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 사슬의 최고위층에 존재하는 생물은 가장 힘이 센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육지에서는 먹이사슬의 최고위층은 백수의 왕인 라이온이 될 것이며 바다에서의 먹이사슬의 최고위
층이 바다의 난폭자라고 불리는 상어나 범고래가 될 것이다.
동물계 안에서도 곤충계는 곤충계대로 조류계는 조류계대로 포유류는 포유류대로 어류는 어류대로
먹이사슬이 존재하고 그 계(係)들을 통합하여 먹이사슬이 존재하게 된다.
이 모든 계를 통합하여 최후의 포식자는 존재하게 될 것이며 그 최후의 포식자는 가장 힘이 센 동물
이 되는 것이 맞겠지만 사자나 상어가 아닌 인간이 된다.
먹이사슬은 동물세계는 동물세계대로 식물세계는 식물세계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동물계와 식
물계사이에서도 존재하며 먹이사슬은 하위에 속하는 생물들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시스템이며 특히 식물계
와 동물계의 관계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만약 각 계 안에서 먹이사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든가 그 관계가 원활하지 않게 된다면 지구상에 존
재하는 모든 생물은 곧바로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먹이사슬의 관계는 계(係) 내에서는 이루어지지만 종(種) 안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종 안에
서는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종은 먹이사슬의 관계와 적자생존의 관계가 동시에 일어나는 특이한 종이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지만 먹이사슬의 관계가 분명히 존재하고 적자생존의 경쟁의 관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것을 먹이사슬의 관계라고 보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먹이사슬의 일종이라고
보아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리를 예로 든다면 세무공무원과 납세자가 일 때문에 만나서 같이 밥을 먹게 된다면 밥값을 내는
사람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납세자가 될 것이다.
세무공무원이 검찰이나 경찰과 일 때문에 만나서 밥을 먹는다면 대체로 세무공무원이 내게 될 것이
다.
검찰이나 경찰이 학부형의 입장에서 학교 선생님과 같이 만나서 같이 밥을 먹는다면 당연히 검찰이
나 경찰이 밥을 살 것이다.
만약 선생님이 신도의 입장에서 교회의 목사나 사찰의 스님을 만나서 밥을 먹는다면 신도의 입장에
있는 선생님이 내게 될 것이다.
여기서 밥값을 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처한 사람으로 먹이사슬의 관계로 볼 수 있는
것이며 적자생존의 관계는 아니다.
위의 경우 말고도 여러 가지의 경우가 있겠지만 어느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런 관계에서 밥을 얻어먹
는 사람의 입장은 밥을 사는 사람들보다 항상 우월적 위치에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우월적 위치를 부여하게 하는 것은 반대로 그렇지 못한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약점이
되거나 일방적인 시혜를 베풀 수 있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납세자는 자신의 탈세가, 공무원은 부정이 약점이 되어 약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으며 학부형은
자녀의 학교생활이 볼모가 됨과 동시에 선생님으로부터 일방적인 시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약자
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또 사람들은 목사나 스님에 대해서도 다음 생애(확신은 하지 못하지만)에 대해 좋은 곳(천당이나 극
락)으로의 인도라는 시혜 겸 혹시 이 사람들에게 잘못하게 된다면 죽어서 잘못 되지 않을까 하는 두
려움 때문에 항상 약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물론 선생님이나 목사 등이 인격이 훌륭하다든가 하여 존경하는 마음이 있을 수가 있어서 만나서 밥
을 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만남에서의 문제이고 직업이라는 관계 속에서 만날 때는 위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 보통이다.
위의 관계를 먹이사슬의 관계에 비교하는 것이 좀 뭣하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 가운데
먹이사슬의 최고위층은 인간이며 인간 중에서는 목사 등 종교지도자들일 것이니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가운데 먹이사슬의 최고위층은 종교지도자들이 되는 셈이다.
이 세상에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이나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정치인이라고 하더라도 종교지도자
들의 권위를 당하지 못하고 그 권위에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부여된 권위가 신으로
부터 부여된 권위보다 약하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인간은 어떤 면에서는 동물보다 더 어리석은 존재처럼 보인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철저한 힘의 논리에 의해서 적자생존의 경쟁과 먹이사슬이 법칙이 이
루어지는데 반하여 인간에게는 그것에 더해서 실지로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힘이 최상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이 보통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이고 더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겠지만 이
들에게 신(神)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생각되는 권위를 없애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인격적으로 존경은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을 경외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에게 굴복하
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신으로부터 어떤 권위도 부여받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권위가
실지로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증거를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으로부터 그런 권위를 부여
받았을 것이라고 믿도록 강요받아 왔었다.
지금이야 신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종교지도자들을 직업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져
서 그들의 권위가 옛날만 하지 못하지만 아직도 그들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고 신으로부터 부
여 받았다는 권위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이다.
인간들이 이성적으로나 인식이 가능한 권위나 물리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힘은 다른 사람들도 인식
할 수 있기 때문에 가감이나 과장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력이 동원된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힘은 존재여부는 물론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
문에 가감이나 과장이 가능하며 그리고 그 권위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을 담보로 부여된 것이기 때
문에 다른 권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하다.
그러다 보니 이런 힘 곧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인 힘을 얻는 것이 눈에 보이는 힘을 어는 것보다 더
쉬울 수도 있고 그 힘도 더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런 힘을 얻기 위해서 그런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종교지도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종교를 생활의 수단이나 다른 사
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도구로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
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종교가 이런 것들 곧 생활의 수단이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 또는
사기 같은 범죄에 이용하는데 쉽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자신이 소속된 종교의 지도자와 자신의 관계를
냉철하게 한 번 생각해 본다면 그가 필요이상으로 충성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며 그 충성의 동
기가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생각되는 확실하지 않은 권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는 신의 존재를 확신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 실
존을 확인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마치 자신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처
럼 생각하면서 그 생각에 대해서 의심이나 회의를 하지 않는다.
이런 논리적으로 모순된 내용을 의심하지 않는 이런 생각과 행동이 그들이 신으로부터 사람들의 생
명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은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하게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신인
것처럼 행동하도록 만들어 주는 토양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신을 부정하면서 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모순된 이중성은 인간이 이성적이고 논리적
이라고 열심히 주장하지기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참으로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생물보다도 비합리적인 존재들이다.
사자가 백수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이다.
그 힘은 명백하게 실존하는 힘이며 실질적으로 모든 동물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으로 동물
들이 그 힘 앞에 굴복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실체나 근거도 없는 힘 앞에 굴복하는 인간들은 동물들이 본다면 참으로 비합리적이고 우스
운 존재들일 것이다.
오로지 종교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근거나 출처가 없는 힘 앞에 어이없이 굴복하는 사람들의 어리석
음을 간파하고 그런 어리석음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보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성공한 기업인처럼 성공한 종교인들이라는 말을 쓰고 듣는 것을 아무렇지 않
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성공한 종교인이란 말이 참으로 황당한 말이다.
성공한 종교인은 성공한 정치인이나 성공한 기업인보다 인간관계의 먹이사슬의 맨 윗자리에 위치하
는 존재가 될 것이니 인간관계에서 보다 우월적 위치를 소망하는 사람이라면 종교인은 가장 매력적
인 직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한 종교인이란 자신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지도 가지지도 않은 어떤 힘을 다른 사람들로
부터 믿게 만든 사람으로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한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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