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을 하면서 가장 유심히 보는 것들.
내가 여행을 하는 목적은 그곳의 자연경관을 보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러 가기 위해서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처한 자연환경과 지금까지 축적해온 지식과 도덕율 위에서 갈아가게 된다.
그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연환경도 있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믿고 살아오고 있는 종교가 어떤 종교인가에 따라
삶의 방식도 달라지고 따라서 삶의 질도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이 그들의 종교가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들의 삶에 그 종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가혹한 교리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문화권이나 힌두교 문화권 등 현실과 괴리가 있는 교리의 종교들의 지배
를 받아온 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편이다.
인도나 파키스탄 등 등...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가 타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이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정복을 하게 되면 그 이전의 종교를 박해를 하거나 축출
을 하고 그 종교의 유산들 곧 문화재나 유적들을 훼손하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되는데, 이번 10월에 로마를 다시 들렀을 때 로마의
유적들을 둘러보면서 로마신화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종교들중에서 극단적인 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면 타종교에 대해서 무자비하거나 관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종교의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것을 현대에서도 보게 되었는데 1960년대 중국 공산당의 홍위병들이 중국의 유교문화유산을 파괴한 것이
나 아프가니스탄의 텔레반이 불교유적을 대포로 회손하는 것을 직접 뉴스로 보기도 했었다.
기독교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배타적인 종교로 기독교가 국교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신화 시대의 유적들을 많이 남겨 놓
은 것은 인류에게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기독교적인 유일신관(唯一神觀)을 견지하는 입장에서 보면 다신론(多神論)의 로마신화의 신관은 용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
문에 그런 유적이나 유물을 남기는 것이 남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신전을 허물어서 교회를 짓기도 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파괴를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2 바티칸 박물관에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보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가룟 유다의 배반을 떠올리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품은 밑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으로 기독교적인 상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참으로
대단한 그림이 아닐 수 없는데 최후의 만찬과 항상 같이 거론되는 그림이 미켈란젤로와 버금가는 예술가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이다.
바티칸에서 같이 보았더라면 좋았을 뻔 하였지만 최후의 만찬 그림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의 벽화로 그려진
그림이라서 같이 볼 수는 없었다.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그림은 직접 보았으나 최후의 만찬은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와 열두제자가 예수가 잡혀가지 전에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는 그림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열두제자의 성
격을 추정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열두제자들의 그림 중에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예수의 오른쪽에서 베드로에게 머리를
기대고 있는 사도 요한이라는 제자이다.
왜 여자의 얼굴로 그렸을까 하는 것과 만약 여자의 얼굴이라면 누구의 얼굴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여자라면 막달라의 마리아
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만 아는 비밀일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예수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요한은 여자의 얼굴로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일 것이라고도 한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단어는 성서에 나오는 말은 아니고 다 빈치가 그린 그림 때문에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예수가
로마병정에 잡혀가기 전 제자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제자들에게 한 말들을 성서에 기록해 놓은 것이다.
다빈치가 예수의 마지막 식사를 그림으로 그린 목적은 사실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가 죽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만약 가룟 유다가 은30 냥에 예수를 판다는 성서의 내용이 없었더라면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최후의 만찬의 주인공(?)은 예수가 될 수도 있지만 가룟 유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룟 유다는 정말 예수를 은 30냥을 받기로 하고 팔았는가와 만약 팔았다면 왜 배신을 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가 있어야 하
는데, 성서의 기록에 대해서는 성서의 내용과 다른 해석을 할 수 없도록 못을 박아 버렸기 때문에, 옛날에도 왜 그랬을까 하는 사
람이 있었겠지만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인 베드로에게 찾아가서 제자가 될 것을 권유하였던 것처럼 예수는 손수 찾아가서 제자들을
삼았었는데 가룟 유다는 스스로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가룟 유다는 로마에 속국이었던 조국의 독립운동을 하던 열심당원으로 활동하다가 예수가 능력자라는 소문을 듣고 스스로 제자
가 된 사람일 것으로 추정한다.
유대사람들은 선민이라는 의식이 강했었고 로마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로마의 지배를 벗어나기를 원했을
것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열심당원이었었고
열심당원이었던 유다는 물위를 걷고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고기를 가지고 5천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능력자인 예수는 자신
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예수는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난 뒤 제일 먼저 한 말이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말이었으니 얼마나
고대하던 사람이었겠는가...
유다가 예수의 제자가 되고 난 뒤에 곧바로 중책을 맡게 되는데 재정을 맡게 되었다. 예수의 제다들 중 대부분이 어부들이었는데
유다는 열심당원이었던 것으로 보아 의식화가 되었던 사람이었을 것이고 머리에 든 것이 있었던 사람이었으며 샘도 빨랐다고 한
다.
그 당시의 예수는 가난했었기 때문에 기부를 받아서 제자들과 생활하고 움직였을 것이며 그것을 책임지는 일은 재정을 담당한 유
다가 해야 하니 없는 살림을 꾸리는 일이 힘들었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늘 돈에 쪼달렸을 것이고... 그래서 마리아라는 여인이 3백데나리온이나 하는 향유를 예수의 발에 바르자 그것을 발에 바
르기보다는 팔아서 돈을 만들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 것인데 하는 불평을 하게 된다.
성서학자가 아니니 유다가 예수와 더불어 얼마나 같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유다는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행보를 걷는 예수에게
실망을 하기 시작했었는데 천국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 속에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스승에 대해서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성서에는 이런 내용도 없고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는 이야기와 은 30냥에 팔기로 했다는 내용과 돈에 욕심이 많았다는
내용만 있다.
성서에 기록된 이야기는 후세인들이 기록한 내용으로 사탄의 사주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을 배신할 제자를 예수가 선
택했다고 하면 예수의 안목을 비난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가롯유다는 예수와 함께 하면서 자기가 바라는 조국의 독립이 스승인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아지자 마음이 멀어지
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도 가룟 유다가 자기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과 유다가 바라는 바가 같지
않음을 이야기 하였을 것이고 그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썼지만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다가 마음을 돌리지 않자 차라리 너는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했구나 하는 책망의 말씀을 하게 되었는데....
성서에 의할 것 같으면 유다의 배반과 상관이 없이 예수는 죽을 수밖에 없도록 예정되어있다고 하니 예순의 죽음은 사실 유다의
배신과 상관이 없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게 되는 것은 유대민족의 지도층이 배신을 하였고 로마가 그를 위험인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유대민족의 입장에는 자신들의 민족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목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스스로 메시아를 칭하
고 있으니 용서를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유대민족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BC 400년 경에 말라기라는 선지가자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메시아가 올 때는 내가 다
시 내려오겠다고 한 말라기라는 성서가 있어서, 말라기라는 선지가가 불수레를 타고 오기만을 목이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느닷
없이 하챦은 신분의 청년이 스스로 메시아를 칭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요즈음 말로 하면 죽어 마땅한 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로마의 입장에서도 유대는 총독을 파견하고 유대민족의 왕이 통치를 하게 했는데 다른 지역보다 더 강성이어서 조용할 날
이 없었던 곳이다. 그래서 국민을 선동하는 예수는 로마의 입장에서도 살려두어서는 안 될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유대민족 지도
자들과 로마는 공통의 목적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예수를 잡아 죽였던 것이다.
성서에서는 유대민족의 지도자들과 로마병정들이 예수의 얼굴을 모르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성서에는 유다가 예수의 손에 입을 맞추자 예수인 줄 알고 잡아갔다고 되어 있는데 유대지도자들과 예수의 손에 입을 맞추기로 했
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욕심이 많은 유다가 은 30냥이 탐이 나서 예수를 팔았다고 되어 있는데 그럴 리는 없었을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유다의 은 30냥은 상관이 없겠지만 만약 정말로 그런 조건으로 예수를 알려 주기로 했다면 이런 추측은 가능할 것
이다.
유다도 예수가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니 궁지에 몰리는 상황을 만들면 기적을 행해서 그 상황을 모면할 것이라고 생각했
을 하고 시험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유다의 입장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자신의 몸 정도는 지킬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
이니....
교회는 성서의 내용에 대해서 확대해석을 하거나 임의 해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유다는 사탄이 들어와서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서
예수를 배신한 것으로 알고 있고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예수가 로마 병정에세 순순히 끌려간 것은 유다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유다는 이 사건의 하나의 도구로 등장하였다는 생각이
다.
유다는 예수가 순순히 잡혀가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데 스승에 대한 죄책감이라고 스승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능력자라고
믿었던 예수에 대해서 절망하여 그 절망감에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성서에서는 유다가 배신자로 나오지만 유다의 입장에서는 예수가 배신자의 입장인 셈이 아닌가...
자신의 꿈을 절망시킨....
꿈을 잃어버린 유다는 그래서 자살을 선택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중세 같으면 목이 날아가거나 최소한 감옥에 살 수 있었지만 세월이 좋아서 얼마든지 내 생각을 말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가...
참 좋은 세상이다.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왜 어떻게 라는 눈을 가지고 사물과 사건을 보는 훈련을 하게 되면 본질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볼 필요도 없다.
여행을 가서도 마찬가지이다.
눈에 보이는데로 보지 말고 본질을 보는 훈련을 하면 이런 상상력도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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