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코람하이웨이 그리고 실크로도 30일 배낭여행

카라코람하이웨이 그리고 실크로드 30일 여행기(88)...잘린 자신의 머리를 들고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는 곳 샤히진다

뿅망치 2025. 2. 20. 00:13

사마르칸트 유적지는 걸어서 구경할 수 있게 다 가깝게 있다

 

샤히진다(Shah-i-Zinda) 는 영묘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전설에 의하면 이곳의 역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인 쿠삼 이븐 아바스

(Kussam-ibn-Abbas)가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는 소그디아나 지역을 개종시키기 위해 이곳에 도착했다고 하는 6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그가 기도하는 동안에 조로아스터교도들이 그의 목을 베어버렸는데, 쿠삼은 자신의 머리를 들고 깊은 우물 속

으로 들어갔으며,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쿠삼은 사마르칸트에 와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이후에 아랍인들이 이슬람 이전 시기부터 있었던 지하에서 저승

세계를 다스린다는 왕의 신화를 차용하여 샤히진다(Shah-i-Zinda '살아 있는 왕'이라는 뜻이다)에 대한 숭배를만들어서 이곳의 이

름이 샤히진다가 되었다고 한다.

샤히진다로 가는 길..언덕을 내려간다.

샤히 진다로 들어가는 입구

정문

안으로 들어가면 영묘들이 있고...

걸어서 올라간다.

아래 보이는 비석들은 최근에 만들어진 비석들이다....아마도 이곳에 묻히려면 힘께나 쓰는 사람들이었을 듯...앞에 보이는 모스크

는 비비하눔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이 건물들이 누구에세서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그냥 열심히 볼 뿐

이런 길을 따라서 올라간다.

각 영묘는 이름들이 있지만 별로 관심들이 없다.

지도를 보면 누구의 영묘라는  것이 나오지만 어차피 기억할 필요도 없고 기억되지도 않고...

내부의 장식 정도를 살펴 본다.

 

목재??

천정의 모자이크...참으로 정교하다.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관들도 많은데...이곳의 관들은 왕족들이나 귀족들이었을 것인데...그런데 관이 맞나??

같은 모양 같은 문양이 없다고 하는데...

화려하다.....이 영묘들은 티무르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비석인지 관인지.....

돔들도 모자이크나 모양들이 다르다고 한다.

 

오늘날 남아 있는 영묘들은 대부분 티무르 왕조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다른 영묘와 동일한 형태를 지닌 영묘는 하나도 없다고 한

다.
아프로시압 언덕 남동쪽에 8세기 아랍 침입 이후 형성된 이슬람교도들의 묘지로 주로 14-15세기에 걸쳐 11개의 묘를 건설하였는

데 예언자 마호메트의 사촌 쿠삼(Kusam)과 티무르 일족, 울르그벡의 은사, 자녀 등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샤히진다 입구 정문에는 “이 장엄한 건물은 883년(1334년)에 아미르 티무르 구르간의 아들, 샤흐루흐의 아들, 울르그벡 구르간의

아들, 압둘아지즈한에 의해 세워졌다”라고 씌어있다고 한다.
샤히 진다를 구경하면서 어느 영묘가 누구의 영묘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이곳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일반관

광객들에게는 그냥 티무르와 가족들과 관련된 무덤인가 보다 하는 것으로 끝을 낼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도 기념품등을 판다

 

샤히진다에 대한 설명

 

전체 건물군은 3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434-1435년에 울르그벡은 샤히진다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웅장한 정문을 세웠

다.

그 뒤에는 첫번째 초르탁(돔 구조로 된 통로)이 나타나며, 그것은 달옛 쿠쉬베기 사원(Dalvet Kushbegi Madrassah(1813))과 19세

기에 세워진 모스크로 이어지며, 계단을 반쯤 올라가면 푸른색의 돔이 두 개 있는 카지 자데 루미(Qazi Zade Rumi) 영묘 (1420-

1425)가 보인다. 카지 자데 루미는 울르그 벡의 천문 선생이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영묘에 있던 시신은 여성이었으며, 그녀는 아마

도 티무르의 유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두 번째 초르탁을 통과하면 오른편에 에미르 후세인(Emir Hussein) 영묘가, 왼편에 에미르 자데(Emir Zade) 영묘 (1386)가 나타나

는데, 아미르 후세인 영묘는 티무르의 장군이었던 후세인의 어머니의 이름이 따서 투글루 테킨(Tuglu-Tekin)이라고 불리기도 하

며, 아미르 자데 영묘는 알려지지 않은 아미르의 아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뒤로는 오른편에 쉬린 비카 아카(Shrin Bika Aka) 영묘 (1385), 왼편에 샤디 물크 아카(Shadi Mulk Aka) 영묘 (1372)가 자리잡고

있다. 샤디 물크 아카 영묘는 사마르칸트에 세워진 티무르 조 최초의 구조물이다. 이곳에는 티무르의 아름다운 질녀인 샤디 물크

아카가 묻혀있으며, 이후에 티무르의 누나인 투르한 아카도 이곳에 합장되었다. 시린 비카 아카 영묘는 티무르의 또 다른 누이를

위한 것으로, 원래의 장식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진정한 모자이크 타일 제작이 사마르칸트에서 시작된 시기가 언제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입구는 전부 부조가 아니라 마졸리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그 옆에는 15세기에 지어진 팔각형 영묘가 있다. 이것과 그 다음의 세 영묘들-건축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알림 나사피(Alim

Nasafi) 영묘(1385년경), 울르그 술탄 베굼(Ulug Sultan Begum) 영묘 (1385년경), 완성되지 않은 에미르 부룬둑(Emir Burunduk)

영묘(1390년경)-의 주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마지막 초르탁은 쿠삼의 성소와 북쪽 안뜰을 잇는다. 왼쪽에는 티무르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인 투만 아카(Tuman Aka)를 위해 지

어진 모스크와 영묘(1404-1405)가 있다. 문 위쪽에는 "무덤은 하나의 문이며,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간다"고  쓰여져 있다. 길

의 끝에는 이곳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건물인 홋자 아흐마드(Khodja Akhmad) 영묘(1350년경)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티무르의 부인인 쿠틀룩 아카(Kutlug Aka) 영묘(1361)가 있다.

 

초르탁 안에서는 벽돌로 지어진 11세기의 미나렛의 일부가 보인다. 이것은 사마르칸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몽골 침입 이전 시

기의 구조물이다. 초르탁 동쪽에는 쿠삼 이븐 압바스(Kussam-ibn-Abbas) 모스크(1460)와 11세기에 지어졌다가 1334년에 재건된

지아랏호마(Ziaratkhoma(순례의 방))이 있다. 출입구 옆에는 포도와 아라비아 문자를 표현한 목제 프리즈가 보인다. 지하에는 40

일 간의 단식을 위한 칠랴호마(Chillyakhona) 방들이 있다. 그리고 목재 격자창을 통해서 쿠삼의 무덤 (1380년경)이 있는 구르호나

(Gurkhona(묘실))이 보인다.

 

샤히진다 내부의 첫번 째 푸른 돔이 있는 건물이 울르그벡 일족의 묘이며, 계단 끝 왼편에 푸른 빛 아라베스크 모양의 묘가 조카 딸

샤디 물크 아카(Sha야 Mulk Aka)의 묘이다. 이 조카는 어려서 죽었는데 이를 가엽게 여긴 티무르가 자신의 여동생인 쉬린 비비아

카(Shirin Bibi Aka) 에게 명하여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묘소를 지을 것을 명했다. 조카의 묘를 완공한 그녀는 그 건너편에 자신의

묘를 만들것을 지시했으며 이 두 개의 무덤은 1371년부터 1373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이 샤디 물크 아카 묘소는 푸른 색 모자이크 타일이 매우 인상적이다. 

사마르칸드 사람들은 지금도 푸른빛의 아름다운 영묘에 찾아와 기도를 드린다.

(인터넷)

 

https://youtu.be/iwhX1dPZfx0?si=qNN-2TXVN5GHLFZZ...샤히진다 유튜브

 

 

구경을 하고 내려가는 길...

사히진다 주변의 건물들...이곳이 샤히진다???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우리 일행이 아니다.

지붕의 서까래가 우리나라의 단청을 닮았다.

아프라시압과 사히진다를 보고 숙소로 택시를 타고 ...아프라시얍 정착지를 가로 질러 난 길이다.

샤히 진다를 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6시 반이다.

어제 레기스탄을 갈 때 지나갔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