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5개국 남미 여행기(보충)

45일의 남미5개국(페루, 볼리비아, 칠레,르헨티나, 브라질) 여행기(55)아르헨티나(11) 부에노스아이레스(3) 시티투어..에바페론의

뿅망치 2019. 9. 5. 20:58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이틀 만에 다 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어진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것만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곳에 대한 정보를 가기도 있어야 하며 많은 내용 중에 쟈신이 보고  싶은 것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그 순서대로 행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독 여행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고 몇 명이서 같이 하는 여행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

결국 대중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혼자 다니다가 출발하는 시간을 못지키게 되면

 여행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2층에 타면 구경하기는 좋은데 햇볕이 따갑다.(인터넷에서)


어떤 도시에 가게 되면 그 도시를 전체적으로 둘러보기 위해서는 먼저 시티투어버스를 타는 것이

  좋은데 그 버스는 보통 30분 정도의 간격으로 정해진 코스를 순회하기 때문에 보고 싶은 곳에

내려서 보고 다음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면 가장 쉽게 이동할 수 있고 이 버스들은 그 도시에서

가 보아야 할 만한 곳을 거의 다 돌기 때문이다.

 

저녁에 아르헨티나 이과수로 가는 버스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그 시간동안 어떻게 효과적으로

 도시를 구경할 것인가를 논의한 끝에 시티투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어제 우리가 갔던 리퍼브리카 광장과 오월광장과 라보카(탱고거리)거리와 공원들을 순회한다.

우리가 어제 들렀던 곳은 패스를 하고 산 마르틴 공원을 들러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씨티투어버스에서 보는 시내...어디인지는 잘

오월광장..건너 대통령궁이 보인다

이런 꽃들이 많이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지 못해서 무슨 꽃인지는 모름...봄이 오고 있는 중이다.

오벨리스크가 있는 반대편으로 벽에 에바 페론의 얼굴이 보이는데 밤에는 네온불이 들어온다

카사 로사다 뒷편인 듯

국회의사당?...버스 위에서 지나가면서


어제 들렀던 보카 거리를 지나간다.

길거리에서 보는 한국기업의 간판...국내에서는 욕을 하더라도 외국에서 보면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지붕이 없는 2층 버스는 햇빛이 강렬하기 때문에 덥기도 하고 이곳에서 공원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건설 된지 오래된 도시여서 가로수나 공원에 있는 나무들이 수령들이 백년들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나무들이다.



이 도시에는 이런 공원들이 많이 있다고...산 마르틴 공원

산 마르틴 광광의 마르틴 장군의 기마동상

공원의 나무들

아무리 멀리서 앵글을 잡아도 다 들어오지 않는다

아마 도시가 만들어질 때 심어진 나무들이 아닌지 가로수들도 이렇게 생겼다.

 

참고로

호세 데 산 마르틴은 1778년 2월 25일 아르헨티나 코리엔테스 주의 야페유에서 태어났고 7살의

어린 나이로 에스파냐 마드리드의 귀족 학교에서 수학했다.

1808년, 에스파냐(스페인)군에 입대하여 프랑스와 싸웠으며 바일렌 전투나 알부에라 전투 등에

 참가하면서 산마르틴은 남아메리카 독립 지지자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1812년 그는 영국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서 남아메리카 합중국(오늘날의 아르헨티나)에 투신했다.

1813년 산 로렌소 전투 이후 1814년 북부군을 지휘하기도 하면서 그는 리마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호세 산 마르틴


1817년 그는 멘도사에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로 갔다. 그리고 차카부코 전투와 마이푸 전투(1818년)에서

에스파냐 군대를 물리치고 1819년 칠레의 독립과, 1820년 페루의 독립을 성공시켰다. 산마르틴은

1822년 7월 22일 이곳 부왕령의 수도를 부분적으로 장악했으며, 페루의 보호자가 된다.

페루의 독립 선언은 공식적으로 1821년 7월 28일에 이루어졌다.

 1822년 7월 22일 에콰도르 과야킬에서 동료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와 밀실에서 만난 뒤, 볼리바르는

페루를 완전 해방하는 과업을 맡는다. 산마르틴은 갑작스레 페루를 떠나 군대 지휘관직을 그만두고

 정계와 군대에서 물러났다. 그는 1824년 프랑스로 갔다

그 후 고국에서 중앙 집권론자의 비난을 받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가난한 생활을 하던 끝에 볼로뉴에서 사망하였다.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에스파냐로부터 남아메리카를 해방시킨 영웅이자 아르헨티나 국민의 아버지로 높이 추앙받고 있다. 그를 기린 해방자 산마르틴 장군 훈장(Orden del Libertador San Martín)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훈장이다.

남미의 해방은 산마르틴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으로 페루와

 아르헨티나에서 국부로 추앙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공원주변의 거리모습들

아파트 중간에 꽃으로 벽을 만들어 놓은 아파트

   

지금 이쪽은 우리나라의 4월에 해당하는 지역이라서 꽃이 피는 나무들이 많이 있는데 자카란다로만

 심어진 거리가 있는데 이제 꽃잎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 남미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점 하나가 자카란다(남미에서는 하카란다로 불린다고) 꽃이 활짝

핀 거리를 보지 못한 것이다.

 

죄측에 있는 나무들이 자카란다 나무들로 이제 꽃입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퍼온 자카란다가 피어 있는 거리..남아공이나 호주에는 자카란다 거리가 있다...제주도에도 만든다고 한다.


자카란다 거리 맞은편에 우니다스라는 작은 공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플로라리스 헤네리카(Floralis Generica)라는

금속으로 만든 커다란 꽃이 있는데, 낮에는 열렸다가 밤에는 닫혔다가 한다고 한다.

 햇빛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고 전기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 공원 안에는 예쁜 꽃이 핀 나무들도 있어서 꽃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한다.

 

플로라리스 헤레리카

꽃을 손으로 들고 있는 것 같이 해서 한 컷...타지마할에도 가면 이런 사람들 많다.


우니다스 공원안에 있는 꽃나무들




리콜레타로 가는 길의 버스에서...천천히 좀 달렸으면


가는 길에 보이는 모습들


꽃이 많은 아파트


다시 버스를 타고 오늘의 마지막코스인 아르헨티나의 귀족들이 묻힌 묘지인 리콜레타로 갔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오는 사람은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들리는 곳이다.

공휴일이어서 공원마다 사람들이 많다.



길거리의 나무들


리콜레타 맞은 편에 있는 공원  노점삼들이 전을 벌렸다.

 

이곳에 에비타의 주인공인 이사벨 페론의 묘소가 있어서인데 그 묘소가 어디인가를 물어볼 필요도 없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쪽으로 따라가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묘소는 가족묘소로 그렇게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고 오히려 다른 묘지들보다 적은데

이사벨 페론의 얼굴이 부조로 되어 있다.

그 리콜레타 담장 건너편에는 전형적인 공동묘지의 모습인 일반인들의 묘지가 있는데 화려한 귀족들의 묘지와는 비교가 된다.

 

에바 페론의 묘지

언제나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몰린다....에비타의 영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묘지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인지 잘 모를 정도이다.


묘지 밖은 공원으로 그날이 마침 일요일이라서 노점상들이 많이 늘어서 있고 노점상들을 찾아온

사람들과 공원을 찾아온 사람들로 붐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탱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어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준다.


묘지 밖에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

 찻잔으로 마테차를 마시기 위한 찻잔인 듯



탱고춤을 추다가 관광객들에게 사진도 찍어주고... 


탱고를 추는 남녀들 공원마다 길거리마다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