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7개국 종단 배낭여행

아프리카 7개국 종단 배낭여행 이야기 (14) 탄자니아(5)...잔지바르(1) 포르다니 공원

뿅망치 2018. 4. 6. 11:19

 

숙소는 해안가 가까운 스톤타운에 있어서 오래된 건물을 숙소로 개조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 현대식 건물이 아니고 좁은 골목에 있으며 외부에서 보면 숙소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곳이 구 시가지로 해변가이기 때문에 해변이나 스톤타운을 관광하기도 좋은 곳이어서 대부분의 배낭여행자들은 이런 숙소에서 묵게 된다.

카리부 인이라는 숙소...외부에서는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도록 되어 있어서 간판이 없으면 숙소인지 알 수가 없다.


로비...

3층 방에서 보는 포르다니 공원 앞의 바다

여럿이 자는 방도 있도 두명이 자는 방도 있으며 부부가 아닐 경우에는 싱글침대를 준다....선풍기 옆에 둥그런 것은 모기장이다.

  

숙소의 방을 배정받았는데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가파라서 무거운 짐을 들도 올라가기도 힘들도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방을 찾기도 힘들게 되어 있는데 옛날에 지어진 집들이라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서 입구의 출입문도 하나고 이층으로 올라오는 계단도 아주 복잡하게 만들었다.

짐을 방에 넣어 두는 대로 저녁은 각자 알아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일단 포르다니 공원으로 나갔다.

지금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가 보니 외식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곳은 관광지로 주변에 야시장도 있고 레스토랑도 즐비하여서 모처럼 외식을 하기로 했다.

인터넷 등에서 포르다니 공원의 야시장에 대한 음식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이 곳에서 저녁을 해결할까 하고 공원에 나왔는데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야시장이 개설돠고 있다.

 

이 공원은 포르투갈이 지배하던 시절 포르투갈 시절에 만들어 놓은 공원이어서 이름이 포르다니 공원인지는 모르겠으나 올드포트 정문에 위치에 있다.

공원은 아름다운 꽃이 핀 나무들이 있고 바로 앞에는 인도양의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어서 환상적인 풍경이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공원의 중앙에서 달려 나와서 바다로 다이빙을 하는데 다이빙 시합을 하는 곳인지 구글 지도에도 다이빙을 하는 곳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공원을 구경하는데 한국 사람들을 만났는데 인사를 하다가 보니 이곳에 선교를 나온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 팀 중에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서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어느 교회냐 어느 목사를 아느냐 하면서 이야기가 길어진다.

그러면서 우리가 저녁식사를 하려고 한다고 하니 자기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직접 식당으로 안내를 하고 식사까지 주문해 주었다.

그리고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이곳에 온지가 몇 년이 되어서 아는 사람들도 있고 하니 저렴하게 안내를 해 주겠다고 한다.

전문적인 투어를 하는 사람들을 이용하면 더 비싸기 때문에 그러기로 약속을 했다.


 

   

숙소에서 나가면 100미터도 되지 않아서 이런 바다와 만나게 된다.

우리팀 ...같이 다니다가 보니 인물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다이빙을 하는 청년들...다양한 모습으로 다이비을 한다.

이제 하나 야시장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선교사를 만나서 마루마루라는 레스토랑으로 가는 중이다.

가는 길에 보이는 올드 포트..

이런 골목들 안에 레스토랑들이 있다.

이런 길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골목을 빠져 나오는 것이 어렵다.

   




식당은 3층으로 전망이 좋은 곳으로 이곳에서는 고급레스토랑이라고 한다.

오징어구이와 세우구이 바닷가재구이를 시켜 주었는데 비싸기는 하지만 푸짐하여 아프리카에 와서 처음으로 음식다운 음식을 먹은 셈이다.   

석양을 보면서 식사를 기다리는 중에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이슬람사원마다 울려 퍼지는데 이곳이 오만의 술탄왕국이 지배하던 곳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레스토랑이 이곳에서는 고급레스토랑이라고 하는데...외국 사람들도 많이 와 있다.

우리는 음식을 잘 몰라서 선교사 분이 주문을 해 주고...바쁘다고 가셨다.

이슬람 종탑들...군데 군데 보인다.

다른 쪽에는 성당도 보이고...이곳의 성당은 노예를 가두어 두었던 곳 위에 지었다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슬람 종탑들이 보이는데 한꺼번에 기도시간을 알려준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데...모든 음식마다 감자 칩이 나오는데 너무 느끼해서 해산물만 먹었다.

새우구이

오징어 구이


 

가재구이

문어구이...


아프리카에 와서 처음으로 외식을 하는 호사를 누리고 숙소로 가는 길에 공원을 들렀더니 먹거리 야시장이 서 있고 관광객들도 많이 모여 있다.

우리는 저녁을 레스토랑에서 먹었기 때문에 구경만 하고 숙소로 들어갔는데 숙소에 있는 에어컨이 우리나라의 '금성'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금성이라는 상표가 없어진지가 얼마인데....


공원에 있는 야시장...구경만 하고


식재료들...앞에 있는 것은 바나나로 구워주는 바나나이다.


여러가지 먹음직한 음식들...그리 싸지는 않다.

모처첨 사진 기념사진 한장

우리가 내렸던 잔지바르 부두이다.

바다로 나와 있는 레스토랑으로 플로팅 레스토랑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다.

밑에 상표가 엘지 골드스타라고 되어 있다....아직도 골드스타로 수출을 하는지 몇 십년 된 것인지....

그래도 바람은 잘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기 전에 공원을 한바퀴 둘러보았는데 어제 떠들썩 하던 야시장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공원은 조그마하지만 공원의 나무와 건물 바다 등이 어우러져서 지금까지 본 공원중에 가장 인상적인 공원이다.


공원 주변들

해변...

공원 안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

공원 안에 있는 우리나라의 정자 같은 곳

주변...

또 주변

화려한 꽃들




화려한 꽃들

공원주변에는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아래 글도 꼭  읽어보시길...


잔지바르 섬은 은구자 섬(Unguja Island)으로 불리우던 섬으로 넓이는 2,461㎢. 서울특별시 면적(605.25 ㎢)의 약 4배 크기로 인구는 약 80만 명 수준(2015년 기준)이라고 한다.잔지바르(Zanzibar)라는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잔지(Zanzi:흑인)와 바르(Bar:사주해안)의 복합어로 '검은 해안'을 의미하는데 이 이름이 붙여진 것은 계절풍을 따라 교역을 하러 온 페르시아 상인들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들은 다우라 불리는 범선을 타고 12월쯤 잔지바르로 왔다가 6월쯤 역풍을 이용해 돌아가곤 했다. 이 섬에 처음 도착한 그들은  백옥같이 하얀 백사장에 흑인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잔지바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섬에는 2만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페르시아인과 인도인 그리고 아랍인들이 노예무역과 향료무역을 하는데 이곳이 적합한 교역지로 선정되면서 아랍인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6세기 초 포르투갈의 해양 전성기에 포르투갈이 동아프리카 해안을 장악하면서 이곳도 점령하여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으나 포르투갈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1698년 이곳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았다고 한다.

 

이곳이 오만제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부터 동아프리카에서 생포한 흑인들과 이 섬에서 생산되는 정향(丁香)이라는 향료를 유럽의 상인들에게 팔아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에 오만제국에 왕위계승문제로 내분이 일어나자 잔지바르는 오만제국으로부터 1861년 독립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면서 무역의 중계지로의 중요성이 약해지고 곧바로 독일과 영국이 잔지바르가 지배하던 동아프리카의 대부분을 장악하면서 1890년 잔지바르도 탕가니카에 복속시켜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버렸고 노예무역도 금지시켜 버렸다.

 

1961년 탕가니카가 영국으로 독립을 하면서 1963년 잔지바르도 독립을 하면서 술탄국을 부활시켰으나 1964년 1월에 공산주의자들의 혁명에 의해서 정부가 전복되고 양쪽의 대통령이 합의하여 탕가니카와 통합을 하게 되었다.

 

이 섬에 있는 스톤타운이나 궁전들의 유적지들은 대부분 오만제국 때 만들어진 유적이라고 한다.

이 섬의 역사는 아프리카 동해안의 역사보다 더 복잡한데 그만큼 지리적 여건이나 이곳에서 생산되는 정향 등이 아랍인들이나 유럽인들이 탐을 낼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일찍이 페르시아인들과 인도인들이 아랍인들이 들어와서 터를 잡았으나 아랍인들이 장악을 하면서 이슬람 국가를 세웠기 때문에 오만이 지배했던 곳의 사람들 대부분은 이슬람 교인들이며 이곳 사람들의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다르에스살람이나 이곳에는 이슬람 사원들이 많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나중에 독일과 영국이 지배를 받으면서 기독교도 전파가 되어 성당이나 교회도 눈에 보이고 지금도 우리나라의 선교사들이 이런 곳에 전도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전도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참고로 아프리카는 기독교보다 이슬람교가 더 큰 세력을 떨치는 곳인데 아프리카에 이슬람이 전해지게 된 배경은 두 개의 경로이다.

660년에 아라비아에서 출발된 이슬람은 이집트를 건너 그 당 세기인 7세기부터 아프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해안을 따라 빠르게 전파되어 711년에는 서쪽 끝 모로코까지 퍼져 갔고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스페인 땅으로 전해지게 되어서 북아프리카는 이슬람교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한편 사하라 남쪽의 이슬람은 주로 아랍 상인들에 의해 동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세력을 넓혀 갔고, 서쪽에서는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베르베르족이나 투아레그족들에 의해 이슬람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동부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소말리아, 우간다, 모잠비크, 그리고 서부 아프리카의 가나, 감비아, 말리, 가봉, 카메룬, 세네갈, 나이지리아, 카메룬 등의 나라에 이슬람이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이슬람은 대부분 수니파이며 아프리카의 이슬람은 토착종교와 전통을 잘 결합하여 다른 지역과는 다른 이슬람 문화가 발전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프리카나 중동 같은 이슬람이 뿌리를 내린 곳이나 이슬람이 국교인 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무슬림(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개종을 하게 되면 그들의 교리는 사형을 하도록 되어 있고 개종을 시킨 사람들도 사형을 하도록 되어 있다.

 

중동에서 선교하다가 발각이 되면 선교사는 사형을 시키게 되면 외교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추방을 하고 개종을 한 사람은 사형을 시켜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갔던 선교사들이나 선교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서 일부는 참수를 당하고 결국 국가에서 몸값을 물어주고 풀려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므로 무슬림을 기독교로 개종을 시키는 것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게 하는 것이니 사실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그러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곳이라고 하더라도 이슬람을 기독교로 개종을 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들이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 되면 그들의 생활이 윤택해 지는가?

아니면 이슬람보다는 기독교가 더 확실하게 천국에 보내주게 되는가?

여행을 하다가 만나는 선교사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들의 열정은 높이 사지만 맹목적인 신앙의 자세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이런 위험한 곳에 선교활동을 보내지 않는다.


공원에서 보는 석양

음식점에서 둘러보는 주변 이 때가 기도 시간인지 세상이 시끄러울 정도로 소리가 난다.

레스토랑에서 가수가 노래도 불러주고... 이 식당에 젊은 한국 부부도 저녁을 같이 먹었다.

야시장,,,,,음식은 그리 먹을 만한 것은 아닌 듯...먼지도 지글거리고...


포르다니 공원 유튜브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