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잘 살아가는 이야기

이 때문에 야기되는 고통은 가난한 자의 몫으로

뿅망치 2019. 7. 4. 20:39

국가 간에는 선량한 이웃도 없고 정의도 없으며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는 부당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면 개인보다 월등히 우월한 힘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개입을 하여 시시비비를 가려주겠지만, 국가 간에는 힘 있는 국가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존재가 없기 때문에 그 국가가 이웃의 국가에게 부당하게 하더라도 제제할 방법이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제기구를 만들었지만 지극히 제한적으로-명분상이나 자신들의 국가에 이익이 될 때-를 제외하고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금 유엔도 마찬가지로 소위 상임이사국이라는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으며 세계의 평화나 약소국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입장은 아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억울하지 않고 안전한 국가로 남아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한 나라가 되거나 선량한 이웃국가를 만나야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에 불과할 뿐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 이웃 나라를 둔 국가들은 항상 그 나라에 시달림을 받아왔고 지금도 그런 상태이며 앞으로도 그런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그런 시달림을 받게 될 것이다.

 

인간이 본성이 선량하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인간의 본성이 선량하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선량하지 못하기 때문에 강대국이 자국에 불이익이 발생하면 언제라도 주변국을 핍박하게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어느 곳이든 그렇지 않은 곳은 없었으며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이웃의 국가들이 우리보다 강한 국가들이다보니 아픈 역사를 간직할 수밖에 없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런 운명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 길을 타파하는 길은 그 나라들보다 강해지거나 강대국들의 관계를 적절히 이용하여 소위 줄타기를 하는 방법 밖에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자신의 처지를 무시하고 강대국의 부당한 대우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하게 된다면 결국은 멸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양보를 할 수밖에 없고 참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명하게 살아남을 방법이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힘이 약한 사람이 힘이 강한 사람에게 정의와 공평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국가 간에도 이런 관계는 적용될 수밖에 없으며, 국제기구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힘이 약한 나라는 상대방 국가보다 더 힘이 강한 국가의 보호 없이는 마찬가지로 정의나 공평을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의 과거의 잘못과 현재의 부당함에 대해서 아무리 바로잡고자 하더라도 상대방 국가에서 수용을 하고 개선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지금 중국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무례하게 굴고 우리 기업에 대해서 횡포를 일삼지만 제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도 과거의 잘못을 아무리 뉘우치고 사과하고 보상을 하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들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아닌 과거의 일을 현재까지 끌고 와서 사과를 요구하고 보상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힘이 강한 나라의 입장에서 수용할 리가 없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사과하고 수용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국가는 절대로 수용을 하지 않을 것이며 지금 일본도 그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력이 일본을 능가한다면 일본이 저리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무례함이나 뻔뻔함 부당함 등을 아무리 우리가 국제사회에 대고 주장해 보았자 결국 우리가 그들을 굴복시킬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강제징용의 노임에 대한 문제도 우리가 아무리 주장하고 판결을 내려 보상요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우리의 주장에 그칠 뿐 그들이 수용할 리가 없을 것이다.

일본은 공공연하게 우리나라의 대법원이 징용에 대한 임금문제로 자국기업에 불이익을 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분명히 이야기를 했고 결국은 경제보복이 시작되었다.

우리정부도 일본이 경제보복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리 했겠지만 결국 경제보복을 하게 되면 상호보복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그리하면 모양새 빠지게 어느 한쪽이 굴복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미국이 화웨이 기업문제로 중국에 경제보복을 하기 시작하자 중국도 맞보복으로 맞섰지만 역부족으로 수세에 몰리는 입장이다.

국제사회에 아무리 호소를 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그 제제를 풀지 않으면 중국과 미국이 그로 인한 타격을 입고 그 여파가 세계경제로 미치게 되며 약소국가들은 당사국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 현대사회의 경제 시스템이다.

중국과 미국의 고래 싸움에 우리나라는 새우등이 터지는 중인데 설상가상으로 일본까지 경제제제를 하기 시작하면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물어볼 것도 없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타격을 입는 계층이 빈민층이고 그 다음이 서민층이다.

소위 말해서 강남의 부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제사 수십 년 마이너스의 길을 가더라고 그들이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일자리부터 감소가 시작되고 해고나 기업을 패업으로 인해 실업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으며 제일 먼저 해고가 되는 사람들은 사회의 약자들이다.

그들은 정치나 국제사회나 국가의 체면보다는 생존이 더 시급한 문제인 사람들로 지금도 서민에서 빈민으로 전락하는 비율은 점점 늘어나게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일본기업에 압류를 한다면 이런 대응을 할 것을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으로 만들어갔다면 우리나라의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었어야 한다.

두 나라가 동등한 피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경제규모가 일본이 1/4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서 4배 이상의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응을 할 것을 뻔히 알면서 이런 상황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일본이 저렇게 대응하는 것이 비신사적이고 야비하지만 국가와 국가 간에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중국(그 당시는 중공)과 수교를 하기 위해서 1992.8.24.일 일방적으로 단교를 한다고 통보를 하였다.

갑자기 뒤통수를 맞았던 대만은 우리에게 이를 갈았었고 지금도 대만은 우리를 심정적으로 용서를 하지 않고 있고 할 수도 없다.

국익을 위해서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린 대한민국을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국가는 개인과 다르기 때문에 감정적인 문제로 국력이 약해지거나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감정을 마음속으로 가라앉히고 뒤통수를 친 나라와 교류를 할 수밖에 없다.

대만이 한국보다 국력이 약하고 국제적인 위치가 우리나라보다 더 위태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 국가 간의 관계인 것이다.

 

이길 수 없는 상대임을 알면서도 정의를 내세워 정면대결을 선택한다면 개인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용기에 대해서 찬사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기만 국가 간에 그런 행위는 자해행위나 만찬가지이다.

 

역사적으로 무모한 전쟁 중의 하나가 파라과이의 독재자 로페즈가 1865년 가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연합군과 전재을 벌여서 결국은 패하게 되자 협상을 하지 않고 1870년 죽을 때까지 게릴라전을 계속하여 55만 명의 인구가 22만 명으로 줄었으며 남자는 28천 명만 남게 되었다.

남자 10명 중의 9명이 전쟁으로 죽었고 그 결과 많은 영토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우루과이에 넘겨주게 되었다.

한 사람의 독재자의 고집 때문에 파라과이의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당하고 고통을 겪었는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과거를 바로잡고 잘못한 상대방에게 사과를 받고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국력이 강한 상대가 응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명운을 걸고 그렇게 해야 하는가는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국민이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더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사과와 많지 않은 보상을 받기 위해서 경제가 나빠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생각은 각자 자유로운 것이지만 결국 명분을 세우기 위한 고통의 대가는 젊은이들과 서민들의 몫이라는 것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