암브라 성의 나스르 궁전을 모티브로 만든 곳으로 무데하르
양식의 절정을 볼 수 있다. 중앙 연못을 기준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파티오를 둘러싸고 있는 페드로 1세 궁전
내 대사의 방은 우주를 상징하는 천장 무늬의 화려함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
페드로 1세 궁전 관람이 끝나면 알카사르 뒷편의 르네상스 정원에 나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그로테스크 갤러리가
있는 머큐리 연못으로 이동하자. ‘그로테스크(Grotesque)’는 괴기스럽다는 뜻으로, 용암을 사용해 벽면을 액자화
시킨 모습이 독특하다. 그밖에 카를로스 5세의 방과 소성당,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파티오도 둘러보도록 한다.(다
음 백과사전)
세비야 알카사르
중정
대사의 방 천정
인디아스고문서관(Archivo de Indias)
인디아스고문서관은 1784년 건설한 사각 모양의 3층 건물로서,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정책에 관한 역사자료를 소
장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도리아양식의 원기둥을 설치하여 공간을 분할하였으며 1층에는 창을 내고 위층에는
발코니를 설치하였다. 1987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
다.
스페인 광장
마리아 루이사 공주가 1893년 산 텔모 궁전 정원의 반을 시에 기증하면서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마리아 루이사 공원
이 만들어졌다. 마리아 루이사 공원 안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히는 세비야의 대표적인 랜
드마크 중 하나인 스페인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1929년 라틴 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당시 본부 건물로 지어진 건물은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되어 있고, 건물 양쪽의 탑은 대성당에 있
는 히랄다 탑을 본 따 만들었고, 건물 아래층 반원을 따라 타일로 장식된 곳은 스페인 모든 도시의 문장과 지도, 역
사적인 사건들을 보여 준다.
스페인 광장의 야경
메트로폴 파라솔
세계에서 가장 큰 목재 건축물 중의 하나로 산타 크루즈 지구 북쪽 끝과 마주하고 있는 메트로폴 파라솔은 안달루
시아의 큰 버섯이라고도 불리운다. 총 3,400여 개의 폴리우레탄 코팅을 한 목재로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총 8년
여에 걸쳐 만든 지구상의 가장 큰 목재 건축물이기도 하다. 버려진 광장이다시피 했던 엔카르나시온 광장(Plaza
de la Encarnación)에 새로운 현대 도시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세비야의 옛 산업이었던 직
물 산업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메트로폴 파라솔
세비야알카사르
세비야 투우장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
세비야의 플라멩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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