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급급한데 그런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어차피 생각해본다고 한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인지를 알 수가 없을 것인데 무엇하러 생각을 하겠는가? 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은 철이 들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기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죽을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은 죽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게 된다.
만약 자신의 죽을 날짜가 알려 진다면 그 때부터는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된다.
1. 죽으면 그만이며 천국이나 지옥도 없고 영혼도 없다는 생각이 확실한 사람이라면.
남은 인생을 그냥 즐겁게 살다가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본능대로 살아가면 된다.
이기적이라든가 이타적이라든가 이런 생각초차 할 필요가 없다.
남의 눈에 피눈물이 나든가 말든가 자신만 즐겁고 만족하면 그만이다.
자신이 죽어서 이미 육신은 연기로 돌아가서 흩어졌기 때문에 남아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남아진 자녀도 염려할 필요도 없고 염려할 수도 없다. 죽어서 아무것도 없는데 생각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 죽으면 그만이 아니고 육신은 없어지지만 영혼이 있어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며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았던 결과에 따라서 가는 곳이 달라진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도적적인 삶과 성실한 삶으로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고 가능하면 남을 도우면서 신이 세운 질서의 범위 안에서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지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의 결과에 따라 다음으로 가는 세상이 달라지게 된다면 아무리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배우고 익힌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규범의 틀을 벗어나는 행동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삶, 무신론자의 입장도 아니고 유신론자의 입장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친구의 부모의 장례식장(지금은 친구들도)에 가서 문상을 할 때 하는 인사가 ‘고인(故人)의 명복(冥福)을 빕니다.’
여기서 명(冥)이라는 단어는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을 의미하며 명복을 빈다는 말은 저 세상에서의 복을 빌어준다는 의미이니 죽은 뒤에 가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 의례적인 인사일 뿐 정말로 저세상에서의 삶이 있어서 그런 인사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티베트는 1959년도에 중국이 점령하여 티베트 자치구로 되어 있는데 티베트는 불교국가이다.
2009년 티베트를 갔었는데 티베트는 고산지대로 지구상에서 최고로 높은 곳에 있는 호수가 있는 나라로 풍광은 황량하지만 사람들이 찾는 이유중의 하나가 티베트불교의 본산이 있기 때문이다.
가서 고산병(高山病) 때문에 있는 1주일 동안 고생을 했지만 티베트 포탈라궁과 조캉사원(大昭寺)등 티베트의 불교사원들을 다 들러보고 왔었다.
이곳은 중국이나 다른 먼 곳에서부터 3보일배(三步一拜)를 하면서 중국이나 다른 먼데서부터 오는 순례자들의 마지막 종착지가 조캉사원으로, 무슬림들이 평생에 한 번 순례를 하기 원하는 메카나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것만큼이나 티베트 불교에서는 중요한 곳이다.
이 티베트 불교를 인도에서 전파한 사람이 ‘파드마 삼바바(蓮華生上師)’로 부처님이 입적하실 때 ‘파드마 삼바바’ 라는 이름으로 환생하겠다고 하였다고 하며 8세기경에 탄드라 불교를 티베트에 정착시킨 스님으로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의 저자로 더 알려진 사람이다.
참고로 ‘티베트 사자의 서’는 사람이 죽고 난 다음 49일 동안 환생할 때까지의 과정을 적어 놓은 글이다.
이 파드마 삼바바가 한 말 중의 가슴을 뜨끔하게 만드는 한 마디의 말이 있는데 그 말이 가슴에 남아 있어서 되새기고는 한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해서야 비로소 준비를 시작한다.
죽음이 닥치면 그들은 회한으로 인해 날뛰게 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지 않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다가 죽음이 자신에게 가까이 올 때 비로소 뒤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이 언젠가가 아닌 반드시 죽는 존재라는 것을 늘 인식히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죽음이 언제 오더라도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게 되며 따라서 자신이 죽고 난 뒤의 세상에 대해서 미련을 가지지 않게 된다.
재물, 명예, 직위, 심지어는 가족에 대해서도...
우리가 여행을 하는 목적은 그저 좋은 경치를 보는 것만이 아닌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 제일 우선이 되는 여행이 가장 좋은 여행이다.
나는 관광을 가든 여행을 가든 즐기기 보다는 견문(見聞)을 넓혀서 내 생각과 생활이 변화가 될 수 있는 여행을 한다.
티베트나 네팔 등 오지(奧地)를 찾아가는 여행을 우선으로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루 24시간 중의 지극히 일부를 할애하지 못한다면 한 달 중의 일부, 그것도 안 된다면 적어도 상가에 가거나 제사를 지낼 때만이라도 자신도 죽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장애물이 많이 없어지게 된다.
젊었을 때부터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다가 보니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에 대해서 욕심을 가지지 않게 되고 삶이 많이 가벼워졌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사라지게 될 것인데 목숨을 걸고 추구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오늘도 오전에 중학교 동창의 부고를 받았는데 카톡방에서 열심히 명복들을 빌고 있는 글을 본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사실은 무신론자들이라는 것이다.
무신론자라기보다는 자신이 무신론자인지 유신론자인지 생각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무책임한 사람들이 아닌가?
늘 생각하면서 살고 있지만 형식적으로 명복을 비는 사람들을 보면서 주절거리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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