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과 함께한 태항산

형제자매들과 함께하지 아니한(?) 여행 (13)...소림사가 있는 숭산 트레킹(嵩山)

뿅망치 2018. 10. 13. 10:45

숭산과 운대산은 2013년 10월 초에 태항산과 함께 혜초여행사를 통해서 트레킹을 했던 곳으로 태항산 관련하여 여행기를 쓰는 김에 같이 언급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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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嵩山)은 중국의 오악(五岳) 중의 하나로 중악산(中岳山)이라고도 부른다. 하남성(河南省) 중부에 위치하여 대략적인 위치는 낙양 근처, 행정구역으로는 등평시(登封市)에 위치하고 있다.

숭산의 소실봉(小室峰) 북쪽 기슭에 있는 소림사(少林寺)는 선종(禪宗)의 시조 달마대사(達磨大師)가 면벽 9년의 좌선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황폐해질 때마다 재건하여 후세까지 선종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태실봉(太室峰) 서쪽 기슭의 숭악사(嵩岳寺)는 수당(隋唐)시대에 북종선(北宗禪)의 중심이었던 절인데, 12각 15층의 탑은 북위(北魏) 때의 것으로 중국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탑이라고 한다.

 

위의 내용은 숭산에 대한 사전에 나오는 것이지만 일반사람들에게 숭산이라고 하면 중국 무술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소림사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무술 쪽에 관심이 없는 일반 사람이라면 숭산을 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등산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하나의 산으로 태항산을 가는 길에 들러서 가는 산일뿐이다.

숭산은 태항산 줄기 팅에 있는 산으로 위 그림의 소림사라고 적혀 있는 곳이 숭산이 있는 곳이다...숭산의 위치적 개념도

  

숭산은 1512m로 72개 봉우리가 있는 산으로 트레킹하는 것이 힘들지 않고 처음 올라갈 때 약간 가파르고 나면 계속 산허리의 바위를 깎아서 만든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 두 시간 정도 트레킹을 하면 산 꼭대기에서 케이블카가 있는 곳까지 갈 수가 있다.

그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수도 있고, 걸어서 내려올 수도 있는데 비림(卑林)이 있는 곳까지 걸어오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소림사 쪽에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 남쪽의 남천문쭉에서 올라간다....소림사쪽에서 가게 되면 소림사를 먼저 둘러보고 트레킹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맨 처음 이런 계단을 올라 가기 때문에 힘이 들지만 그 다음부터는 힘이 들지 않는다.

트레킹이 시작되는  기 옆에 있는 상황행궁


산 허리에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보인다.

이런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등산을 하는 개념과는 다르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고...

한국 사람들도 이곳을 트레킹하기 위해서 많이 찾는 곳이다.

이런 저런 주변의 경치들

이  길은 주된 트레킹 코스가 이니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 사람은 구경만 하고 지나간다.

이 바위들이 본래는 평평하게 있었던 것이었으나 지층이 지진 등으로 요동을 치면서 세로로 서게 된 것이다.

이 때가 10춸 3일로 중국의 국경일 기간이어서 중국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그런데 이 사람들은 배낭이 없고 비늘 봉지에 먹을 것을 들고 트레킹을 했었다.

이곳의 바위들은 이렇게 새로로 서있다.


숭산은 태항 대협곡 아래에 있는 산으로 태항산과는 생김새가 다르다. 태항산은 바위들이 단층에 의해서 수평으로 되어 있는 반면 숭산은 지형의 습곡(褶曲)운동으로 수백 미터의 바위가 수직으로 서 있다.

그런 바위의 허리를 걸어서 가게 되는데 그리 힘이 들지는 않는다.

 

앞에 보이는 산의 지층은 본래의 모습대로 가로로 되어 있는데 이곳은 세로로 되어 있다....이곳도 본래는 저런 모습이었을 것


이런 저런 경치

이런 트레킹이 끝나면 휴게소가 있고 옆에 케이블카가 있다....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 수도 있고 걸어서 내려갈 수도 있다.

소림사쪽으로 내려오는 길의 모습...맨손이거나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거나...배낭을 맨 사라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효현 비림이라는 글이 보이느 것을 보아서 효행비나 현자들의 비가 있는 곳인 듯..

이  비림은 묘탑이 248개가 있다고 하며 침엽수림 속에 있다....숲 속에 있어서 비림일 수도 있고 이 탑들이 수풀처럼 많아서 비림일 수도 있고...이곳이 비림 박물관이라고도


트레킹을 끝내고 내려가면 비석이 숲처럼 모여 있다고하여 비림(卑林)이라는 이름이 있는 곳이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그 유명한 소림사(少林寺)가 나온다.

소림사는 서기 495년 천축(인도)에서 온 발타선사가 창건하였으며, 이후 서기 520년 천축에서 온 달마대사가 소림사에서 수련하여 돈오(頓悟)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 선종(禪宗)의 대표적인 사찰로 유명하다. 북송(北宋) 대에는 승려가 7천 명이 넘어서 숭산에 수많은 말사(末寺)나 암자를 두어서 공부와 수련 등을 행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곳을 갔을 때가 10월 초로 이때가 중국의 국경일 기간으로 관광지나 명승지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넘쳐 나는데 소림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산인해(人山人海)에 가까운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무협소설 속의 숭산이나 소실봉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소림사는 매우 거창하게 그려져 있어서 무협소설을 읽으면서 상상 속에서의 소림사는 거대하고 웅장하며 험준한 산 밑에 있을 것 같은데 실지로 보는 소림사는 여느 절이나 다름이 없다.

이곳에 오는 중국 사람들 대부분 무술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여느 사찰처럼 복을 빌러 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곳도 향불을 피우는 연기가 경내에 가득 차 있다.

소림사로 가는 길에 있는 가판대...아마도 소림사에서 운영하는 듯

소림사를 구경하러 온 중국 사람들

들어가는 것도 밀려서 들어간다.

이모저모...

트레킹을 목적으로 갔기 때문에 절은 대충 둘러보는 것으로...

절에 오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소원을 빌러 온다...어느 절이나 향을 태우는데 우리는 그 모습이 낯이 설기도 하지만 연기가 장난이 아니다.

인산인해와 연기와...아무 생각이 없다...

무술과 관련된 유물들도 있다는데...시간도 없고 피곤하기도 하고..


  대충불러보고 나오는데 물을 통과하는 것도 힘들다.


소림사 경내 모습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문 같은 곳에는 승복을 입은 승려가 지키고 있고...

절에서 만든 제품들도 승려들이 판다.

일주문(?) 같은 것을 보면 오래된 절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 절도 몇 번이 중건된 절이다.

약국도 있고...

사람들.....사람들

무술을 배우는 학생들...

이곳에서 관광객들을 위해서 무예공연을 한다.

그 사이에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사찰이지만 고기도 나온다.

공연을 보기 위해서 줄을 선 사람들...우리는 단체관광객이라서 별도로 입장

막간에 아이들이 무대에서 뛰놀고...

 

절을 단단히 둘러보고 점심을 먹고는 소림사에서 관광객들을 위해서 무예공연을 하는 극장에서 무예를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소림사는 봉술(棒術)이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봉술 위주의 공연을 한다.

 

한 시간 정도의 공연을 보고는 트레킹을 시작했던 숭산의 반대편에 있는 소림사 경내의 밖에 있는 주차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태항산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 신향 쪽으로 간다.

소림사 경내를 벗어나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학교 같은 것이 보이는데 학생들을 보니 무술을 배우는 곳처럼 보인다.

 

소림사가 중국 무술의 본산처럼 여겨지다가 보니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중국에서도 무술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많다가 보니 이 부근이 소림사 때문에 먹고 사는 곳이 되어 버린 듯하다.    

 

이곳도 공연이나 시범을 보여 주는 곳인듯..영웅 소림회라는 간판과 시범을 보이는 그림을 보아서

소림사 경내에서 보는 정문

밖에서 본 소림사 경내쪽..중국의 인구가 15억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버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고...

가는  길 옆의 식당들...소림사 절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보이는 소림사 무예를 가르치는 학교 같은 곳

이런 학교들이 많이 보인다.


숭산 트레킹


소림사 무예공연


소림사 주변의 모습

 

아래는 소림무술에 대해서...위키 백과에서 관심 있는 남자분들만 보시길...여성분들은 관심이 없을 것이므로

소림 무술이 처음 창시된 시기는 당나라 때로 전설에 따르면 이세민이 왕세충과 싸울 때 13명의 소림사 승려들이 봉술을 써서 그를 도왔다고 한다. 이후 명나라 초기 사료에 따르면 원나라 말기에 소림사를 홍건적들이 습격해서 불상의 금박을 벗기고, 복장유물(腹藏遺物)을 찾기 위해서 불상을 파괴해서 승려들이 다 도망가고 홍건적의 난이 진압될 때까지 한 명도 못 돌아왔다고 한다.

 

실제로 소림 무술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시기는 명나라 가정제 때부터로, 이때 유대유의 '정기당집', 하양신의 '진기' 등 일부 사료에 소림 무술이 등장하며, 정기당집에 따르면 유대유가 소림 곤법가 창시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소림사를 방문하니 이미 소림사의 무술이 크게 쇠퇴해 있었기 때문에 승려 2명을 군대로 불러서 3년간 곤법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즉 소림 무술이 이전에도 존재한 건 사실이나, 이전 사료에는 나오지 않았던 소림 무술에 대한 사료들이 이 시기에 들어와서야 갑작스럽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볼 때, 실제로 소림 무술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바로 가정제 때부터일 가능성이 높으며, 중국 무술의 원류라는 이야기도 명확한 근거는 없고 현대에 들어와서 유명해진 소림사 봉술도 이때 이후 정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소림사의 대표무술이 곤법이 되었고, 소림사는 외부의 무술들을 받아들여서 양적 성장을 하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림사가 총괄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각 말사에서 알아서 수련하기에 적당한 것을 골라잡아서 수련했다. 당연히 소림사 사내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무협소설에서 소림사만 72종 절예 운운하면서 양으로 때우는 경향이 보여주는 것도 이런 영향이 있기 때문.

 

소림사가 초창기에 무술로 유명해진 계기는 다음과 같다. 승려들이 자체적으로 무술을 익히고 있는 와중에 무술 실력이 뛰어난 걸인, 맨주먹으로 살인을 하고 현상수배당한 범죄자, 낙오된 도적패, 멸망한 나라의 장수 등등 온갖 부류의 무술인들이 숨어 살거나 밥을 얻어먹기 위해 이곳에 유입되었고, 그들의 노하우가 소림사에 점점 쌓이게 되어 오늘날의 소림사 무술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쇠퇴하고 다시 재건되었다. 이렇게 흘러들어간 사람들 중 유명한 것이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난징군구 사령관을 지낸 쉬스유가 있다.

 

그나마도 1928년 1차 장풍전쟁 중에 장제스 편을 들어 참전했다가 펑위샹의 부하 스유싼에게 승려들이 학살당한 후 소림사가 불타버린 사건이 있으며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 때 완전히 박살이 나서, 현재 소림사에서 가르치는 무술은 무당파와 마찬가지로 99% 다른 곳에서 끌어온 무술이라고 한다.

 

최근 중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림무술의 시조는 소림사 2대 주지인 초우선사라고 한다. 달마 당시에는 소림사란 절은 없었다고.

숭산 외에 다른 지역에도 소림사라는 이름이 붙은 절이 있는데, 숭산의 소림사를 따라한 것은 아니고 단지 이름이 같은 것일 뿐이다. 그 중에서도 복건성 천주의 소림사는 숭산의 절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남소림사라고도 불린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소림사는 현재는 중국 정부의 공인 체육 교습 기관이다. 그것도 최고 담당자인 주지스님이 정부와 바로 닿아있는 탓에 생각보다 파워가 세다.

중국 각지에서 학생을 받아서 3가지로 문파를 나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전통적인 방식의 승려 양성 코스. 다른 하나는 무술 수련 코스, 나머지 하나는 바로 무술 시범단이다.

 

이중에서 흔히 말하는, 무술을 할 줄 아는 소림사 승려가 2번과 3번 부류다. 이들은 체력유지 차원에서 고기도 먹을 수 있는데다 기본적으로 승려 생활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복장만 승복이다. 3번의 경우도 대체로 화려한 동작이나 시범용 기술들을 주로 수련하기에, 실제로 격투기로서 무술을 배우는 쪽은 2번 부류다.

 

중국 절이라 중국 무술만 배울 것 같지만, 소림사를 취재한 여러 다큐멘터리를 보면, 하룻동안 수업시간에 따라 중국무술도 배우고, 그 다음엔 복싱을 배우고, 그 다음엔 태권도를 배우고, 가라데를 배우는 식으로 돌아가면서 다양한 무술을 배우기 때문에 실은 종합무술 수련반이다. 무에타이나 유도나 삼보 같은 그래플링도 배우긴 배우는데 이것은 2번의 무술수련 코스만 배운다. 무술 시범단은 태권도, 공수도까지는 배우지만 무에타이나 그래플링류 격투기는 배우지 않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태릉선수촌 비슷하게 엘리트 체육인 양성코스라 졸업생들은 대개 스포츠계(주로 격투기 종목)나 군인, 공안(경찰), 사설 경호업체, 영화배우 등으로 진출한다고… 영화배우가 되면 주로 액션 장르에서 맹활약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무술 이외에도 와이어 액션도 가르친다.

 

해외여행을 가도 체험할 수 있다. 소림사찰 주변의 수많은 무술도장에서 달러 기준 30달러 정도를 지불하고 2시간 정도의 인스턴트식 교육을 통한 공인 4급 무술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으면 근처 무술도장에서는 2015년 현재 월 60만원 정도 (숙식 포함) 정도가 들어간다.

 

봉술과 검술은 보험작성으로 인해 1시간 더 시간을 끌며 무기대여료가 들어간다. 어지간하면 형의권 계통 코스를 밟길 추천한다. 가격대가 싸고 시간도 비교적 적게 먹으며 증명서라고 오는 패와 카드가 제법 폼난다.

또한 근처에는 각종 무기를 팔고 있다. 없는 게 없다. 단, 세관에서 걸리니 주의.

 

소림사 근처를 지나가는 외국인을 보면 그럴듯한 옷차림을 한 지역주민이 갑자기 나와서 "비장의 소림 무술을 가르쳐주겠다..."라고 무술 강습 삐끼를 하는 경우가 가끔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영어로 권유하는 경우도 있다고. 따라가지 말자. 사기다.

 

흠좀무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2009년, 금녀의 공간인 절 내에서 수영복 차림의 여성 모델들이 세계관광대사 선발대회를 위해 모이고, 또 2007년에는 9명의 여성 무림고수가 탄생했다.

"뭐야? 지금까진 세계유산이 아니었어?" 하는 생각이 들지만, 2010년에 들어서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다고 한다.

 

2010년 12월 14일 이룽이라는 소림사 고수가 중국 허난성 방송국의 주최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무림풍 무술대회에 나갔다가 북미 해병대 출신 복서 에이드리언 그로티에게 KO로 뻗은 것 때문에 소림사는 전 세계적으로 개망신을 당했다. 제법 요란하게 열린 행사였으나 떡밥급의 상대에게 관광을 당했고, 급기야 소림사 측에서도 '이룽은 정식 승려가 아니다'라는 식의 뻥으로 수습에 진땀을 뺐다.

이룽은 2013년 8월 10일에 열린 쁘아까오와 매치를 벌였는 데, KO 패배를 안겨주었다고 유튜브를 통해 알려졌지만 페이크다. 매치는 이룽을 띄워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무에타이 파이터는 쁘아까오도 아니다. 더불어 경기 분위기도 코믹이었다. 쁘아까오가 정말로 산타의 고수와 싸우는 경기에서는, 쁘아까오가 산타 고수를 보기 좋게 작살냈다.

 

ㅎㄷㄷ 결국 2015년 6월 6일에 두 선수가 경기했고, 쁘아까오가 판정승을 거뒀다. 그러나 의외로 꽤나 접전인 경기였다. 이룽은 2015년 10월 기준 25승 1무 7패로 제법 괜찮은 전적을 가지고 있다. 한국 선수 몇 명도 꺾은 경험이 있고, 본인에게 굴욕을 안겼던 에이드리언 그로티에게 판정승하면서 리벤지에 성공했다.

 

소림사는 대부분의 다른 권법들을 교습하는 방식과 전통 단련법들을 지도하곤 하는데 무당산처럼 그 전래의 권법이라고 할만한 것은 많지 않다. 꼽자면 소림 심의파와 소림72예라는 단련법, 그리고 소림곤법천종 정도. 소림72예는 신체를 단련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모은 공법이 72가지라서 붙은 이름인데 요즘 헬스클럽에서 하는 웨이트 같은 방식부터 일지선 같은 초능력같은 공법, 건강체조에 눈 좋아지는 수련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수영도 있다. 뭐 옛날에는 군사훈련 때 무술 다음으로 많이 한 것이 수영이었다는 카더라도 있으니. 서림 문화사에도 나온 책이 있으며 중국에서도 출판된 적이 있다. 소림 일지선의 경우는 만화 권아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공법.

 

소림 심의파의 경우는 해당 문서로. 소림72예와 심의파, 소림곤법천종 정도가 소림의 원류 무술이라고 볼 수 있다. 뭐 사실 소림 72예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철비박, 쌍쇄공 처럼 다른 유파에도 있는 수련법들도 많긴 하지만...

소림사는 백두산에 사찰건립을 검토 중이다.

 

소림곤법천종의 곤법 같은 경우도 유대유에게 다시 배운 것이 확실하나 그 후 세월이 오래 흘렀고 새롭게 손도 본 만큼 소림사의 것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없다.

 

후술할 주지스님의 추문과는 별개로, 허난성의 소림사가 축구선수 양성에도 나서고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와 허난성은 소림국제축구학교를 건립하는 등 20억 위안(4,710억여원)을 투자할 예정이며 소림사를 무술의 메카이자 축구의 메카로 만들어 중국판 메시를 발굴, 양성하려는 계획이라고 한다. 쿵후축구 활성화 또는 소림축구 2탄 제작은 아니겠지?

주지스님

 

이른바 'CEO 주지'로 불리는 스융신(釋永信)이 1999년부터 현재까지 소림사의 방장을 맡고 있으며, 전폭적으로 소림 무술을 세계에 알리고 사업화하고자 노력을 기하고 있다. 소림사 자체를 브랜드화하여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한다.[12] 주지스님의 정책에 따라 인근의 잡상들과 무술 도장들이 많이 사라졌으며, 순수하게 수련생들을 받는 추세라고 한다.

 

2015년 8월 스융신의 성추문 의혹으로 인해 상당한 파장이 일고 있다.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에 따르면 8월 1일 성추문 의혹을 받고 있는 방장이 관련된 '재산·치정 사건 진술서'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별개로 점차 초심을 잃고 세속화되는 소림사의 모습을 성토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