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에 할머니 산소에 가려다가 못 간 사건이 있은 이후로 우리집안에서는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추석을 기다려 왔었다.
이번 추석에 어머니와 4형제들의 자손들 16명이 할머니 산소에 무사히 성묘를 하고 왔다.
결국 나와 어머니만 이상하게 되고 말았지만 사실은 그 사건 이후 추석 사이에 그런 일이 두 번
더 있었다고 한다.
6월 말에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형제들에게 이야기 하였으나 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고 그래도
꺼림칙하니 같이 가서 벌초를 하자고 약속은 하였지만 결국은 날자가 맞지 않아서 천안에 사는
막내가 두 번이나 가게 되었다.
한 번은 그 사건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고 한 번은 벌초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막내는 45세로 천안에서 대학교에 교직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데 명리학 같은 것을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기도 하고 우리 형제들 가운데서는 제일 효자이다.
전화로 이야기를 했더니 이야기를 듣고는 진단하기를 어머니의 기(氣)가 약해져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며 시간이 나는 대로 시골에 가겠다고 하더니 우리가 다녀 온 그 다음 주에 곧바로
시골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할머니 산소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가 일주일 전처럼 또 길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자신도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를 설득하여 끝까지 가 보자고 하여 그 길 끝에 있는 할머니
산소를 어머니에게 확인시키고 왔다고 한다.
그 때는 벌초하기에 아직 이른 때라 그냥 확인만 하고 왔었고 나를 비롯한 다른 형제들은 시간이
맞지 않아서 벌초는 막내의 몫이 되어서 9월초에 혼자서 벌초를 하러 가게 되었다,
벌초할 때는 어머니는 같이 가지 않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기 아들과 같이 가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자신이 지난번에 와서 확인을 하고 갔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헷갈리기 시작했던 그 지점에 오니
자신도 그 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지난번에 이미 그런 경험이 한 번 있었으므로 그런 느낌을 무시하고 가서 벌초를 하고 나오면서 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는가 하고 생각을 하면서 오다가 보니 우리가 항상 혼란을 느끼던 그 지점
근처 길 위에 있는 무덤이 눈에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전에부터 있었던 무덤으로 무심히 지나쳤었는데 새삼스레 무덤을 보니 봉분이 주저앉아 있는데
아무래도 그 무덤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는 것이 동생의 생각이었다.
우연히 그 지점에 그 무덤이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상한 일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그런 일들이 있어서 이번 추석에 할머니 산소에 성묘 가는 것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생각 했었는데 결국 아무런 소동 없이 다녀오게 되자 이런 일들은 증명이라든가 입증이 불가능한
것이니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추석 때 나는 입구에서부터 길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한 곳까지 그리고 낯설게 느껴지고 난 후부터
되돌아 올 때까지의 길을 유심히 살펴 볼 수밖에 없었으나 참으로 이상하게 이번에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고 전에 다니는 길과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하늘을 보아도 잠깐 잠깐 나뭇가지 사이로 보일 뿐이고 지난번에처럼 훤한 하늘이 보이는
곳은 한 곳도 없었으며 그렇게 넓어 보이던 길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결론은 그 때 우리가 무엇엔가 홀린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원인이 이른
아침에 부슬부슬 이슬비가 내리는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동생 말처럼 그 무덤의 주인이
농간을 부린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홀린다는 것을 믿지 않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공동묘지라든가 사람이 죽었던 곳 또는 홋진(외진)곳
등에는 그런 일들이 가끔 일어난다.
그러기 때문에 겁이 많은 사람이라든가 오래 몸이 아파 기가 쇠하여진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곳을 밤에 혼자 지나다니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
귀신불에 놀란 적이 어렸을 때 있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여름이었다.
보리타작이 한창 할 때였으니 모내기가 막 끝난 때 즈음이었다. 오후에 아이들 몇 명과 여자어른
몇 명이서 동네에서 10여리 떨어진 낙동강 갯가에 있는 복숭아밭에 가서 복숭아를 사가지고
오는데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동네로 돌아오는 길에는 공동묘지가 있는 작은 산모퉁이를 지나야 되고, 공동묘지 밑에는 저수지가
있어서 길은 저수지와 공동묘지 사이의 길을 통해서 오게 되어 있었다.
그런 곳은 보통 외진 곳으로 동네와 떨어져 있어서 낮에도 다니기가 무서운 곳인데 밤이었으니
그 곳을 지나는 것이 걱정이었다.
조그만 모퉁이를 돌면 공동묘지아 저수지가 보이는 곳인데 걱정스런 마음으로 모퉁이를 돌자말자
우리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어두워서 공동묘지가 보이지는 않지만 그 위치쯤에서 쌍묘를 쓴 간격만큼의 파란 불 두 개가 주루룩
내려와서 저수지 위에 가서 딱 버티고 서더니 그 불 두 개가 요란하게 움직이며 우리 눈앞에까지
날아오기도 하고 온 들판을 휘젓고 다니는 것이었다.
우리는 혼비백산하여 울면서 도로 되돌아갔고 그러다가 마침 삽을 메고 모심은 논에 물고를 보러 오는 어른을 만나게 되었다.
그 어른은 우리에게 왜 그러는지를 물었고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이야기 했더니 헛것을 보았다
고 하면서 데려다 주겠다고 하여 그 어른과 같이 모퉁이를 돌았더니 불이 보이지 않고 공동묘지를
지날 때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그것을 나 혼자 본 것도 아니고 전체가 같이 보았으니 다 같이
홀린 것으로 도깨비나 귀신이 장난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금년 8월에 초등학교 동창회를 시골에서 했는데 우연히 이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그 곳에서
우리만 그런 일을 겪은 것이 아니고 동창들 가운데서도 그런 일을 겪은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 중에는 위의 이런 홀린 이야기를 들으면 아예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믿으려고 하지 않거나
헛것이나 보는 한심한 사람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런 일들은 보통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흔한 일로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예 사람에게 영혼이라든가 귀신의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가 쉽게 접하고
느낄 수 없다고 하여 그런 존재들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인간들은 영적인 감각이 둔화되어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신앙생활을 오래 한사람이거나
수도생활을 오래한 고승(高僧), 또는 기(氣)수련을 오래한 사람, 그리고 영매(靈媒)둘은 영적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로 수시로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기 때문에 영혼의 존재라든가 영적인 현상에 대해서
전혀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현상들은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며
믿지 않거나 부인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로 누구나 가야 할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도 못 믿는 세상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상의 일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죽으면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이 알 수 없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생각이나 생활이 죽음 이후의 세계와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영적인 세계를 부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참으로 모순된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정작 본인들은 자신이 모순속에서 살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추석에 가족들과 사람의 죽음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다른 증거들을 보더라도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
맞장구를 치면서 이해를 하다가 설명이 끝나면 다시, '죽으면 그만이지 뭐 또 다른 세상이 있겠나?'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참으로 맥이 빠졌다.
시어머니 산소에 가서 그리 열심히 비는 양반이 그렇게 말을 하면 왜 산소에 가서 빌고 절하고
하라고 하는지 원.....
추석이나 성묘 같은 것도 영혼의 존재를 부정할 것 같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영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삶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영계가 있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면 사람이 선(善)해지지 않을 수가 없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이 세상의 끝이 아니고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이 여유로워와지게 된다.
만약 영계가 어떤 곳인가를 알게 된다면 이 세상의 어지간한 속박에서 해방될 수도 있다.
고승들이나 도인들, 그리고 종교인들이 보통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사는 것도 그 세계를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늙어 죽을 때쯤 되게 되면 자신의 삶에 허무함을 느끼며 자신이 죽음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를 걱정하게 된다.
그러나 젊어서부터 죽음 이후의 내용을 알고 살아왔다면 그 사람이 늙어서 죽을 때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요즈음 심성개발 교육 중에는 유서를 쓰게 하고 관 속에 들어가게 하여 죽음을 미리 체험하게 하는
과정이 있는 교육들이 있다고 하는데 교육을 통해서라도 죽음을 체험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래는 모순된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유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전철 안에서 두 청년이 "지옥의 존재 여부"를 놓고 팽팽히 논쟁하는 것을 옆에 계시던 목사님이
듣게 됐습니다.
청년들이 내려서 갈 때 목사님도 따라 내려서 "지옥은 없다"라고 핏대를 세우며 주장하던 청년
옆을 바싹 따라 걸으며 귓속말로
"청년은 죽은 후 지옥으로 가게나"
했더니 당그 청년이 장 혈기를 부리며 대들더랍니다.
"목사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목사님이 허허.. 웃으며 조금 전 전철 안에서 우연히 자네 말을 들으니
"지옥 같은 건 절대 없다"고 완강히 주장하던데 뭘 그러나?
“....”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으면 가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이런 대학생과 같이 천국이나 지옥이 없다고 생가하면서 누가 자신보도 죽어서 지옥이나 가라고 하면 기분이 나쁜 사람이 있을까나?
기분이 나쁘다면 그 사람은 모순된 삶을 사는 사람일 것이다.
누가 죽어서 지옥이나 가시오 하면 기분이 바쁘
'세상을 잘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 때문에...장가를 못가거나 돌싱이 되거나 (0) | 2019.04.29 |
---|---|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를 보면서 드는 생각 (0) | 2019.04.17 |
안개 낀날 혼자 산에 가지 마세여(할머니 산소 이야기) (0) | 2019.04.03 |
낙태죄 찬반 시위..태아는 아직 사람이 아니다 (0) | 2019.03.31 |
IS가 지구상에서 어제 사라졌다는데...이슬람 교파에 대한 간단한 설명 (0) | 2019.03.27 |